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나콜로에서, 아버지의 뜻이] <제8장> 배교
-
2927 박소영 [b38927] 스크랩 13:31
-
<제8장> 배교
작은 이들의 충실한 길과는 반대로, 오늘 교회 안에서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복음을 저버리고 세속의 길을 선택하며 배교의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미 “복음을 저버리는, 말 그대로의 배교가 어느 날인가는 교회의 일반적인 추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74,17)고 예언하셨습니다.
이 배교는 개인의 신앙 상실에 머물지 않고, 교회 전체를 뒤흔드는 시대적 현실로 번져가며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그 시작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교회 안에 일반화되며, 마침내는 묵시록이 예언한 ‘거짓 교회와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이어지는지를 밝혀 주십니다.
이 장에서는 배교의 시작과 그 확산, 그리고 그 절정에 이르는 과정을 메시지에 비추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오직 티없으신 성심 안에서만 안전한 피난처와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있음을 다시금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8.1 배교의 시작
성모님께서 당신의 군대를 충실한 군대로 부르시는 이유는, 배교가 바로 불충실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나를 저버리고 더는 복음에 충실하지 않는 사제들, (…) 그들 자신이 숱한 오류들을 퍼뜨리고 있고, 마음 속으로는 이미 배교자들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22,10)
이 말씀은 예수님과 성모님을 저버리고 복음에 충실하지 않을 때, 이미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복음과 진리에 등을 돌린 상태임을 보여 줍니다. 성모님은 무절제한 활동으로 기도를 대신하고, 세상의 안락과 오락을 좇으며 성덕 대신 죄에 굴복할 때, 결국 배교가 내면에서 시작되어 스스로 정당화하게 된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들은 무절제한 활동으로 기도를 대치하고, 줄곧 안락한 생활과 오락을 찾는 것으로 극기를 대치한다. 성덕 대신에 죄, 특히 순결을 더럽히는 죄에 점차로 굴복하여 빠져들고 그것을 한층 정당화시킨다. 그들은 걸어다니는 시체, 회칠한 무덤이다. 여전히 사제로 자처하지만, 내 아들 예수님께서 더는 사제로 인정하시지 않는 자들이다.” (122,3-4)
이처럼 불충실은 배교의 출발점이 되어, 복음을 버리고 세상의 이념을 선택하는 길로 이어집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대표적 사례로 마르크스주의, 진보주의, 해방신학, 새로운 신학을 지적하시며, 이것들을 배교를 낳는 심각한 오류라고 단언하십니다. 즉, 작은 불충실에서 시작된 마음의 배교가 결국 신앙의 배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성모님의 가르침입니다.
8.1.1 마르크스주의 ― 무신론적 오류
“나의 아들인 이 사제들이 마르크스주의라는 심각한 악마적 오류를 두둔하기 위해 복음을 배반했으니…” (8,1)
마르크스주의는 겉으로는 가난한 이들의 해방과 정의를 내세우지만, 그 뿌리에는 하느님을 배제한 무신론적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간 역사를 경제적 조건과 계급투쟁으로만 설명하는 유물사관에 기반한 이 사상은, 구원의 차원을 철저히 지워버리고 인간 사회를 단지 구조 변혁으로만 이해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를 사탄이 제시한 “그릇된 망상”이라 부르시며, 수많은 영혼이 이로 인해 기만당한다고 경고하십니다.
“사탄이 마르크시즘이 만인에게 제시하는 그릇된 망상으로 많은 내 아들 사제들을 기만함으로써, 이미 그들과 결탁하기에 이르렀다. 그 망상은 오직 가난한 이들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것, 그리스도교는 보다 정의로운 인간 사회의 구현에만 참여해야 한다는 것, 하나의 교회가 보다 복음적인 것이 되고자 한다면 교계제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90,8)
“이제 너희는 붉은 용, 곧 마르크스적 무신론이 온 세상에 확산되어, 영혼들을 더욱더 휩쓸어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99,5)
성모님께서 드러내신 마르크스주의의 오류는 네 가지로 요약됩니다.
무신론적 세계관 — 인간의 역사를 전적으로 물질적·경제적 요인으로만 설명하며, 하느님을 배제합니다.
계급투쟁의 절대화 — 인간 문제를 사회적 투쟁으로 환원하며, 영적 차원을 부정합니다.
복음의 세속화 — 복음을 사회 혁명과 동일시하여 구원을 정치·경제 구조 변화로 축소합니다.
교회의 권위 부정 — 교계제도와 교황의 권위를 흔들고, 교회의 일치를 무너뜨립니다.
이처럼 마르크스주의는 겉으로는 정의와 해방을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신앙을 파괴하고 교회를 세속화하는 길이 됩니다. 성모님께서 이를 “붉은 용, 곧 무신론적 세계관”(99,5)이라고 단언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8.1.2 진보주의 ― 신앙의 세속화
성모님께서는 또한 ‘진보주의’라는 명분으로 신앙이 세속화되는 현실을 지적하십니다.
“어떤 사제들은 진보의 명분으로 단지 세상을 위한 일꾼이 된 채, 그 풍조대로 살고 있을 뿐이다.” (122,2)
성모님은 여기서 ‘진보’라는 이름 아래 기도가 활동으로 대체되고, 성덕이 세속적 가치로 바뀌어 사제들이 더 이상 영혼의 목자가 아니라 세상의 일꾼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드러내십니다. 그 결과 그들은 점차 세속의 풍조를 따르는 자가 되고 맙니다.
또한 “너는 이 곳에서 이미 신앙을 상실한 몇몇 형제 사제들을 만나 보고 나의 고통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 여전히 사제직을 행사하고 있는 그들은, 그럼에도 오류를 가르치는 교사들이다 (…) 이곳은 (…) 진보주의와 배교의 진원지이니”(136,8-9)라고 단언하시며, 진보주의가 교회를 세속화하고 배교를 확산시키는 뿌리임을 밝히십니다.
진보주의라는 미명 아래 세상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면, 복음은 사회 개혁이나 정의 실현으로 축소되고, 교회는 세상의 요구에 맞추려는 풍조 속에서 본질을 잃게 됩니다.
8.1.3 해방신학 ― 복음의 왜곡
성모님께서는 해방신학을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가르침”(375,4)이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해방신학은 가난한 이들의 해방을 내세우지만, 마르크스주의 방법론을 신학에 끌어들여 구원을 사회·정치적 해방으로만 한정하고 교회의 교도권과 충돌하는 오류를 안고 있습니다.
그 결과 복음은 본래의 차원, 곧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구원의 길을 상실하고, 단순히 정의로운 사회 건설이라는 세속적 차원으로 축소됩니다. 성모님은 특히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교회 안에서 이러한 오류가 널리 퍼지고 있다고 지적하시며, 교황과 일치하여 복음을 온전히 전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해방신학의 위험성을 깊이 우려하시며, 신앙교리성(당시 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 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지도 아래 1984년 〈자유의 해방〉(Libertatis Nun tius)과 1986년 〈자유와 해방〉(Libertatis Conscientia) 두 차례 지침문을 승인·발표하도록 하셨습니다. 첫 문헌은 해방신학 안에 스며든 마르크스주의적 오류를 경계하는 데 집중했고, 두 번째 문헌은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교회의 사회교리 안에서 올바로 이해하도록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교황님은 교회가 가난한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해방신학의 의도 자체는 인정하시면서도, 마르크스주의를 사회 개혁의 도구로 삼아 구원을 정치적 해방으로 환원하는 점은 복음의 본질에 어긋나는 중대한 오류임을 분명히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해방신학은 과거의 사건으로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냉전체제 붕괴 이후 자본주의 세계화 속에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다국적 기업들의 영향력이 커지자, 일부 교회와 신학자들 사이에서 다시 해방신학적 시각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사회 정의, 인권, 생태 문제와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로 재등장하는 흐름도 보입니다.
✦ 묵상 길잡이 ― 참된 가난, 오류를 넘어서는 길
(물음) 나는 지금 ‘가난한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느님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성모님께서 말씀하시는 ‘가난’은 오직 하느님만을 보물로 삼고, 겸손과 신뢰, 순결과 희망 안에서 살아가는 작은 이들의 삶입니다. 이 길은 세속의 풍요와 집착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는 은총의 길입니다.
반면 해방신학은 가난을 사회적·정치적 차원으로만 이해하여, 구원을 단순히 구조 변혁으로 축소시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를 복음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가르침이라 단호히 경고하시며, 복음의 본질이 세속 이념에 가려지는 위험을 지적하십니다.
성모님은 메시지 안에서 성탄의 밤을 회상하시며, “그분을 맞이한 것은 동굴의 가난 및 그 굴 속에 있었던 소와 나귀의 온기뿐이었다” (64,6)고 말씀하십니다. 호화로운 집이 아니라 가난한 동굴이 아기 예수님을 맞이할 자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어서 “너의 가난이 너를 언제나 다만 아기로 있게 해 주리라. 재물, 집착, 생각, 감정의 완전한 가난이다” (64,8)라고 가르치시며, 참된 가난은 결핍이 아니라 하느님의 충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발적 비움임을 드러내십니다.
레오 14세 교황님도 제9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앞두고 발표한 메시지에서 ‘가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심각한 가난(빈곤)은 하느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The gravest form of poverty is not to know God.”
— 레오 14세 교황, 제9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메시지 (Message of the Holy Father for the 9th World Day of the Poor), 2025년 11월 16일을 위한, 2025년 6월 13일 발표, 바티칸 공식 웹사이트(vatican.va)
이 말씀은 교회가 가난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밝혀 줍니다. 가난한 이는 물질적 빈곤층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이들 — 무신론자, 배교자, 세속주의에 사로잡힌 이들까지 포함됩니다. 참된 연대란 물질적 지원을 넘어, 이들이 복음을 통해 회개하고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 인간다운 존엄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2025년 10월 4일에 서명되어 10월 9일 발표된 레오 14세 교황님의 첫 교황 권고 『나는 너를 사랑하였다(Dilexi te)』 역시 같은 맥락을 이어줍니다. 이 권고문은 물질적 가난뿐 아니라 사회적 소외, 문화적 빈곤, 도덕적·정신적 빈곤, 권리와 자유가 박탈된 상태까지 폭넓게 언급하며, 가난을 단순히 생계 수단의 결핍으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되기 위해 교회가 역사 속에서 보여 온 연대와 성인들의 증언을 상기시키며, 빈곤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는 곧 가난을 오직 재화의 유무에 따라 정의하던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복음의 빛 안에서 물질적·사회적·영적 차원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성경 역시 같은 진리를 증언합니다. 참된 가난은 물질적 결핍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열린 마음이며, 세속적 풍요보다 영혼의 구원이 본질적임을 드러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3)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야고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마태 16,26)
따라서 가난한 이는 결코 자선의 대상이 아니라, 복음적 희망을 증언하는 주체입니다. 작은 이들의 단순함과 겸손, 순결과 봉헌 안에서 드러나는 참된 가난이 바로 오늘 교회가 세속적 오류에 맞서 서야 할 자리이며, 배교의 시대를 뚫고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8.1.4 새로운 신학 ― 허구적 학설
성모님은 또한 “진리에 대한 새로운 문화적 해석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오류가 가르쳐지고 선전되고 있으며, 세속 정신이 기꺼이 받아들여지고 있다”(270,9)고 말씀하시며, “새로운 신학의 허구적 학설”(370,4)을 경고하십니다. 이른바 새로운 신학은 전통적인 가톨릭 교리와 교도권의 가르침을 상대화하고, 시대정신이나 문화적 요구에 맞추려는 시도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이것이 신앙을 흐리고 오류와 배교를 조장하는 길이라고 분명히 밝히십니다. 참된 신앙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복음의 진리에 근거하며, 새로운 해석이라는 이름 아래 교회 안에 퍼지는 이러한 가르침은 결국 오류일 뿐입니다.
8.1.5 배교의 확산
그래서 성모님은 “엄청난 배교의 때”가 왔다고 경고하십니다.
“배교 역시 이제는 전세계 교회에 확산된 현상이다. 몇몇 주교들마저 교회를 배반하는가 하면, 매우 많은 수의 사제들이 교회를 저버리고 수많은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270,10)
“엄청난 배교의 때가 왔다. (…) 영적 혼란과 동요가 전반적이고 극단적인 때가 왔다.” (384,2-4)
성모님께서는 배교가 복음에 대한 불충실에서 시작하여, 기도와 봉헌을 잃을 때 세속적 가치에 굴복하게 되고,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와 진보주의, 해방신학과 새로운 신학 같은 오류를 받아들이는 길로 이어진다고 밝히셨습니다. 이러한 오류들은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모두 배교의 한 단면으로서 교회 전체를 뒤흔드는 시대적 현실임을 성모님께서는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8.3 배교의 일반화
예수님께서는 오직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만 당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예수님께서 반석 위에 세우신 거룩한 ‘가톨릭 교회’의 보편적 목자로서, 모든 이가 굳건한 신앙에 머물도록 그 사도직을 수행합니다. 따라서 사탄이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가장 먼저 노리는 것은 바로 이 반석, 즉 교황을 고립시키고 교도권을 거부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가장 사랑하는 맏아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이 교황이 너희 곁에 있는 내 특별한 현존의 징표이다. 그가 내 모든 원수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요 장애물이 된 바위이기에, 이 바위를 치는 엄청난 분열이 일어날 것이다. (207,5-6)
“오직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만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를 세우셨다. (…) 오직 베드로에게만 형제들의 믿음을 굳게 할 임무를 주님께서 맡기셨다.” (385,2)
“나는 오늘, 고통과 근심이 가득한 엄마로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바라보라고 호소한다. 그는 나의 교황이다. (…) 이 교황은 오늘날의 새로운 베드로로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온전한 신앙을 재확인하며, 새로운 바오로로서 전세계를 두루 다니며 구원의 복음을 용감하게 선포하고 있다.” (385,4-5)
실제로 1988년,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가 교황님의 승인 없이 주교들을 서임하며 교황청과 결별한 사건은 이러한 교도권 거부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례였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이를 단호히 파문하시며 교회의 일치를 수호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모님 말씀처럼, 많은 주교와 신학자들이 교황님과 일치하지 않고 다른 길을 따르며 교회의 내적 분열을 심화시켰습니다.
“교황의 마음은 지금 피를 흘리고 있다. (…) 수많은 주교가 이제는 교황과 일치하지 않으며, 교황이 지시하는 것과는 반대적인 길을 가고 있다.” (385,7-8)
성모님께서는 이미 경고하셨습니다.
“내 원수가 (…) 오류가 받아들여지고 교육되게 함으로써 교회를 어둡게 하고, (…) 교회의 교도권이 제시하는 진리와 일치되지 않는 교리 교육이 퍼지고 있다.” (294,8-10)
“내 원수 사탄은 속임수와 교활한 유혹으로, 진리에 대한 새롭고도 가장 현대화된 해석이라는 허울을 쓴 오류를 곳곳에 퍼뜨리는 데 성공했다.” (384,3)
이 말씀은 곧 성모님께서 현대주의 신학의 본질을 드러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을 흔들고, 성체 안에 참으로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부정하며, 복음을 단순한 윤리적 교훈으로 축소하는 오류입니다. 성모님께서 경고하신 대로, 이는 “진리에 대한 새롭고도 가장 현대화된 해석이라는 허울”로 포장되어 교회의 교도권을 거스르고 배교를 조장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끝까지 이러한 오류에 맞서 교회의 진리를 수호하셨지만, 성모님 말씀처럼 그의 교도권은 종종 무시되고 조롱받았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파티마의 비밀 속에 언급된 교황”이라 밝히시며, 그가 사명을 완수할 즈음 교회는 배교의 어둠에 휩싸일 것이라 경고하셨습니다.
“이 교황이 (…) 사명을 완수하고 (…) 내가 그의 희생을 받아들이려고 하늘에서 내려올 무렵이면, 너희는 모두 배교라는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 그때는 배교가 일반적인 것이 될 테니 말이다.” (449,6)
8.3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의 출현
성모님께서는 묵시록의 상징인 ‘666’을 통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가 시대마다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고 밝히십니다.
“666은 서기 666년, (…) 1332년, (…) 1998년을 가리킨다.” (407,14-16)
서기 666년에는 삼위일체와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한 이슬람이 무력으로 교회를 공격했습니다. 서기 1332년에는 인간 이성을 진리의 절대 기준으로 삼는 철학적 오류가 퍼져, 계시와 교회의 교도권을 거부하며 분열을 초래했습니다. 이는 현대주의 신학으로 발전하여, 신앙의 초자연적 차원을 상대화하는 전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기 1998년, 프리메이슨과 교회 내부에 침투한 교회 프리메이슨의 활동을 통해, 참 교회를 대신하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407,16)가 세워질 것이라 성모님께서는 경고하셨습니다.
성모님 말씀에 따르면, 1998년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의 씨앗이 제도적으로 뿌려진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선종 이후, 성모님께서 경고하신 대로 “배교의 어둠이 일반화되는 시대”(407,16)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 안의 현대주의와 세속주의는 더 이상 제지되지 않았고, 동시에 과학과 기술을 신처럼 숭배하는 문명이 급속히 자리 잡으며, 배교의 현실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미 텔레비전을 “묵시록에 나오는 우상”(374,9)이라 지적하시며, 그것이 원수의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텔레비전은 스마트폰으로 옮겨와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을 유혹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명의 발전은 사람들이 인간의 이성과 교만, 기술과 진보를 마치 신처럼 섬겨 온 결과이며, 성모님께서 “짐승의 첫째 머리는 교만이라는 모독적 이름을 달고 있다. (…) 인간의 이성과 교만과 기술과 진보라는 신을 숭배하게 만든다”(405,22)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드러나는 현실입니다.
특히 1998년 구글(Google)의 창업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그 해, 구글은 출범하여 오늘날 전 세계 디지털 산업과 정보 소비를 지배하는 핵심 주체가 되었습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현재 세계 스마트폰의 약 74% 이상에 탑재되어 있고, 유튜브는 매달 25억 명 이상이 사용하는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거대한 디지털 생태계는 전 세계인의 사고와 가치, 생활 방식을 좌우하며,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배교와 현대 문명의 기술 숭배는 분리된 현상이 아니라, 같은 뿌리에서 나온 하나의 흐름입니다. 곧,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 출현은 교회 내부에만 머물지 않으며, 인류 전체의 문화와 삶의 방식 안으로 깊숙이 침투하여 배교를 보편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8.4 거짓 그리스도의 낙인
성모님께서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의 출현과 더불어, 이 시대에 사람들이 받게 될 “낙인”에 대해서도 분명히 경고하십니다.
“'첫째 짐승'을 위해 세워진 그 우상을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경배하게 할 것이고, 물건을 사거나 팔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낙인을 받게 할 것이니, 그것은 바로 거짓 그리스도의 낙인이다. (…) 배교가 일반화될 터인즉, 거의 모든 사람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를 따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407,16)
이 낙인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에 전적으로 종속되었음을 드러내는 징표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지금은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의 추종자들이 이마와 손에 그의 낙인을 받는 시대”라고 말씀하시며, 이 낙인을 받은 자들은 결국 거짓 그리스도의 군대에 속하게 된다고 밝히십니다.
이마에 찍힌 낙인 — 하느님을 부정하고 무신론적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며, 오류를 퍼뜨리는 선전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손에 찍힌 낙인 — 모든 활동이 물질적 이익과 쾌락만을 향하도록 만들며, 결국 물질주의·쾌락주의·이기주의와 냉혹함의 희생물이 되게 합니다.
오늘날 이러한 현실은 매우 뚜렷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와 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오락·투기·쾌락을 좇으며, 세속적 성공과 소비를 인생의 목표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이는 생활 습관을 넘어, 영혼 깊숙이 거짓 그리스도의 낙인을 받아들이는 길이 되고 있습니다.
8.5 거룩한 십자가의 표
성모님께서는 동시에 희망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원수가 추종자들에게 낙인을 찍는다면, 천상 어머니께서는 당신 성심에 봉헌한 자녀들에게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한 십자가의 표를 찍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이미 너희 각 사람의 이마에 나의 인호를 새겨 두었다. 이 천상 엄마의 인호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내 원수가 더 이상 어떤짓도 할 수 없다.” (201,3)
“나는 내 성자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한 십자가 표로 너희의 이마에 내 인장을 찍는다. (…) 또한 너희의 손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표지를 찍어, 너희의 모든 행위가 하느님의 구원과 성화 사업에 깊이 참여하게 한다.” (410,16-17)
성모님께서 주시는 이 인장은 우리의 지성과 마음을 진리에 열어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고, 모든 활동을 하느님의 구원과 성화의 사업에 결합시키는 은총의 표입니다. 이 표를 받은 자녀들은 오류와 무신론, 물질주의의 물결 속에서도 굳건히 신앙을 증거하며, 성부의 섭리와 성자의 구속, 성령의 성화 능력에 협력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성모님은 우리에게 직접 초대하십니다.
“오늘, 모두 이마와 손에 이 엄마의 인장을 받으려무나.” (410,18)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 그리스도의 낙인을 거부하고,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 안에서 자신을 새롭게 봉헌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표를 받아 이 시대의 충실한 증거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8.6 충실한 작은 양떼
배교가 짙어지는 시대에도, 성모님께 봉헌된 충실한 작은 양떼가 남아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들이 티없으신 성심 안에서 보호받으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도록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2005년 4월 2일 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선종은 성모님께서 미리 알려주신 대로 교회가 배교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전환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그 시점에 이미 전 세계적으로 참 신앙이 약화되고, 교회의 분열과 세속화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희망을 선포하십니다.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신앙에 충실히 남아 있으리니, 그들은 (…) ‘티 없는 내 성심의 안전한 피난처’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449,7)
이 작은 양떼는 세상과 교회의 배교 속에서도 교황님과 일치하며, 기도와 희생으로 교회를 지탱하는 충실한 증인으로 남습니다. 성모님은 바로 이 충실한 이들이 영광에 싸여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맞이하고, 새 시대를 열 사명을 맡게 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8.7 시대의 묵상 ― 배교의 경고와 우리의 응답
성모님께서는 배교의 시작이 복음에 대한 불충실과 무절제한 활동에서 비롯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실제 삶 속에서 이 경고가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두 차례 특별한 체험을 통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성전 안에서, 또 하나는 일상에서 주어진 경험이었습니다.
✦ 성전에서 받은 경고
저는 성당에서의 한 경험을 통해, 성전 안에서는 온전히 주님께 집중해야 함을 깊이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미사 중 영성체 직후 미사가 끝나자마자 급한 용무 때문에 스마트폰을 켜려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그 순간 갑작스러운 다리 고통이 찾아와 주님께서 제 마음을 강하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 아픔은 마치 예수님의 발등에 못이 박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체험이었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 저는 성전 안에서는 어떤 이유로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임을 분명히 깨달았고, 그때부터 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스마트폰을 끄고 오직 주님께만 마음을 집중하려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 일상에서 받은 경고
저는 기도 중에 종종 성모님께서 복음을 이해하게 하시고 지혜를 주시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글로 정리하려는 활동에 치우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방의 전등이 완전히 꺼져 저녁에는 컴퓨터를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전등조차 살 여유가 없던 상황에서, 저는 자연스레 글을 쓰지 못하고 오직 기도와 침묵 안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주님께서는 “너의 일을 내려놓고, 더 깊이 나를 신뢰하며 함께 머물라”는 초대를 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신앙의 길에서는 아무리 좋은 활동이라도 하느님과의 일치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이 두 가지 체험은 배교의 시작이 얼마나 은밀하고 미묘하게 스며드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성전에서의 작은 산만함, 선한 활동조차 기도를 대신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주님을 향한 시선을 잃고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불러 세우시며, 티없으신 성심 안에서 충실히 머물도록 이끄십니다.
오늘 우리의 응답은 분명합니다. 기도와 침묵 안에서 주님과 일치를 지키며, 작은 불충실이 스며들 때마다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여 다시 충실함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8장을 마치며
성모님께서 예고하신 대로, 오늘 우리는 배교가 시작되어 확산되고 마침내 일반화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교회 안의 오류와 혼란은 거짓 교회와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이어지며,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그들의 낙인에 종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흔들리는 세상 한가운데서 거짓 그리스도의 낙인을 단호히 거부하고, 성모님께 봉헌을 새롭게 하며 십자가의 표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는 곧 교황님과 교회에 일치하며 끝까지 충실한 증인으로 서는 길입니다.
배교의 어둠이 짙어질수록 인류는 피할 수 없는 큰 시련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제 다음 장에서는 그 절정인 대환난기를 살펴보며, 성모님께서 드러내신 비밀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지를 묵상하겠습니다.
<이 장에서 참조한 메시지> 8, 22, 74, 88, 90, 99, 122, 136, 201, 270, 294, 370, 374, 375, 384, 385, 405, 407, 410, 449
함께하는 가톨릭 기도 (체나콜로)
https://www.youtube.com/@letspraytogether1004
-

-
- +찬미예수님 대구 대교구 다니엘 나기정신부의 편지 158버째 연중 제13주일 (6월 28일), 함께 하실 말씀은
-
190321
오완수
16:47
-
반대 0신고 0
-
- <묵상 에세이 2부> 깨어 있으라는 환시와 시대의 표징
-
2941
박소영
14:57
-
반대 0신고 0
-
- <묵상 에세이 2부> 성체 앞으로 돌아갑시다
-
2940
박소영
14:52
-
반대 0신고 0
-
- <묵상 에세이 2부>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
2939
박소영
14:49
-
반대 0신고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