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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7월 14일 (화)연중 제15주간 화요일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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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190586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6-07-13

어제에 이어서 오늘은 카타파틱 영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카타파틱은 긍정의 길에 접근하는 기도입니다. 이 전승은 하느님을 만물에서 체험하고자 하며, 표상이나 개념, 상징을 기도에 다양하게 활용합니다. 긍정의 길에 기반을 두는 신학은 우리가 세상 만물을 통해 하느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자연 세계처럼 하느님의 가시적인 작품을 통해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신학은 예수님이 요한복음에서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하고 말씀하신 것을 토대로 하느님이 인격체이심을 한층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포파틱이 하느님은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분이라고 고백한다면, 카타파틱은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침묵 속에서도 말씀하시지만, 창조 세계와 역사, 성경 말씀과 전례,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시편은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린다.”라고 노래합니다. 꽃 한 송이, 바람 한 줄기, 별이 빛나는 밤하늘, 어머니의 사랑, 이웃의 눈물, 가난한 이의 얼굴 안에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실 때 추상적인 개념만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 겨자씨, 누룩, 포도나무, 목자와 양, 잃어버린 아들, 착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비유를 통해 하느님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 가까이에 계시는 분임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들의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와 꽃을 보면서도 하느님의 섭리와 사랑을 묵상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 목자, , 포도나무와 같은 친숙한 상징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카타파틱 영성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눈빛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보고, 예수님의 손길에서 하느님의 치유를 보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봅니다. 그래서 카타파틱 기도는 세상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안으로 들어갑니다. 성경을 읽고, 성화를 바라보고, 성체 앞에 머물고, 자연을 묵상하고,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 숨어 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려 합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표현처럼, 우리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카타파틱 기도는 상상력과 기억과 감각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영신 수련에서 복음 장면을 묵상할 때, 우리는 단순히 말씀을 읽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신 장소를 바라보고,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제자들의 표정을 상상하고, 그 장면 안에 나 자신이 함께 있다고 느껴 봅니다. 그렇게 할 때 복음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나에게 말을 건네는 살아 있는 말씀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만지고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사랑이십니다. 이것이 카타파틱 기도가 우리에게 주는 은총입니다. 아포파틱은 하느님 앞에서 침묵하는 길입니다. 카타파틱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흔적을 발견하는 길입니다. 아포파틱은 하느님은 내가 다 알 수 없는 분이라고 고백하게 하고, 카타파틱은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게 합니다.

 

하나는 어둠 속에서 하느님을 신뢰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빛과 표징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두 길은 서로 반대가 아닙니다. 깊은 침묵이 있어야 참된 표징을 볼 수 있고,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흔적을 발견할 때 우리는 다시 침묵 속으로 들어갑니다. 결국 두 길은 모두 우리를 같은 곳으로 인도합니다. 바로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인도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분이시지만, 결코 우리에게서 멀리 계신 분은 아닙니다. 침묵 속에서도 함께하시고, 세상 만물 안에서도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이해되지 않을 때도 하느님을 신뢰하고, 일상의 작은 표징 안에서도 하느님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발견하기의 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소돔과 고모라에 내려졌던 재앙보다 더 큰 재앙이 내릴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강력한 요청입니다. 진흙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은 피어납니다. 알이 깨어지는 아픔이 없이 병아리는 세상을 볼 수 없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힘들고 어려운 일은 있었습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절망하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고, 장애물을 넘어서는 용기를 가지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희망하는 것도 우리의 선택입니다.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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