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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190052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2026-06-10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마태 5,17-19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우리는 보통 ‘예수님’하면 율법에 얽매이거나 허례허식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떠올립니다. 그건 그 당시 예수님을 바라보는 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병자들을 치유해주시고, ‘정결법’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죄인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분이 자기들을 옭아매어 힘들게 만드는 율법이라는 ‘멍에’를 없애주러 오신 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졌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이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고 하시니,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라 어리둥절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배신감도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하신 건 율법조항의 가짓 수를 늘리거나, 율법을 적용하는 원칙을 더 엄격하게 하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서 자기들에게 율법을 왜 주셨는지 그 ‘이유’와 ‘뜻’을 잊어버리고, 율법 조항을 그저 ‘글자 그대로’ 지키는데에만 연연함으로써, 율법이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괴롭고 부담스러운 ‘족쇄’처럼 여겨지는 안타까운 상황을 타개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즉 딱딱한 글자로 새겨진 율법의 차가운 정의에, 따뜻한 사랑과 자비로 융통성을 부여함으로써 율법이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만드시겠다는 것이지요.

 

 

율법은 사람들에게 하느님 뜻을 억지로 강요하거나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라는 식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금지하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신 건 그들이 당신께서 바라시는대로 올바른 길을 잘 걸음으로써 구원받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 십계명을 잘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율법 역시 사람들을 억압하고 제한하는 족쇄가 아니라, 그들이 하느님 뜻에 맞게 잘 살도록 격려하는 ‘원동력’이자, 그들이 하느님 나라까지 무사히 다다르도록 이끄는 ‘이정표’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어린 자녀가 첫 걸음마를 뗄 때 부모는 아기가 넘어진 횟수보다 걸음을 내딛은 숫자에 관심을 기울이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도 우리가 구원의 여정을 걷는 과정에서 유혹에 걸려 넘어져 죄를 지은 횟수보다, 우리가 당신 나라를 향해 몇 발이나 내딛었는지 그 걸음수를,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그 거리를 보시지요. 그러니 그런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계명과 율법을 다른 이들을 심판하고 단죄하는 ‘무기’로 휘둘러서는 안됩니다.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생각하며 모두 함께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하는 방법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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