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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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36 최원석 [wsjesus] 스크랩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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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신앙인은 영적인 삶의 증인
[말씀]
■ 제1독서(2열왕 4,8-11.14-16ㄴ)
엘리야의 뒤를 이어 북 이스라엘 왕국에서 활동한 예언자 엘리사는 계약과 관련된 놀라운 증언들을 기억으로 남겨놓은 인물입니다. 정치적 지도자들을 거슬러 두려움 없는 투쟁을 전개해나가면서 백성들의 신앙을 다져나갔으며, 그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사람들은 그가 보여준 기적 이야기들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인 엘리사는 믿음으로 자신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끕니다.
■ 제2독서(로마 6,3-4.8-11)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전개된 새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힙니다. 세례를 통하여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새로운 관계, 은총의 세계에 접어듭니다. 신앙인들은 자기중심적인 세계 곧 죄의 세계를 벗어나,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삶의 형태 곧 부활의 세계로 들어섭니다. 다시 말해서 “죄에서 죽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사는” 삶을 누립니다.
■ 복음(마태 10,37-42)
유다교 출신 신앙인들에게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은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유다교는 실상 전통적인 유다교 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종교를 택한 사람들을 공동체에서 축출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저자 마태오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미 당신의 제자들에게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이 다가올 것임을 예고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아울러 주님은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참 생명을 약속하셨다는 사실도 잊지 않습니다.
[새김]
인간에게 삶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의 종말로 다가오는 죽음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되나, 그리스도교 신자에게는 새로운 실존 양식, 곧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사랑을 드리는 관계를 말합니다. 이 실존 양식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기에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기쁨과 위로, 그리고 희망을 줍니다. 영적이며 초현실적인 실존 양식에 대한 이와 같은 믿음으로 죽음도 그 의미를 달리합니다. 죽음은 이제 인간을 두려움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현실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위한 하나의 과정, 마땅히 수용해야 하는 현실로 인식될 뿐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으로 우리 신앙인들은 죽음을 포함한 삶의 부정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주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표현은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말씀과 행적으로 가르치셨고,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생명을 말하는 사람, 죽음은 물론 죽음의 요소들까지 껴안는 생명을 담대히 선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영적인 실존 양식을 증언하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이번 한 주간, 특별히 신앙에 관한 한, 그 어떠한 반대와 적대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없이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주님께 사랑을 드리는 신앙인, 이 사랑 안에서 기쁨과 위로와 희망을 찾아 나가는 신앙인임을 뽐내는, 의미 있는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이다.”
오늘 복음은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데 있어 모든 인간적 관계나 애착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절대적 가치를 선포하신다. 동시에 당신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주어질 축복과 상급을 말씀하신다. 여기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 제자가 되는 사람의 자기 포기와 십자가, 둘째, 제자들을 맞아들이는 사람들의 환대와 보상이다.
1. 절대가치로서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37절) 이는 인간적 애정을 부정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랑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하느님을 덜 사랑하기 때문에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 안에서 더 참되게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그분을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De Doctrina Christiana I,22 현대적 의역) 따라서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모든 관계의 기준이자 근원이다.
2. 십자가: 제자직의 본질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38절) 십자가는 단순한 고난의 상징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표지이며, 제자도 역시 그 사랑에 동참하는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너 자신의 뜻을 버리고, 오직 주님의 뜻에 따르라.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Homiliae in Matthaeum 35,2 의역) 교리서는 이를 분명히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 구원의 유일한 희생 제사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제자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름을 받는 것의 모범이다.”(618항 요약)
3. 예언자를 맞아들이는 환대
예수님께서는 또한 말씀하신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40절) 즉 제자를 맞아들이는 행위는 곧 그리스도를, 더 나아가 하느님 아버지를 맞아들이는 행위다. 작은 물 한 잔의 환대조차도 하늘에서 잃지 않고 보상된다.(42절) 이는 단순한 인간적 친절을 넘어, 신앙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환대이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하느님의 종들을 환대하는 이는 하느님 자신을 환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의 말씀과 은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Adversus Haereses IV,18,4 의역) 이러한 환대의 정신은 이미 구약에서 수넴 여인이 예언자 엘리사를 극진히 대접한 사건(2열왕 4,9-10)에서 드러난다.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심으로써 응답하셨다.
4. 세례와 제자직의 길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세례를 그리스도와의 죽음과 부활에의 참여로 설명한다.(로마 6,3-4) 제자직은 단순한 추종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이미 시작된 “죽음과 생명”의 여정이다. 교회 헌장은 이렇게 선포한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 결합되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다.”(7항 요약) 따라서 제자의 길은 매일의 작은 십자가 속에서 자기 포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동시에 그 길은 부활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우리 삶 속에서도 늘 선택의 갈등이 있다. 하느님의 뜻과 세상의 욕망 사이에서 매일 십자가가 드러난다. 그러나 이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히 고통을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된 자유와 사랑을 향한 길이다.
또한, 우리는 직접 복음을 선포하지 못하더라도, 선포자들을 환대하고 도울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 “작은 친절의 행위조차도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기여한다.”(Evangelii Gaudium 279 의역)
6. 결론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묻는다. 나는 절대가치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 있는가? 나는 복음 선포자들을 환대하고 있는가?
우리의 삶이 십자가를 감수하는 제자직의 삶이 될 때, 또 작은 환대와 나눔을 통해 복음을 맞아들일 때,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참된 제자가 된다.
이병우 신부님_"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10,38)
'짊어지고 가야 할 나의 십자가!'
오늘 복음(마태10,37-42)의 제목은 '버림과 따름'과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받을 상'입니다.
'마태오 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세상 안으로 파견되는 열두 사도들에게 하시는 '파견 사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박해를 각오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부모나 자녀들보다 나를 더 사랑해야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인 이들이 받을 상'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에 대해 묵상합니다.
오늘 독서(로마6,3-4.8-11)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6,4)
'예수님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가 곧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직책(부르심)도 십자가'이며, '허물이 많은 나의 나약함도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들을 짊어지고 부활을 향해 나갑시다!
오늘은 베드로의 후계자요 그리스도의 이 지상 대리자인 '제267대 레오 14세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는 '교황 주일'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저의 사제서품 22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2004년 6월 28일, 서울 정동에서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함께 기도해 주세요♡
(~ 시편34,23)
이병우 루카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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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36
최원석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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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에세이 2부> 왜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가난하게 이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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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2
박소영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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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8일 주일 / 카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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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35
강칠등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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