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홍) 2026년 6월 11일 (목)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나는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90048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6-10

법무팀에 있을때 법무팀은 법을 집행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대소사를 취급하는 곳입니다. 특히나 회사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늘 법무팀에서 대소사를 해결하러 나가는 곳이 법무팀입니다. 항상 문제의 발단은 편법입니다. 쉽게 가려는 마음입니다. 지배하려는 마음이 문제의 원인입니다. 그래서 그 뒷 감당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재속회에서도 힘이 들었던 것이 성화가 목적인데 그것과 다른 것이 작용하였기에 힘이 들었습니다. 사랑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숙한 사람이 법을 집행에서 오는 부조화가 문제였습니다. 성화는 신부 수도자들의 전유물이고 우리는 먹고 사는데 집중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종신이라는 서원은 왜 하고 옷은 왜 입는 것인지? 주된 활동은 공부해서 나누는 것이 전부입니다. 사람들과 관계에서도 그곳도 사회이기에 위계 질서가 작용합니다. 그래서 종신 할 때까지 조용히 지내는 것이 삶입니다. 어떤 틀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화입니다. 이곳도 지배가 작용하더라구요. 그래서 법이 있고 법을 이용하여서 재제를 가한다고 할까요? 조직이 어려워지는것은 거룩함이 없이 내 본성대로 살면서 이름은 성경책에 나와 있는 어원을 사용하고 규제를 가하는 것, 바리사이가 요즘 교회 안에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인물들이 법위에 군림하고 종교 언어를 사용하고 사람들에게 거룩하다고 듣고 싶어하는 인물이 바로 바리사이이고 사람들 앞에서 더 목소리를 높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바리사이입니다. 미숙한 사람이 법을 집행하는것이 결국은 멍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의 어둠에 지쳐서 살아가는 것을 보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무지를 모르고 어둠을 모르고 실행하고 결국은 그 무지로 인해서 사람은 종국 내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게됩니다. 그래서 성화가 필수 길입니다. 나도 행복해지는 것이고 상대방도 행복해지는 것이 결국은 성화입니다. 법은 너와 내가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안전 영역으로 정해진 것이고 그것을 서로 지키면서 상대방을 보호하는 사회적인 규약입니다. 너와 내가 살아가는데 법을 존중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존중하면서 존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느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법위에 군림하지 않으시고 그 아래서 살아가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법위에 군림하셨다면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은 당하지 않으셨을것입니다. 그러나 철저히 법의 지배를 받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 법이 미숙한 사람이 집해한다고 할지라도 온전히 복종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인간의 모순된 결과가 십자가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받아 들이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인간 삶의 모순되고 죄라고 할지라도 받아 들고 걸어가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하느님의 법은 받아 들이는 것이기에 모순된 법도 받아들고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기에 그렇게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는데 그 율법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주님의 율법은 사랑입니다. 성문화된 글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사랑의 법칙, 받이들이고 내어 맡김의 영성의 길이 주님의 율법입니다. 하느님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 하느님의 법입니다. 하느님의 법이 성문화로 표현한다면 사랑입니다. 주님이 주신 법은 두가지, 하나는 하느님과 나의 사랑,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이 전부입니다. 그것이 법입니다. 법의 완성은 하느님 안에서 모두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 죽음으로 걸어가신 것입니다. 법을 완전히 이루기 위해서 걸어가신 것입니다. 사랑.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 65 0

추천  2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