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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6월 18일 (목)연중 제11주간 목요일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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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전삼용 신부님_주님의 기도로 모든 것을 얻어내는 방법

190173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9:35

 

찬미 예수님! 하루도 또 잘 지내셨죠?
오늘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함께 나누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시면서 아주 뼈 있는 경고를 덧붙이시죠.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기도 생활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말해, 우리는 하느님 앞에 끊임없이 청구서만 들이밀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 애 대학 붙게 해주세요.
이번 사업 꼭 대박 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마치 자판기에 동전을 넣듯 기도를 기계적으로 돌리고, 주님의 기도를 주문 외우듯 수백 번 반복합니다.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내 편의와 목적을 위해 기도의 본질을 교묘하게 조작하고 왜곡하는 행위입니다.
하느님을 내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 지니로 전락시키는 무서운 교만이죠. 
 
누군가에게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 마음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된 『이솝 우화』 중에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해 놓고 자기가 먹기 편한 납작한 접시에 수프를 내옵니다.
두루미는 긴 부리 때문에 한 입도 먹지 못하죠.
여우는 속으로 '내가 이렇게 훌륭한 식사를 대접했는데 왜 안 먹지?' 하고 섭섭해합니다.
상대를 향한 묵상이 빠진 일방적인 베풂은 이토록 폭력적입니다. 
 
이 우화가 현실로 나타난 것을 텔레비전 프로그램 '개는 훌륭하다' (2019)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알래스칸 말라뮤트 샐리라는 덩치 큰 개의 이야기입니다.
이 샐리는 주인이 손만 대면 이빨을 드러내고 물어뜯으려 하며, 밤낮없이 늑대처럼 하울링을 해대서 이웃들의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억울해 죽습니다.
자기는 샐리에게 사람이 살 만큼 훌륭한 집을 지어주고, 손수 고기를 입에 넣어주고, 매일 예쁘게 털을 빗겨주며 지극정성으로 사랑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강형욱 훈련사가 와서 내린 진단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보호자님이 문제입니다."
샐리는 어릴 적 파양된 상처와 의지하던 동료 개를 잃은 극심한 외로움과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샐리가 진짜 원했던 것은 주인이 그저 조용히 자기 곁에 머물러 주는 것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자기가 해주고 싶은 방식대로 털을 빗기고, 억지로 밥을 먹이려 들었습니다. 샐리에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끔찍한 괴롭힘이었던 겁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서 얻어내려면, 내 방식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지 먼저 읽어야 합니다. 
 
이철환 작가의 글 중에 눈만 오면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며칠씩 내려오지 않는 판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숲속 동물들은 모두 판다가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하지만 오직 토끼만이 그 이유를 알고 있었죠.
"판다의 새끼들이 사냥꾼에게 잡혀갔어. 눈밭에 찍힌 자기 발자국을 사냥꾼이 따라왔기 때문이지.
판다는 눈 위에 자기 발자국이 찍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거야."
토끼는 어떻게 판다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판다의 입장이 되어 그 아픔을 깊이 묵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내 소원을 뜯어내기 위한 주문이 아닙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이 지금 어디로 향해 있는지, 아버지께서 이 땅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어 하시는지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먼저 청하는 묵상입니다. 
 
구약 성경 『사무엘기 상권』 13장을 보면, 기도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었다가 파국을 맞은
사울 임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필리스티아 대군이 쳐들어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포에 질려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다급해진 사울 임금은 사무엘 예언자가 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직접 나서서 하느님께 번제물을 바쳐버립니다. 
 
사울은 하느님의 뜻이나 그분이 정하신 율법의 질서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당장 전쟁에서 이기게 해 줄 하느님의 권능이라는 결과물만 뜯어내고 싶었죠.
하느님의 뜻을 묻는 묵상은 생략한 채 자기 소원부터 들이민 결과가 어땠습니까?
사무엘은 사울에게 "임금님은 어리석은 짓을 하셨소.
주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니, 이제 임금님의
왕권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할 것이오."라고 선언합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읽지 않고 내 뜻만 강요하는 기도는 사울의 번제물처럼 결국 하느님과의 단절을 가져올 뿐입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뜻에 내 마음을 완전히 맞추었을 때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질까요?
13세기 독일의 위대한 신비가 대 제르트루다 성녀의 일화가 이를 잘 증명합니다.
어느 날 성녀가 예수님께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주님, 어찌하여 제가 청하지 않은 것조차 이토록 넘치게 다 들어주십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너의 뜻을 버리고 온전히 나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나 역시 내 뜻을 버리고 온전히 너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였단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은 참으로 단순합니다. 내 청구서를 찢어버리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먼저 여쭙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지 마십시오.
한 구절 한 구절 입에 올릴 때마다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애타는 마음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저는 성체조배 할 때 주님의 기도만 호흡으로 숫자를 세며 그것만 묵상합니다. 
 
두 시간 동안 주님의 기도를 한 번만 바칠 때도 있습니다.
나의 마음을 그분 마음에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알아서 다 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드리기 시작할 때,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주십니다.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완벽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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