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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6월 25일 (목)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남북통일 기원 미사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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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6/25)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190278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9:43

 

* 제1독서 : 신명 30, 1-5

* 제2독서 : 에페 4, 29-5,2

* 복음 : 마태 18, 19-22

* <오늘의 강론>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제1독서>의 말씀에서는 특별히 “오늘”이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 너희를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신명 30,2-3)

이는 축복과 저주는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인간에게도 달려있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이처럼, 분단극복과 화해와 일치의 실현에는 그동안의 우리의 불성실을 성찰하는 동시에, 바로 오늘 우리의 책무와 투신을 요청합니다.

오늘 <제2독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화해와 평화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남을 해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에페 4,29)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들 사이의 분쟁의 상당한 것들은 잘못된 말이나, 욕, 비난, 중상모략, 거짓말 등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남과 북이 서로를 비방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하기도 합니다. 사실은 서로가 고무하고 찬양해야 될 터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은총을 가져다주는 좋은 말, 기쁨과 칭송의 말, 축복의 말로 신의를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둘째>로,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라.”(에페 4,30)고 하십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과 온갖 악의”는 성령에 대한 모독이 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들의 몸이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 됩니다.

<셋째>로,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라.”(에페 4,32)고 하십니다.

사실, 용서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거저 받은 것을 마땅히 이웃에게 거주 주어야 할 일입니다. 남과 북이 한 형제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넷째>로,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에페 5,1)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그렇게 우리 자신을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내어놓으라는 말씀입니다. 곧 하느님을 본받는 사랑 안에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따르는 두 가지 말씀을 주십니다.

<첫째>로,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라.”(마태 18,19 참조)고 하십니다.

바로 이 땅이 우리가 이루어야 할 친교와 화해의 장소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 땅에서 서로 마음을 모으라는 일치에 대한 호소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 20)

<둘째>로, “일흔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마태 18, 22)고 하십니다.

용서하는데 있어서 조건이나 단서를 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죄를 고백해야만, 혹은 용서를 청해야만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완고하고 고집부리더라도 혹은 계속해서 똑같은 죄를 반복하더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무한히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니 당신께서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용서하셨듯이, 바로 우리도 그렇게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남북통일기원미사”를 봉헌하면서,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적대감’과 ‘대립’을 몰아내야 할 일입니다.

‘편견’과 ‘거짓’과 ‘위선’을 몰아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와 ‘용서’, 그리고 ‘일치’와 ‘사랑’을 위한 ‘헌신’과 ‘투신’을 실현해 나가야 할 일입니다. 아멘.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주님!

일곱 번이 아니라 더 큰 사랑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먼저 용서하고 용서에 사랑을 더하게 하소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끝까지 용서하셨으니

용서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선으로 사랑하고,

그가 잘 되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아무리 꺾이어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으신 주님처럼,

저 역시 당신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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