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4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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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8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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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서 말하는 고통 중에 ‘애별리고(愛別離苦)’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아픔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합니다. 저는 내일부터 휴가를 갑니다. 31일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본당을 잠시 떠나는 마음은 아쉽고 서운하지만, 새롭게 충전하기 위해서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지금은 헤어져도’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도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그저 뒷모습만 보였을 뿐 우린 다시 만날 테니까.” 잠시 헤어짐은 끝이 아닙니다. 다시 만날 희망이 있으면 헤어짐도 견딜 수 있습니다. 더구나 본당에는 윤 신부님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제가 없는 동안 본당을 잘 지켜 주실 것입니다. 저는 휴가 중에도 본당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교우 여러분도 제가 잘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 최강의 나라였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습니다. 로마는 강력한 군대와 제도와 문화로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그런 로마인들에게 전혀 다른 삶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힘이 기준이 아니라고 합니다. 욕망이 기준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공과 정복이 기준이 아니라고 합니다. 참된 삶의 기준은 성령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육의 욕망에 따라 살면 죽음으로 가지만, 성령의 힘으로 살면 생명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제시한 이 새로운 기준은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로마라는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로마가 받아들였던 복음의 정신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절망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어둠 속에 있는 사람에게 빛을 주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에게 위로를 줍니다. 이것이 성령의 힘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힘입니다.
제가 본당에 왔을 때, 결혼하였지만, 아이가 없는 부부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부부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족한 저의 기도도 들어주셨습니다. 제게 아이를 가졌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준 부부들이 생겼습니다. 네 부부가 2026년에 아이를 낳았고, 또 곧 아이를 낳을 예정입니다.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생명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것입니다. 서로를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때를 믿는 것입니다. 봉성체를 다닐 때가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병원에 입원하신 분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요양 병원에 계신 분들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분들은 성체를 모시면서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사실 제가 더 많은 것을 받습니다. 병상에 누워 계시지만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몸은 불편하지만, 성체를 모시며 눈물을 흘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고통 중에도 “주님께서 함께하시니 괜찮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믿음은 제게 큰 울림을 줍니다. 상황이 평안해서 평화로운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있기에 평화로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계명을 기준으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셨습니다. 율법과 계명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이정표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율법과 계명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사람을 나누고 단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율법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율법의 이름으로 부정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 여인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율법의 이름으로 돌아온 탕자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새로운 기준은 ‘온유함과 겸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이 말씀은 휴가를 떠나는 제게도 깊이 들리는 말씀입니다. 참된 휴식은 단순히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안식은 주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이 쉬는 것은 아닙니다. 근심과 욕심과 비교와 분노를 그대로 안고 있으면,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 내 짐을 맡기고, 주님의 온유함과 겸손을 배우면, 우리의 마음은 비로소 안식을 얻습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가정의 짐이 있고, 건강의 짐이 있고, 경제적인 짐이 있고, 관계의 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짐을 혼자 지고 가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나에게 오너라.” 하고 초대하십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짐이 사라지지 않아도, 그 짐을 지고 갈 힘을 얻습니다.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 않아도, 그 문제 속에서 평화를 얻습니다. 잠시 헤어짐 속에서도 다시 만날 희망을 간직합니다.
저는 잠시 본당을 떠나지만, 마음은 본당 공동체와 함께하겠습니다. 육의 욕망보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판단과 단죄보다 온유함과 겸손을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무거운 짐을 혼자 지려 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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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미사/2026년 7월 4일 토요일[(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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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30
김중애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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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예수님은, 새 것과 헌 것을 둘 다 보존하시는 분입니다."(요한 9,16-17 마음에 와 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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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9
한택규엘리사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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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7월 4일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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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6
박양석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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