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6년 7월 15일 (수)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7.15)

190620 김중애 [ji5321] 스크랩 06:44

 

2026년 7월 15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비평가나 평론가의 글이나 말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됩니다.

어느 책을 읽었는데 도무지 그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제대로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어느 평론가의 글이 작품 설명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 글을 읽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이 글에 이런 뜻이 담겨있었다니….’라면서

다시 읽으며 그 의미를 새길 수가 있었습니다.

작가의 해설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평론가의 글은 작품의 깊이를

더해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평론을 쓸 수

있었을까요? 아마 많이 읽고, 많이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세상이라는 하느님의

작품을 보십시오. 과연 설명 없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너무

쉽게 판단하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오는 판단은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평론가의 노력을

떠올리며 우리 역시 주님을 알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계속 읽고 기도와 묵상으로

그 뜻을 계속 생각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래야 좋으신 주님을 제대로 알고, 그분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어제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의 신적 기원을 드러내는 많은 기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믿고 받아들이는 데 더뎠던

세 고을의 사람들을 엄하게 꾸짖으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

께서는 당신을 따르게 된 이들을 따듯하게

칭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기도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닫는 은총을 받은

사람들은 많이 배우고 영리하다고 자부하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 곧 종교 지도자

들이 아니라 ‘철부지들’이라고 하십니다.

철부지는 단순히 학식이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겸손하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오직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어린아이처럼 하느님께 철저히 내맡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초대 교회를 떠올리면,

주로 사회의 낮은 계층과 노예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철부지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알려진

것을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6)

그러면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통하여

아버지를 아는 것이 당신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말씀하십니다. 그 선물이

2,000년 전에만 주어진 것일까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그 선물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만에

빠져서는 절대로 그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철부지와 같은 겸손을 갖추고,

자기 부족을 인정하면서 주님을 알려고

노력하면서 기도와 묵상으로 주님

안에서 머물러야 선물을 온전하게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예술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신앙의 반대는

이단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리고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엘리 위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 108 0

추천  3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