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녹) 2026년 6월 14일 (일)연중 제11주일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을 보내셨다.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11주일 가해]

190108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08:03

[연중 제11주일 가해] 마태 9,36-10,8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오늘 복음에 나오는 군중들의 모습은 팍팍한 현실 속에서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과 참 닮아 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지금 우리도 참 여러가지 것들에 시달리고 있지요. 힘이 없어서 폭력에 시달리고, 가진 게 없어서 유혹에 시달리며, 능력이 부족해서 일에 시달리고, 건강이 없어서 고통과 질병에 시달리고, 믿음이 없어서 근심 걱정에 시달립니다. 그렇게 여러가지 것들에 시달리다보니 자연스레 마음이 주눅들고 자신감을 잃어 기가 꺾인 채 살아갑니다. 좋은 일자리를 못구해서 의욕이 꺾이고, 돈을 못 벌어서 자신감이 꺾이고, 삶의 터전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자존감이 꺾인 채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렇게 사는 게 힘에 부치면 지쳐 넘어지게 되지요.

 

그런 우리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은 어떤 마음이 드실까요? 당신께서 보시기 좋게 창조하신 세상에서 참된 행복을 맘껏 누리며 살라고 당신 모습대로 우리를 지어 만드셨는데, 행복을 누리기는 커녕 좌절 속에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너무나 가엾고 안타까우시겠지요. 예수님도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그분은 고통과 시련의 풍랑에 시달리느라 몸과 마음이 지치고 꺾인 우리를 가엾이 여기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엾이 여기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의 원래 뜻은 태중의 아기와 완전히 연결되어 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리키지요. 어머니는 아기와 한 몸으로 연결되어 함께 숨쉬며 살아가기에, 아기가 아프면 어머니도 아프고 아기가 힘들면 어머니도 힘든데, 우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우리는 ‘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작고 약한 이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시는 분이기에, 우리가 슬프면 예수님도 슬프고 우리가 아프면 예수님도 아픈 겁니다.

 

우리 모습이 그렇게 보기 안쓰럽다면 당신께서 직접 우리 앞에 놓인 고통과 시련을 없애주시면 될텐데, 참된 기쁨과 행복, 보람과 성취라는 삶의 열매를 당신께서 직접 우리 손에 담아주시면 될텐데, 예수님은 왜인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알아서 하도록 놔두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특히 이 말씀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지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왜 예수님은 “수확할 밭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일꾼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라 하실까요? ‘추수’는 하느님의 일이고 그분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하실 수 있지만, 하느님은 인간 편에서의 자발적인 협력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며, 참된 사랑은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 ‘쌍방통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느님께 일꾼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라는 건 수동적으로 그분께서 주시기를 바라기만 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 일꾼이 되어달라고 나를 부르시면 기꺼이 그 부르심에 응답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그런 마음가짐으로 당신을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건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있지요. 가진 게 없어도, 배움이 짧아도, 특출난 재주가 없어도, 그분의 뜻과 가르침을 따르며 살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로 부르신 이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특별한 권한을 주시어 병자들을 치유하고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게 하시지요. 유다인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중병을 앓는 환자들이나 마귀들린 이들은 모두 하느님께 큰 죄를 지어 벌을 받은 이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더러운 영에서 해방시키심으로써 그들이 겪는 고통이 하느님께 받은 ‘벌’이 아님을, 하느님은 우리를 심판하고 벌 주시는 무서운 분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고 사랑하시는 자비로운 분임을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내가 겪는 고통과 시련을 하느님이 주시는 ‘벌’로 여기며 체념하는 건 참된 믿음이 아니지요. 그리스도 신앙인은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이 함께 하심을 굳게 믿으며 그 고통을 잘 극복해야 합니다. 또한 그런 고통을 겪게 하신 하느님의 깊은 뜻이 무엇인지 잘 헤아리고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이며 그 안에 ‘하느님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제자인 우리에게 그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셨고, 어떻게 해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 그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특별한 존재여서가 아닙니다. 대단한 공로를 세워서도 아닙니다. 부족하고 약한 우리를, 죄 많고 허물 많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구원받을 기회를 열어주신 것이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큰 사랑에 응답해야 합니다. 삶과 행동으로 그분 사랑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미사 끝날 때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하며 세상으로 ‘파견’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세상에 파견된 ‘특사’, 즉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과 사랑을 거저 베풀어 주셨음에 감사하며, 나도 이웃 형제들에게 사랑과 자비, 양보와 희생을 거저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그런 우리 가운데에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0 65 0

추천  0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