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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6월 7일 (일)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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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가해] 8

189998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07:31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가해] 요한 6,51-58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우리 조상들은 가을이 되어 나무에 열린 과일을 거둘 때, 위 쪽에 달린 몇 개는 따지 않고 그냥 남겨두었습니다. ‘까치밥’이라고 부르는 전통으로, 추운 겨울이 되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새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그들을 위한 양식을 남겨둔 넉넉한 마음 씀씀이였지요. 그러면 새들은 배고플 때 그 과일을 쪼아먹으며 혹독한 겨울에도 삶을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산행길에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재미 삼아 줍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차피 도토리 몇 개를 줍는다고 묵을 쒀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재미’로 줍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재미’ 때문에 그 도토리 몇 개를 열심히 모아 겨울을 나야하는 다람쥐들은 굶게 됩니다. 누군가를 위해 ‘밥을 남기는 삶’ 과 누군가에게서 ‘밥을 빼앗는 삶’. 어쩌면 사소해보이는 선택이지만 그 결과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게 됩니다.

 

보잘 것 없는 과일 몇 개를 남겨주는 것이 작은 동물들의 목숨을 살린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생명의 양식’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숨을 살릴까요? 오늘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몸과 피를 참된 양식으로 내어주신 것을 기념하며 감사를 드리는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우리를 위해 내어주시는 양식의 정체를 ‘나의 살’이라고 밝히십니다. 여기서 ‘살’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사륵스’(sarx)는 인간의 육신 전체를 가리킵니다. 즉 주님은 필요 없어서 빼버리고 싶은 당신 몸의 일부를 떼주시는게 아니라, 생명을 포함한 당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주님을 받아모심으로써, 그분께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해 누리시는 영원한 생명을 우리도 누리게 하시려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런 주님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그분의 살 한 점 피 한 방울도 헛되이 흘리지 말고 온전히 받아먹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주님을 온전히 받아먹을 수 있을까요? 그분의 몸을 ‘음식’이 아니라 ‘양식’으로 받아먹어야 합니다. 주님은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위한 ‘양식’으로 주신 것이지, 당장의 배부름이나 미각적 쾌락을 위한 ‘음식’으로 내어주신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음식과 양식은 어떻게 다를까요? 어린 아이들은 부모가 주는 음식을 당연한 듯 먹습니다. 이렇게 먹으면 말 그대로 ‘음식’이 됩니다. 그러나 점점 나이를 먹고 철이 들어갈수록 부모가 주는 음식을 먹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을 지니며 무엇으로든, 어떻게든 보답하려는 마음을 품지요. 이렇게 먹으면 내가 먹은 음식이 나를 위한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 그리고 희생이 담긴 ‘양식’이 됩니다. 예수님의 몸을 받아먹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미사 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성체를 영하면 그 성체는 나에게 몇 시간 뒤면 빠져나가는 음식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나를 위한 주님의 사랑과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영하고, 그 보답으로 이웃에게 사랑과 자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면 내가 모신 성체는 나를 주님과 일치시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이 되지요.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당신을 참된 ‘양식’으로 영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받아먹는 두번째 방법은 주님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셨고, 우리와 똑같은 부족함과 약함, 슬픔과 아픔을 끌어 안으셨으며, 죽음마저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 안에 머무르기 위해 고통과 시련, 의무와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처럼 믿고 순명하며 용서와 포용,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무르면, 우리는 주님 사랑 안에서 하느님을 닮은 거룩하고 의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지요. 그래야 내가 받아모신 주님의 몸이 ‘영적 거부반응’ 없이 온전히 나의 몸이 되고, 내가 받아모신 주님의 피가 온전히 나의 피가 됩니다. 그렇게 내 영혼 구석구석에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스며들어 메마르고 상처 가득한 내 마음에 따스한 온기와 생명력을 불어넣게 됩니다.

 

주님을 온전히 받아모심으로써 그분 안에 머무르고, 주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룬 사람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갈라 2,20)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이유이자 최종 목표이지요. 주님께서도 아버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사셨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철저히 하느님 뜻에 따르며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분께 순종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어 그분과 함께 영광을 누리시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주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그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내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면, 다시 말해 주님 뜻을 따르는 것이 내가 사는 이유이자 의미가 되면, 나는 언제까지나 주님과 함께 하면서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것이 주님의 몸을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 먹은 이들만 누리는 특전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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