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6년 5월 26일 (화)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나눔마당

sub_menu

따뜻한이야기
나의 사람들(1) 아버지와 어머니

105175 조기동 [keedongcho] 스크랩 11:41

 

 

 

 

 

 

아버지 대야미로 이사한지 12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참 이사를 많이 했어요. 스무 번도 넘게 이사를 한 것 같습니다. 셋집에 살다보니 서러움도 많았습니다. 주인집 아들과 다투다보면 " 야, 니네 이사가" 소리를 듣곤 했지요. 아버지께서 군에서 휴가 나온 저의 손을 잡고 "주인집에 먼저 인사드리러 가자" 했을 때 정말 창피했습니다. 무허가집에다 가구수는 많아 아침마다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에 가기위해 줄을 서야 했지요. 그래도 아버지는 막내 며느리를 위해 조금 나은 집으로 이사를 하시고 처음으로 싱크대와 가스렌지를 들여놓으셨어요. 이제야 감사를 드립니다. 그 물난리 많던 한강로 3가에서 함께 물 푸던 것도 기억나시지요.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좋은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자주 해 드렸을 텐데.

참, 아버지, 이전에 TV에 러브 하우스라는 것이 있었어요. 헌 집을 새 집처럼 고쳐주는 프로그램이었지요. 언젠가는 남편은 왜소증에 신부전증,아내는 소아마비인 부부가 나왔어요, 그런 가운데에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친척 식구들을 거두어 주고 딸 셋을 대학까지 훌륭히 공부시킨 노점상 부부지요. 아이들과 함께 보다가 모두 눈이 붉어졌어요. 저야 두 분 부모님이 오래 노점을 하시고 항상 허술한 집에서 사시던 모습이 떠올라 남의 일 같지 않았지만 얘들에게도 느끼는 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날마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세례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술 담배도 하지 않으시고 팔십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 분이시니 그분께서 너그러이 헤아려 주시길 바라며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종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아버지 저를 위해 사신 것이 헛되지 않도록 착하고 바르게 살다가 이 육신을 벗고 새 육신으로 (이 또한 러브 하우스이겠지요.) 만나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아버지는 만나셨나요.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이제 19년이 되어 가네요.공원묘지에 함께 누워 계시는 두 분... 어머니,자식들 키우기가 쉽지는 않네요.

어머니가 저 때문에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 가득합니다.데모한다고 천방지축 날뛰다가 경찰서 신세를 졌을 때,제가 많이 아팠을 때,둘째 형수가 세상을 떴을 때, 아버지께서 세상을 뜨셨을 때 그래도 어머니는 잘 사셨습니다.칠십이 넘기까지 일을 하시며 육남매를 키우셨구요 화 한번 내지 않고 사셨고 뒤늦게 자식들을 위해 신앙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하셨습니다. 어머니 저는 잘 지냅니다. 그분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건강하고, 제 밥벌이는 하고 있습니다. 손녀딸은 회사에서 손자 부부는 초등학교 교사로 두 딸과 함께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저를 불러 장판 밑에서 꼬깃꼬깃한 백몇만원을 주시던 생각을 하며 눈물짓습니다.어려운 살림에 드실 것 안 드시고 병원에 가지 않고 모은 돈을 꺼내 놓으신 생각을 하면... 어머니..매일 전화할 때 마다 " 막내야 사랑해 ""저도 사랑합니다. 어머니" " 막내야 정말 사랑해" "저도 정말 사랑합니다.어머니" 길고 긴 사랑 가득한 대화를 나누었던 우리 사이, 돌아가신 뒤에도 이어지리라 믿습니다.어제는 제기동에서 노점을 하는 둘째누나를 만났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아들 뒷바라지에 바쁩니다. 누나는 군밤을 주셨고 저는 맛있는 것 사드시라고 돈을 좀 드렸습니다.그리고 서로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다른 노점상 동료들이 웃었습니다.

어머니를 보고 사랑을 배웠습니다.어머니가 계셨기에 세상이 무섭지 않았습니다.어머니를 만났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제가 죽으면 심판을 받겠지요. 그러나 그 심판관이 우리 엄마같은 분이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저는 그분 이름을 부르면 엄마 생각이 떠올라요. 주고 주고 주고 마지막 것까지 주고 떠난..... 사랑하는 어머니, 정 순옥 마리아.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가 전화가 뜸하면 어머니가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신다.

발신자 표시에 “ 정 순옥”이라고 뜬다.

“어머니세요.”

“아이고 내새끼. 어떻게 알았냐”

(다 아는 수가 있지요.^^)

“제가 다시 걸께요.”

다시 내가 건다.

“니 돈은 돈 아니냐. 뭘라고 다시 거냐잉 ?”

우리는 전화를 끝내기가 쉽지 않다.

“사랑한다.막둥아.”

“저도 사랑해요.어머니.”

“사랑한다 우리아들”

“저도 사랑해요.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이제 그만 가고 싶다. 밥도 묵기 싫고 너무 심심해서 이제 갔으면 좋겄다.

니 아버지처럼 곱게 가고 싶다..”

“그래도 사셔야 해요.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것만으로도 제겐 힘이 되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저는 고아가 되잖아요.“

“그러냐 내새끼.”

어머니는 성당에 다니신다. 우리집 형제들은 종교가 다르다. 큰 형수는 여성 목사다. 어머니는 내가 전화로 조금 말씀드렸더니 가까운 곳에 사는 큰 형님네 몰래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을 하시고 세례와 견진을 받으셨다. 예수님 십자가 밑의 성모 마리아님과 사도요한을 생각해서 나는 어머니 세례명을 마리아로 지었다.

다른 어머니들처럼 고생을 많이 하셨다.일찍 외할머니를 여의고 빚만 있는 소작농에 시집와서 시누이 둘과 시동생 한 명을 결혼시키셨다.자식 아홉을 낳아 셋을 잃고 여섯을 키우셨다.

담양에서 농사를 짓다가 광주로 이사온 다음에는 자식들 교육시키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칠십이 되실때까지 행상을 하셨다.

큰 형수가 원하지 않아서, 함께 살지 않았고 형제들이 큰 형님댁을 방문하는 것도 어려웠다. 가난했지만 자상한 아버지가 계실땐 괜찮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많이 외로워하셨다.서글서글한 둘째 형수와 생활비를 꼬박꼬박 부쳐주던 셋째 며느리를 잃고는 더 많이 늙으셨다.

그런 어머니가 이제 세상과 이별하는 준비를 하시나보다.

나와 만나면 항상 내 손을 꼭 붙잡고 주무시던 어머니,

명절이면 차로 오는 것 힘들다며 오지 말라고 하시던 어머니,

어머니 치마에는 홍시며 돈이며 온갖 것이 다 들어 있었고,

무슨 일이든 어머니한테 이야기하고 나면 항상 다독여주셨다.

어머니는 항상 내 편이셨다.

예수님처럼.

어머니, 제 마음 아시지요.

어머니 제 마음 아시지요.

예수님, 제 마음 아시지요.

몸도 마음도 덜 건강하고

믿음도 행동도 부족하지만

어머니 은혜로

살았다는 것.

예수님 은총으로

구원받으리라는 것.

어머니

저를 낳아주시고

보살펴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해요.

어머니.

앞으로도 쭈욱이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어머니와 저사이

질투 했다는 건 모르시지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0 7 0

추천  0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