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녹) 2025년 10월 10일 (금)연중 제27주간 금요일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송영진 신부님_<기도는 ‘이미’ 주신 은총을 잘 받기 위한 일입니다.>

185396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10-09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5-13)”

1) 5절-8절의 말씀은, “인간 세상에서는 부탁을 몹시

귀찮게 여기면서 들어 주기를 거절하는 경우가 많고,

끈질기게 졸라 대면 마지못해 겨우 들어 주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청을 곧바로 들어 주시는 분이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귀찮아하시더라도 끈질기게

청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매일미사 책의 설명은 잘못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뒤의 18장에 있는 다음 말씀과 합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루카 18,7-8ㄴ).”

산상설교에 있는 다음 말씀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

이 말씀은, “하느님은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먼저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는 분이고,

그것을 너희에게 주시는 분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기도하지 않아도 되겠다.” 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기도’는 하느님께서 먼저 주시는 그것을

잘 받을 준비를 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청을 들어 주지 않으려고 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려고 애쓰는 일도 아니고,

귀찮아하면서 미적거리시는 하느님께 빨리 달라고

재촉하는 일도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의 간청을 지체 없이(곧바로) 들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2)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기도하자마자 바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할 때도 있고,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할 때도 있고, 아니면 끝끝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체험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언제’ 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권한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모든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내가 청하는 그것만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기도가 아니라

생떼를 쓰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을 것을 달라고 끈질기게 청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 고집입니다.

그 경우에는 백 년 천 년 기다리면서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3) 9절-10절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이미’ 주셨으니

청해서 받아라.” 라는 가르침이고, 11절-13절의 말씀은,

‘기도의 올바른 지향’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과 “청하는

이는 받고” 라는 말씀은, 반대로 생각하면,

“청하지 않는 사람은 받지 못한다.” 라는 뜻이 됩니다.

영성체가 좋은 예입니다.

사제가 성체를 들고 제단에서 내려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미사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성체는 ‘이미’ 주어진 것이고, 받아먹기를 원하는

사람은 사제 앞으로 가서 손을 내밀기만 하면 됩니다.

바로 그 상황이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청하는 이는 받고” 라는 말씀의 실제 예가 됩니다.

만일에 성체를 받아먹을 생각이 없어서 자리에 그냥

앉아 있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제가 그 사람에게

가서 억지로 먹이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사제가 ‘가서’ 줍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고, 우리는 그 은총을 청해서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은 안 받으려고 하고,

‘나쁜 것’을 달라고 계속 조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또 간절하게 하는 것 자체는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지만, 자신의 기도 지향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13절의 ‘성령’은, 일반적인 의미의 성령이 아니라,

여기서는 ‘영적인 은총, 영적인 선물’로 해석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30 0

추천  1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