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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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54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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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 마태 10,17-22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예측할 수 없고 대비할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에 대한 반발심리로 ‘확실한 자리’를 보장받으려고 하지요. 그로 인해 대학에서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확실히 보장되는 학과가 큰 인기를 누리고, 취업시장에서는 높은 연봉과 안정된 고용이 보장된 공기업 직원 채용에 많은 사람들이 몰립니다. 그런 식으로 어떻게든 확실성을 높이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한편, 불확실성이라는 변수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한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낳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내가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한계 안에 갇혀 사는 것이 진정 행복할까요? 우리의 삶은 원래 불확실한 게 ‘정상’입니다. 우리 삶도, 우리가 사는 세상도 모두 부족한 우리의 지식과 이성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하느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며 피하기만 할 게 아니라, 그것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그 안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헤아리고 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느님의 뜻과 섭리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비로소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구원’이라는 확실한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하루 하루를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바로 그런 믿음의 길, 순명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언급하시는 박해의 상황이 딱 김대건 신부님께 해당되는 이야기이지요. 매형이 관아에 밀고하여 아버지가 순교하셨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있던 어린 동생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로 인해 큰 충격과 상처를 받은 어머니가 돌봐주는 이 하나 없이 실성한 사람처럼 길거리를 떠돌아야 했습니다. 어렵게 신학공부를 마치고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겨우 고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으니, 김대건 신부님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아프셨을까요? 하지만 김대건 신부님은 이제 겨우 이십 대 중반 밖에 안 된 어린 나이에도 의연하게 대처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남 얘기’가 아니라 ‘나의 얘기’로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이 자신에게 닥쳐올 것을 각오하여, 그럴 때 자신이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 뜻에 맞는 일인지를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깨어있었기에 고통과 시련을 온전히 마주하여 이겨낼 힘과 용기를 주님으로부터 얻으실 수 있었던 것이지요.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나에게 닥친 고통과 시련을 견디고 이겨내는 게 아닙니다. 견디고 이겨내되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렇게 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지요.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당신 때문에, 즉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그분 뜻을 따르겠다는 마음으로 고통과 시련을 견디고 이겨낼 때, 그런 나의 삶 자체가 나를 보는 이들에게 주님께 대한 나의 믿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될 거라고 말이지요. 김대건 신부님이 바로 그렇게 사셨습니다. 오로지 “주님 때문에” 살고, “주님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할 이유도, 온갖 핍박을 견뎌야 할 이유도, 기꺼이 죽어야 할 이유도 다 ‘주님’이었던 겁니다. 그런 모습이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 하신 말씀 안에서 드러나지요. “관장께서 내가 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주시니 관장께 감사합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이런 사랑으로 주님께 희망을 거셨습니다. 그 희망으로 죽는 날까지 믿음을 간직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 믿음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께 감사드리실 수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일상의 삶 안에서 나 자신의 뜻을 죽이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명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의무감이나 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구원에 대한 희망 때문에 이루어질 때 나의 삶 전체가 하느님께 대한 나의 믿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악의 세력이 계속해서 우리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 방해는 실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요. 때로는 달콤한 유혹으로, 때로는 그럴듯한 감언이설로, 때로는 실패와 좌절로, 때로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만들어,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겁니다. 이처럼 걸려 넘어지는 상황이 계속되다보면 다시 일어서기가 점점 두려워집니다. 그냥 죄악의 어둠 속에 누워 있는게 편하게 느껴집니다. 하느님 나라가 이토록 힘들고 괴로운 길을 참아가며 가야 할만큼 정말 좋은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깁니다. 그렇게 포기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라고 하십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한 믿음의 조상들이 모든 것을 바쳐 다다른 ‘끝’에 우리가 그토록 그리는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선배님들 덕분에 믿음의 후예로써 신앙의 여정을 달려가는 우리에게 구원은 머나먼 미래의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부터 분명히 시작되는 현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슬픔과 괴로움이 가득한 이 세상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 나라’를 이미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주님을 따르는 이들을 박해하는 자였던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제자가 된 뒤, 이제는 자신에게 닥쳐오는 박해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아울러 같은 믿음으로 하나가 된 형제들에게 환난이 그저 고통으로, 실패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우리가 인내하며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힘들고 괴로운 그 시간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성장해가는 ‘수양’의 과정이 될 거라고, 그러니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뜻을 끝까지 충실히 따름으로써 그분께서 주시는 참된 영광과 기쁨을 누리자고 격려하지요. 많은 분들이 그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시지만, 신앙생활은 쉽고 편한 것을 쫓는 우리의 나약한 본성과 싸워 이겨야 하는 치열한 전투입니다. 몸을 계속 움직이고 운동으로 괴롭게 만들어줘야 살도 빠지고 건강해지는 것처럼, 우리 마음과 영혼도 주님 뜻을 따르기 위해 애쓰고 고생하는 만큼 건강해지고 행복해짐을 항상 기억합시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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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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