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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에세이 2부> 최근 제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십자가에 대한 묵상

2944 박소영 [b38927] 스크랩 2026-06-29

<묵상 에세이 2부>


✦ 최근 제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십자가에 대한 묵상

 

성공회 수녀님,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미국 선교사,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던 개신교 신자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들을 만날 때마다 제 마음에는 한 가지 공통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저에게 이런 만남들을 허락하실까?'

 

기도하며 묵상하는 가운데 제 마음에 떠오른 답은 하나였습니다.

 

'십자가'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 복음의 빛,6-9)

너에게 사물을 보는 새 방식을 주겠다. 다시 말하면, 바로 나의 눈으로 사물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더 이상 네 흥미를 끌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네 마음 속에 깊은 고통 같은 것을 남기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너는 이렇게 말하게 되리라: "얼마나 헛되고 무익한 것들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네 형제들은 그런 것들의 지배를 받으며 끌려 다닌다. 세상의 가치관대로 사물을 보고 세상을 위해 살면서, 삶이라는 선물을 헛되이 낭비한다.

너에게 새 감수성을 주겠다. 다시 말하면, 네가 내 성심이 느끼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랑하고 고통받는 너의 능력이 비상하게 더욱 커질 것이다. 왜냐하면, 아들아, 이 엄마 마음이 느끼는 그대로 너도 느끼게 될테니 말이다.

내 아들 예수님의 구원사업을 헛되이 만드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는 너무도 많으니, 네가 얼마나 큰 비통함을 느끼겠느냐! 하느님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분을 부정하고 그분께 대적하는 그 모든 사람들 때문에 말이다! 또 스스로의 잘못이 없어도 그런 온갖 오류의 무지한 희생자들이 되어 길잃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볼 때, 얼마나 큰 연민의 정이 느껴지겠느냐!

 

이 말씀처럼 저는 최근 만난 사람들을 판단하기보다 먼저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모두 선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각자의 자리에서 진리를 온전히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성공회 수녀님>


오송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역 입구에서 연세가 많으신 한 수녀님이 무언가를 찾고 계셨습니다.

몸은 많이 마르셨고 처음에는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도움을 드리고 싶어 다가가 인사를 드렸더니 서울역 근처에서 활동하시는 성공회의 카타리나 수녀님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대화를 나누어 보니 처음 인상과 달리 매우 밝고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이며 평신도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씀드렸고, 자연스럽게 성모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홍차를 찾고 계셨는데 역 안에는 커피만 있어 편의점에서 홍차 음료를 구입해 드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만남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미국 선교사>


며칠 뒤에는 대전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미국인 선교사 두 명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매우 젊고 밝았으며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진심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진리가 아닌 다른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논쟁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가 지금까지 걸어온 신앙의 여정과 하느님께서 제게 베풀어 주신 은총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마지막에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각자가 맡은 사명에 충실하면서 하느님을 전합시다. 저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비록 같은 믿음을 고백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 역시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영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개신교 신자들>


또 다른 날에는 버스에서 "예수님을 믿으십시오."라고 외치시는 한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묵주를 보여 드리며 성체와 성모님,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해 말씀드렸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진리를 갈망하지만 아직 온전한 샘을 만나지 못한 수많은 영혼들을 바라보고 계실 것입니다.

 

또 다른 날에는 거리에서 선교하는 개신교 단체를 만났습니다.

그들에게 저는 한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복음은 말보다 삶으로 전해집니다."

 

기도와 절제와 희생 없이 복음은 힘을 잃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하십시오. 복음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84. 너희의 침묵,16-18)

"언제나 너희의 삶으로 말하여라. 너희 삶이 너희 말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나 자신이 너희 안에서, 너희를 통해 말하게 되고, 그럴 때 너희 말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 말을 이해하며 받아들이게 된다.

오늘날에는 온 인류를 유혹하기 위해 내 원수가 사용하는 무기가 바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가 침묵으로 그와 맞서도록 당부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께서도 너희 안에서 말씀하실 것이며, 너희를 통해 그분께서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만드실 것이다."

 


<왜 이런 만남들을 허락하실까?>

 

저는 기도하며 묵상해 봅니다.

사실 저는 조용히 기도하고 고통을 봉헌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주님께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히려 제게 용기를 주시며 또 다른 길을 걸어가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 제가 이런 길을 걸어야 할까요?

 

사실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제 삶의 주인이 제가 아니라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분명 하느님의 뜻이 제 삶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하기 싫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원하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바로 십자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란 무엇입니까?>


오늘 여러분께 나누고 싶은 것은 바로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자녀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층간소음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직장 동료와의 갈등 때문에 지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당 안에서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재산이 없다고, 좋은 직업이 없다고, 집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은 분명 현실이며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고통이 곧 십자가는 아닙니다.

 

성모님께서는 십자가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260. 회개의 길,7-8)

"둘째 단계는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잘 지는 일이다.

이 십자가는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을 이루고자 할 때 마주치게 되는 어려움들이니, 자기 신분에 따른 의무 수행에 날마다 충실해야 한다는 과제가 이 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지극히 사소한 일까지도 완벽하게 해야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완전한 사랑으로 해야 하고, 하루의 모든 순간을 하느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

 

십자가는 하느님의 뜻을 선택했기 때문에 감수하게 되는 희생이며, 사랑 때문에 기꺼이 받아들이는 순종의 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단계를 '내적 못박힘'이라고 부르시며, 매우 고통스럽지만 바로 이 과정을 통해 예수님과 닮아 가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260. 회개의 길,9-10)

"이 고통스러운 둘째 단계가,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들아, 특히 너희에게 있어서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른다!

이것으로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과 닮은 모습이 된다. 이 내적 못박힘은 사제인 너희 일과를 통해 날마다 순간마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의 길을 걷는 사람은 박해를 받아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다른 사람이 더 잘사는 것처럼 보여도 쉽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이미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맡겨 드렸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보다 하느님의 뜻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로 이 길을 걸으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루카 22,42)

 

예수님의 십자가는 억울한 죽음이기 이전에, 성부의 뜻에 대한 완전한 사랑과 순종의 열매였습니다.

 

우리의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 할 때 찾아오는 희생과 인내, 용서와 사랑의 선택이 곧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이 점에서 마리노 레스트레포 씨가 말한 고통(Suffering)에 대한 묵상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고통(Suffering) - 마리노 레스트레포, 2026. 3. 30.

(일부 영문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함)

 

사람들은 고통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고통과 괴로움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아무도 고통받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보다 십자가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보다, 십자가를 피해 달아나는 그리스도인을 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희생(sacrifice)’이라는 말은 매우 고통스럽게 들립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개신교적 흐름, 즉 여러 분파로 나뉜 그리스도교는 사탄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가 됩니다.

 

복음서에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 사탄이 예수님께 말했던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때 사탄은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고통받지 말라고, 죽음을 피하라고 유혹했습니다.

즉, 고통과 희생을 피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원했던 바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고통을 제거하려는 신앙 형태로 나타납니다.

즉, 어떤 신앙은 최후의 만찬까지는 예수님과 함께 가지만, 골고타는 건너뛰고 곧바로 부활로 넘어가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칩니다.

 

“알렐루야! 주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셨다! 우리는 모두 구원받았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십자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고통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습니다.

고통은 저주받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여기고, 고통받는 사람은 마귀의 영향을 받았다고까지 생각합니다.

 

이처럼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교가 만들어집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지지 않고, 십자가를 몸에 지니지도 않으며, 십자가 자체를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우리는 더 이상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과 정면으로 어긋납니다. 복음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카 9,23)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미 너희를 위해 십자가를 졌으니 너희는 질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

이것이 바로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사람들은 고통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때때로 그 고통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고통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고통 안에서 이루어지는 회개와 사랑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자신을 '고통의 어머니'라고 부르시며 말씀하십니다.

 

(334. 나는 너희를 길러, 고난을 달게 받도록 해준다,5)

"내가 '고통의 어머니'인 까닭은 '어머니'로서 낳아 기르고 또 그 가르침을 따르고 사랑했던 내 '아들' 예수님을, 양순하고 온유한 희생 제물로서 성부의 거룩한 정의에 바쳐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께서는 그 엄청난 수난 중에서도 내게서 가장 큰 도움과 격려를 받으셨다. 비할 데 없이 고통스러운 이 시대에도 나는 다시 '엄마'로서 너희 한 사람 한 사람 곁에 있다. 너희가 겪는 모든 고난 속에서 너희를 양육하고, 그때마다 도움과 격려를 주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끝까지 머무르셨던 성모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십자가 아래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눈물을 사랑으로 바꾸어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어머니이십니다.

 

오늘날 세상은 자기 십자가를 지기보다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 합니다.

개인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정반대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복보다 용서를, 영광보다 희생을, 자신의 뜻보다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십자가는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을 사랑으로 실천하는 삶입니다.

 

우리 역시 날마다 같은 선택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는 자신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나는 불평하며 살아가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일까요?


십자가를 어떻게 져야 하는지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체나콜로에서, 아버지의 뜻이』 제6장 「회개의 길」을 다시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참된 회개의 은총을 주시고, 자기 자신을 버리며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고 따를 용기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원문 글 링크 : https://blog.naver.com/letspraytogether1004/224330341198

 

함께하는 가톨릭 기도 (체나콜로)
https://www.youtube.com/@letspraytogether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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