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우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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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77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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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마태13,3ㄴ)
'좋은 땅을 만들어 가는 여정!'
오늘 복음(마태13,1-23)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하시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마태13,13)
씨가 땅에 떨어져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씨가 떨어지는 땅이 좋은 땅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좋은 땅을 만들기 위해서 땀을 흘립니다. 씨가 길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에 떨어지지 않고 좋은 땅에 떨어져야 좋은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밭이 좋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마음의 밭이거나, 고통이나 시련 앞에서 넘어지는 마음의 밭이거나,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에 넘어가는 마음의 밭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은 '끊임없이 좋은 땅을 만들어 가는 여정'입니다. 마음의 밭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길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을 넘어 좋은 땅으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마8,18)
그럼에도 우리는 쉽게 넘어지고 마는 참으로 나약한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난을 다 이겨내시고, 죽음까지도 이겨내시고 부활하셨는데.
나는 참으로 나약한 존재입니다.
'기도의 힘'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제가 당신께 피신하니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의로움으로 저를 구출하소서, 저를 구원하소서.
저에게 당신의 귀를 기울이시소서, 저를 구하소서.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할 산성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곽이십니다."(시편71,1-3)
(~ 시편74,23)
이병우 루카 신부
김건태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말씀의 완성
[말씀]
■ 제1독서(이사 55,10-11)
바빌론 유배시대에 익명의 예언자 제2이사야에 의해 저술된 ‘위로의 책자’에서(이사 40-55장) 예언자는 백성들에게 다가올 축제를 알리는 가운데 믿음과 희망을 심어줍니다. 이 축제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어 이방 민족들도 주님의 위대하심을 믿어 고백하며 서둘러 달려올 것입니다. 제2이사야 예언자는 오늘 말씀 안에서 비와 눈을 비유 삼아 하느님 말씀의 능력을 찬미합니다. 비가 땅을 적셔 소출을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도 말씀 그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 제2독서(로마 8,18-23)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켜 붕괴의 길을 걷고 있는 피조물을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곧 이 세상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굳센 믿음과 아낌없는 사랑 실천으로 본래의 질서를 되찾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은 이렇게 인간이 모여 사는 세상에 그 의미를 되새겨줍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삶으로써 세상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피조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복음(마태 13,1-23)
오늘 복음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우선 희망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말씀을 아끼지 않고 뿌리셨으며, 이 말씀은 결국 싹을 틔우고 자라 풍부한 열매를 맺기에 이릅니다. 영적인 현실에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신비로운 현실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 특히 마태오 복음저자 공동체 신자들은 이 비유 이야기에서 영적인 측면을 묵상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마음 안에서 씨앗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여러 가지 예를 들어 강조합니다.
[새김]
수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번민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신앙을 전하기 위하여 무던히 애쓰고 있으나, 주위의 무관심이나 반대 앞에서 때로 실망을 감추지 못합니다. 복음 말씀이 싹트고 자라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음을 목격합니다. 이 장애물들은 복음과 어울리지 않는 사회환경에서 나올 수도 있고, 복음 선포 대상이 되는 사람들 또는 복음을 전하는 자기 자신의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복음전파 사명을 열정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이러한 현실은 실망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다시금 그리스도의 모습을 눈여겨 봅시다. 그분은 이러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말씀이 받아들여지고 결실을 보는 데 이러저러한 장애물들로 말미암아 오랜 시간이 필요함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메시지가 수용되지 않은 채 허공에 울려 퍼지고 있는 현실을 잘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믿음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씨앗은 싹을 틔울 것이며 언젠가는 놀라울 정도의 열매를 맺게 되리라는 믿음 말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이 실패만을 거듭한다고 제자들이 느낄 때, 예수님은 분명히 이 비유 말씀을 자주 들려주셨을 것입니다. 이 체험은 바로 그들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길과 돌밭과 가시덤불과 같은 대상이라 할지라도, 씨 곧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전파하는 사명을 포기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격려와 함께, 이 사명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어 하늘 나라는 분명히 건설되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한 주간, 씨로 비유되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전파하는 가운데, 우리 가정과 일터와 공동체가 하느님이 함께하시는 하느님 나라로 성장을 거듭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뛰어드는, 의미 있는 한 주간 되기를 소망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 “씨 뿌리는 자”의 비유
1. 비유의 자리와 의도: 하느님 나라의 신비
예수님께서는 배 위에서 군중에게 비유로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3절) 그분이 물가에서, 즉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서 말씀하셨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세상 현실 사이의 경계, 곧 인간과 하느님이 만나는 지점에서 복음이 선포된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그분의 비유는 단순한 예화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드러내는 계시의 언어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11절) 즉, 말씀은 누구에게나 들리지만, 그 의미를 깨닫는 일은 열린 마음의 은총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말한다. “말씀의 씨앗은 모든 사람에게 뿌려지지만, 그 결실은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풍요롭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척박하면 그 힘이 드러나지 못한다.”(Commentarium in Matthaeum XIII,3 의역)
2. 씨 뿌리는 이와 말씀의 보편성
씨를 뿌리는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분의 선포는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씨앗이 떨어지는 곳이 길바닥이든, 돌밭이든, 가시덤불이든, 좋은 땅이든 뿌리는 이는 동일하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아낌없이 주신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한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0-11) 즉, 말씀은 언제나 효력을 지닌 창조의 말씀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효력은 결실을 보지 못하고 헛되이 흩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3. ‘마음의 밭’: 인간의 응답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밭을 제시하시며 인간의 내적 상태를 묘사하신다. 길바닥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며, 세속적 분주함, 무관심, 영적 둔감함 속에 말씀이 스며들 틈이 없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마음은 단단하게 굳어 있어, 악마가 와서 말씀을 훔쳐 간다.”(Sermo 101,2 의역) 돌밭은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깊지 않아, 시련이 오면 쉽게 무너진다. 즉, 감정의 신앙, 피상적 열심의 신앙을 상징한다. 가시덤불은 세속적 욕망과 재물의 유혹 속에서 말씀이 질식되어 버린다. 오늘날의 소비주의와 자기중심적 성공의 논리가 바로 이 가시덤불이다.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마음을 말하며, “깨닫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적으로 이해한다는 뜻이 아니라, 말씀을 삶으로 살아낸다는 의미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는 곧 하느님의 밭이며,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직접 일하신다.”(Homiliae in Matthaeum 44,3 의역)
4. 열매 맺는 말씀: 백배, 예순 배, 서른 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23절) 결실의 차이는 인간 응답의 정도를 말한다. 하느님은 당신의 말씀을 같게 주시지만, 인간이 협력하는 자유의 깊이에 따라 결실의 크기가 달라진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여기서 세 가지 결실을 세 가지 사랑의 차원으로 해석한다. “삼십 배는 혼인의 정결을 지키는 사람, 육십 배는 금욕적 삶을 사는 사람, 백 배는 순교자들의 완전한 사랑을 상징한다.”(De sancta virginitate 44 의역) 이처럼 말씀의 결실은 각자의 소명과 삶의 자리에서 사랑으로 응답하는 정도에 따라 다양하다. 결국 하느님의 말씀은 사랑으로 실천될 때 완전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5. 말씀의 능력과 인간의 책임
하느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닌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1베드 1,23)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안에서 자라려면, 마음의 밭을 돌보고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밭을 가꾸는 일은 곧 회개, 기도, 말씀 묵상, 그리고 실천의 삶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1코린 3,9) 이 말씀은 곧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성전이라는 뜻이다. 그분의 말씀은 그 안에서 자라며, 세상을 향한 열매를 맺는다.
6. 결론: 말씀을 살아내는 신앙
하느님의 말씀은 씨앗처럼 조용하지만, 그 안에 창조의 힘이 있다. 그 씨앗이 우리 안에 뿌리내리면, 우리의 삶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밭이 된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9절) 이 말씀은 단순한 경청의 요청이 아니라, 순명과 실천의 초대이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 제 마음의 밭을 일구어 주소서. 세상 욕심의 가시를 뽑아내고, 당신 말씀이 자라 열매 맺게 하소서. 제가 듣는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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