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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7월 10일 (금)연중 제14주간 금요일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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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님 - 누군가를 주님께 데려가는 사람

190522 이윤경루카 [achim9202] 스크랩 2026-07-09

사랑은 혼자 주님께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함께 주님께 데려가는 것입니다.

 

어느 집 안쪽,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방에 한 사람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오래된 평상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평상은 그의 침대였고, 그의 세상이었고, 그의 감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창밖에서는 사람들이 오가고, 아이들이 뛰놀고, 장터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갈 수 없었습니다.

문턱 하나를 넘는 일도,

길 위에 서는 일도,

누군가를 찾아가는 일도

그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소문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다네.”

그 말은 오래 닫혀 있던 방 안으로 들어온 한 줄기 바람 같았을 것입니다.

친구들은 서로 눈빛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이 친구를 예수님께 데려가야 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스스로 움직입니다.

그들은 평상의 네 귀퉁이를 잡았습니다.

한 사람의 아픔을 함께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무게를 함께 짊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무거운 평상을 들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 장면을 아주 짧게 전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마태오 복음은 간단히 기록하지만, 다른 복음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가까이 갈 수 없자 지붕을 벗기고 침상을 예수님 앞에 내려 보냈다고 전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많다고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길이 막혔다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길을 찾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의 믿음만 보신 것이 아닙니다.

그를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들의 우정과 사랑,

그들의 희생과 기도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 때문에 한 사람에게 은총이 내립니다.

친구들은 병든 몸을 고쳐 달라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그들은 고통받는 한 사람이 주님 앞에 놓인 것을 보면서도, 먼저 자비를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아픔보다 규정을 먼저 보았고,

용서의 기쁨보다 판단의 마음을 먼저 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예수님께서는 몸의 치유보다 더 깊은 치유가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몸의 치유도 참 큰 은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보다 더 깊은 치유, 곧 하느님과의 화해를 먼저 선물하십니다.

친구들은 병든 몸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몸만이 아니라 그의 영혼까지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주님께서는 때로 우리가 청한 것보다 더 큰 선물을 먼저 주십니다.

병보다 먼저 평화를,

문제보다 먼저 용서를,

상황보다 먼저 하느님과의 화해를 주십니다.

이것이 중재기도의 신비입니다.

중재기도는 내가 해결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예수님 앞에 데려다 놓고,

그 사람 안에서 가장 좋은 일을 주님께서 이루시도록 맡겨 드리는 사랑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로 데려온 사람을 결코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십니다.

세상에는 지금도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

마음이 무너진 사람,

죄책감 속에 살아가는 사람,

전쟁과 폭력 속에서 울고 있는 사람,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

그들은 저마다의 평상 위에 누워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평상을 들어야 합니다.

중풍 병자의 친구들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예수님께서는 왜 굳이 평상을 들고 가라고 하셨을까요?

그 평상은 오랫동안 그를 붙들고 있던 절망과 무력함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평상이 그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가 평상을 들고 걸어갑니다.

평상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평상이 더 이상 그를 붙들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자유입니다.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평상이 있습니다.

오래된 상처일 수도 있고,

실패의 기억일 수도 있고,

죄책감일 수도 있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불안과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이 우리를 붙들고 있으면 우리는 앞으로 걸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 평상을 들고 걸어가라.”

주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없애시는 분이기 전에,

상처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자유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십자가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도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죄의 기억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은 사람이 되어 그 기억을 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말하는 자유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 시대에 우리에게 부탁하시는 것도 바로 이 기도입니다.

평화를 위해 기도하여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여라.

고통받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여라.

성모님께서는 우리 손에 묵주를 쥐여 주십니다.

중풍 병자의 친구들이 평상에 친구를 태워 예수님께 데려갔듯이,

우리도 묵주알 한 알 한 알 위에 사람들을 태워 예수님께 데려갈 수 있습니다.

전쟁 속의 아이들을,

병실의 환자들을,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가족을 잃고 우는 이들을,

하느님을 떠난 이들을,

성모님 손을 잡고 예수님께 데려가는 것입니다.

묵주기도는 손가락으로 알을 넘기는 기도만이 아닙니다.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가는 기도입니다.

묵주알은 작지만,

그 안에 담기는 사랑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중풍 병자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만남 뒤에는

그를 포기하지 않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오늘도 누군가의 치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쳐지는 한 사람의 기도에서 시작될지 모릅니다.

누군가의 회개는 한 어머니의 묵주기도에서,

누군가의 평화는 한 신자의 성모송에서,

누군가의 희망은 한 사람의 연민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그들의 믿음”을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한 사람을 살리십니다.

신앙은 혼자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예수님께 데려가는 길입니다.

오늘 나는 누구를 내 기도 안에 태워

주님께 데려가고 있습니까?

성모님,

저희에게 중풍 병자의 친구들과 같은 사랑을 주소서.

누군가의 평상을 기꺼이 들어 주는 손을,

누군가의 이름을 끝까지 품는 마음을,

그리고 세상을 예수님께 데려가는

묵주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

 

 

 

위의 글은 이상각 신부님의 블로그 글입니다.

 

 

[출처] 누군가를 주님께 데려가는 사람|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 블로그https://blog.naver.com/rsony4u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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