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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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96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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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마르12,7)
'자기 성소에 충실하자!'
오늘 복음(마르12,1-12)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유다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들려 주신 비유입니다
어느 포도밭 주인이 자신의 토지를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납니다. 포도철이 되자, 그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소출을 받아오라고 여러차례 종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주인의 종들을 때리고, 상처를 입히고, 죽여버립니다. 주인이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아들마저 죽여버립니다.
오늘 비유가 많은 것을 묵상하게 합니다.
먼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서 포도밭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종들은 하느님이 보냈던 예언자들입니다. 그리고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이십니다. 종들과 아들을 박해하고 죽인 소작인들은 유다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아들 예수님을 통해 완전히 드러났는데, 그 뜻은 먼저 내가 살고, 너와 모두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활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게 하는 것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소명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예언자들과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인 유다인들과 같게 됩니다.
오늘 독서(2베드1,2-7)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받은 소명과 선택이 굳건해 지도록 애쓰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충분히 갖추게 될 것입니다."(2베드1,10-11)
내 성소에 충실합시다!
그래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립시다!
조욱현신부님_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밭과 주인, 소작인, 종들, 그리고 아들을 등장시키는 비유를 말씀하신다. 포도밭은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주인은 하느님이다.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맡기고 떠났지만, 소작인들은 주인의 뜻보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주인이 소출을 거두기 위해 보낸 종들은 매를 맞거나 죽임을 당한다. 마지막으로 아들까지 보냈지만, 그들은 아들마저 죽이고자 공모한다.
이 비유는 이스라엘의 역사이다. 비유 속의 주인은 소출을 거두기 위해 종들을 여러 차례 보낸다. 한두 번 거절당했을 때, 끝낼 수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기회를 주신다. 이는 하느님의 인내와 자비를 보여 준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인내를 통하여 죄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 하느님은 우리가 끊임없이 거부하고 저항해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기회를 주신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 자비로운 인내 안에서 유지된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6절)라는 구절은 하느님의 자기 비움, 곧 케노시스를 보여 준다. 성 이레네오는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을 통하여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주셨고, 인간이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도록 하셨다.”(Adversus Haereses IV,6,7 요약)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신 아들은 세상에서 “내버린 돌”이었지만, 부활로써 “머릿돌”이 되셨다. 세상은 힘과 영광을 추구하지만, 하느님은 버림과 죽음을 통해 구원을 이루셨다.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이다.
소작인들의 죄는 단순히 탐욕 때문만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를 배신한 것이다. 포도밭은 사실 주인의 것이었지만, 그들은 자기 소유로 삼았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과 재능, 시간과 은총은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것을 내 것이라 착각하고, 하느님께 돌려드리기를 거부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뜻을 좇는 자는 외형은 번성하는 듯 보이나 결국 스스로 무너진다.”
우리에게 맡겨진 삶은 하느님의 포도밭이다. 우리는 단순한 관리인이자 집사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1코린 4,1-2)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포도밭에 부름을 받은 소작인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머릿돌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충실히 열매를 맺는 포도밭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하는 참된 백성이 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모퉁이의 머릿돌
이번 주간 평일 미사 복음 말씀으로 우리는 마르코 복음 12장을 읽고 묵상합니다. 앞선 11장에서 예수님은 성도(聖都)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으로써 구원사업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시며, 13장부터 기술되는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본격적인 구원 여정에 앞서, 12장은 유다교의 지도자들, 곧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몇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마지막으로 논쟁을 벌이시는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오늘 복음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말씀입니다. ‘포도밭’ 또는 ‘포도나무’ 하면, 하느님을 포도밭 주인으로, 그리고 이스라엘을 포도나무 또는 포도밭에 비유하기를 즐겼던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이 떠오릅니다(호세 10,1; 이사 5,1-7; 예레 2,21; 에제 19,10-14 등등). 이들은 하나 같이 포도밭 주인의 애정과 정성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열매를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 또는 포도밭의 행태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에 성실하지 못한 모습, 구체적으로 다른 신을 섬기는 모습을 질타하거나, ‘공정’과 ‘정의’를 기대하셨으나 (약자들의) ‘피 흘림’과 ‘울부짖음’으로 응답하는 이스라엘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하는 말씀으로 비유를 여시는 것을 보니, 이사야 예언자의 그 유명한 ‘포도밭 노래’의 첫 부분을(이사 5,2) 인용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면, 비난의 대상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백성의 지도자들, 곧 “소작인들”, 문맥상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라는 점입니다(마르 11,27 참조). 포도밭 주인이 소작인들에게 소출의 일부를 받아오도록 종들을 파견하나, 매질과 신체적 손상과 살해로 대꾸하는 소작인들, 끝내 포도밭 주인의 상속자인 사랑하는 아들마저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린” 소작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구보다도 유다의 지도자들은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풍자적 비유로서 세부적인 차원까지 명백하게 드러나는 이야기입니다. 포도밭은 이스라엘을 상징하며, 소작인들은 이스라엘을 책임지는,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과 같은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파견된 종들은 ‘예언자들’, 그 가운데서도 포도나무 또는 포도밭 비유를 즐겼던 예언자들을 암시하며, 포도밭 주인의 “상속자”이며 “사랑하는 아들”은 두말할 것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예수님, 그러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할”, 부활하실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이 비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들의 뜻대로 이끌어가는 지도자들, 끝내 당신을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로 취급하려는 적대자들을 고발하시며, 하느님은 당신 포도밭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상 희생과 부활의 영광을 통하여 구원의 길로 이끌어 가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오늘 하루,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우리 편에 서시며 우리와 함께 걸어가시는 주님의 사랑과 보살핌에 감사드리며, 힘과 용기를 내 더욱 열심히 걸어가는, 희망에 찬 신앙인의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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