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근 신부님_“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루카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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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95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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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10/9) :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 독서 : 말라 3,13-20ㄴ
* 복음 : 루카 11, 5-13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 <오늘의 강론>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 “아빠, 아버지”께 기도할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복음>도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이어가시면서, ‘한밤중에 찾아온 벗에 대한 비유’와 ‘세상의 아버지에 대한 비유’를 통해, 아버지께서는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만큼 다 주시고”(루카 11,8 참조), “성령을 주시는 분”(루카 11,13 참조)이심을 가르쳐주십니다.
또한, ‘주님의 기도’의 “일용할 양식”에 대한 청원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키시면서, 동시에 ‘양식’을 주는 일과 그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 지를 보여주십니다.
<첫 번째> 비유는 잠을 자던 사람도 벗의 끈질긴 간청에는 마지못해 들어주거늘, 하물며 주무시지도 않으며 오히려 잠든 우리를 깨워 간청하게 하시는 아버지께서야 얼마나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는 ‘벗을 위한 양식’을 구합니다. 자신이 양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는 자신의 결핍과 부족과 무능과 한계를, 자신의 가난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겸손과 사랑으로 끈질기게 청합니다. 그러면,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루카 11,8)
비유를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9)
‘청하여라’는 것은 희망하고 열망한 바를 입으로, 곧 말로 간구하는 것이요, 희망을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께 두고 겸손하게 청하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먼저 아시고, 우리가 그것을 청하기를 바라시고 먼저 우리에게 청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찾아라.’는 것은 믿음을 아버지께 두고, 믿는 바를 몸으로 수고로움을 바쳐 찾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먼저 우리를 찾아 나서시며, 우리가 찾아 나서기만 하면 “너희가 나를 찾아 부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나 여기 있노라’ 말할 것이다.”(이사 65,24;베네딕도 규칙서 머리말 18)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불신과 의혹에 빠져도 결코 우리에게서 믿음을 거두지 않으시고 끝까지 충실하시고 신실하시고 항구하게 우리를 찾으시니, 그분을 반겨 맞으며, 우리 또한 그렇게 찾아나서야 할 일입니다.
“두드려라”는 것은 사랑의 가슴으로 “두드려라”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우리 주님께서는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라고 하시며, 먼저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계십니다.
결국, 그분이 먼저 우리에게 청하고 계시고, 우리를 찾고 계시며,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바로 ‘가난한 벗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시고 청하고 두드리고 계십니다.
<두 번째> 비유는 세상의 아버지들도 제 자식들에게는 세상의 좋은 ‘양식’을 주거늘, 하물며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서야 어련히 하늘의 ‘좋은 것’, 곧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불신과 분리를 조장하는 교활한 뱀이 아니라 거센 파도에도 상하지 않고 온 몸을 맡기는 ‘믿음의 생선’을 주실 것이고, 뒷꼬리에 독침을 품고 있어 뒤를 경계하게 하는 전갈이 아니라 병아리를 탄생시킬 앞을 바라보게 하는 ‘희망의 달걀’을 주실 것이며, 단단하여 도저히 삼킬 수 없는 돌이 아니라 생명을 살찌울 ‘사랑의 부드러운 빵’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청한 것보다도 “좋은 것”(마태 7,11), 곧 “성령”(루카 11,13)을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신령한 양식’인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루카 11,9)
주님!
희망할 바를 알게 하소서! 그 희망을 당신께 두게 하소서!
제 희망이 아니라 당신이 희망하는 바를 청하게 하시고,
당신의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제가 응답하게 하소서!
말로만 청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당신을 찾게 하시고,
진리 안에서 행동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진리의 문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두드리게 하소서!
우리를 가로막은 장막을 찢으시고, 저희가 열리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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