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8일 수원 교구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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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80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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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 신부님_"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 1)
물들어가는
단풍도
물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어제 오늘
계속하여
비가 옵니다.
기도가 필요한
우리들 삶입니다.
주님과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영광이며
가장 큰
기쁨이 됩니다.
기도하는 삶이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됩니다.
가장
기본이 되고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기도 안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습니다.
겸허한 자세로
배우게 되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님께서도
기도하셨음을
보게됩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만납니다.
주님의 기도로
의식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찾고
따르게 됩니다.
주님의 기도란
기도하며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의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처럼
기도의 생활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기도로
살아갈 힘을
얻는 기도의
자녀들입니다.
기도의 자녀들은
하느님의 마음을
먹고 자라납니다.
마음은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믿는 마음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어린 마음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하나하나
이 모든 것이
기도 아닌 것이
없습니다.
삶과 죽음도
기도이며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 또한
진심어린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이렇듯
아름다운 것은
거짓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모여
꽃이 되고
열매가 됩니다.
영혼의 밑거름이
되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주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공동체가
이루어지고
기도로 실천하는
우리들이 됩니다.
기도의 주인공이
되게하십니다.
가장 좋은
기도를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기도의
주님이십니다.
조명연 신부님_2022년 12월 거의 몇 시간 차이로, 차례로 세상을 떠나신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갑내기인 이 부부는 2022년 7월에 100세 생일, 그리고 결혼 8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들은 미국 오하이오주 해밀턴에 사는 허버트와 준 말리코트 부부입니다. 그런데 결혼 생활을 80년 동안 단 한 번도 없다고 고백하십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 그 비결을 묻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잠들기 전 매일 반드시 키스합니다.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잠시 떨어져 시간을 갖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대화했습니다.”
키스하면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고 합니다. 이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싸울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 노부부의 고백을 통해 ‘친밀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즉, 친밀감을 잃지 않도록 삶 안에서 노력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친밀감이 계속 대화를 나눌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이야기하지요. 이 관계는 친밀감에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관계만 그럴까요?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친밀감이 있어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평생 함께할 수 있게 됩니다. 과연 연중행사 식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과연 주님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마지못해서 주일 미사 참석하는 사람이 과연 주님과 함께할 수 있을까요?
제자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루카 11,1). 당시 유다교에서는 스승이 제자들을 위해 고유한 기도를 가르쳐 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시의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제자 공동체로 남들에게 보이길 바랐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루카 11,2)라고 시작하면서, 우리가 잘 아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여기서 핵심이 ‘아버지’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 때문에 감히 사용하지 않았던 호칭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친밀하게 부르는 표현을 쓰십니다. 기도의 가장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은 ‘친밀감’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시작은 하느님과의 신뢰와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날 수 있으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됩니다. 더불어 우리의 생존(양식), 관계(용서), 그리고 영적 성장(유혹에서의 보호)에 필요한 은총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중요한 ‘친밀감’을 형성하는 노력보다, 먼 곳에서 우리를 보시는 분 아니면 자기 부탁을 다 들어주는 분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명언: 사랑은 말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다(빅토르 위고).
김건태 신부님_주님의 기도
주님이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아는 형태로는 마태오 복음에, 그리고 보다 간결한 형태로는 오늘의 말씀인 루카 복음에 나옵니다(11,2-4). 오늘 복음에서 보면,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청하자,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주님의 기도는 주님이 평소에 직접 하시던 기도 가운데 하나였다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먼저 하느님을 향하여 아버지를 부름으로 시작됩니다. 마태오 복음에 의하면,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로 부연되어 있는데, 여기서의 하늘은 우주적 공간으로서의 하늘이 아니라 모든 공간을 초월하는 요소이며, 저희 아버지는 세례성사를 통해 자녀가 된 우리에게 하느님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우리 모두의 아버지임을 밝혀줍니다. 이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남, 아버지의 나라가 오심을 기도하도록 초대합니다. 다음, 주님의 기도는 땅을, 정확하게 말해서 땅에 살고 있는 인간을 향합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우리의 잘못 용서, 우리가 겪는 유혹 극복과 악에서의 구원을 기도하도록 이끕니다.
그러나 기도는 올리고 나서 그대로 이루어지는지 확인해보는 작업으로 완성될 수 없는 신앙인의 위대한 몸짓입니다.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할 의무, 참여하겠다는 다짐과 아울러 실천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기도를 아멘으로 마치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동시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이 아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버지라는 고백에는 자녀다운 신뢰심과 함께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아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와 흠숭의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나도록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도록 우리가 정의와 평화를 위해 투신해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 곧 그날그날 필요한 양식 외에는 이웃과 나누겠다는 결의를 다져야 하며,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기 위해서 마땅히 이웃을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죄와 죽음으로 이끄는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기도로 주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여러 번에 걸쳐 주님의 기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고 일러주신 기도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힘차게 외치면서, 기도의 내용 가운데 한 부분만이라도 실천에 옮기는 가운데 자녀다운 모습을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드러내는 거룩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1,1-4: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1절)라고 청한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부르는 가장 완전한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 우리가 매일 드리는 주님의 기도는 단순한 기도의 형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요약한 복음의 핵심이다. 테르툴리아노는 “주님의 기도는 복음 전체의 요약이며, 우리 신앙의 모든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De oratione,1)고 하였다.
첫째, “아버지”라는 부름은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세워 주신 은총을 드러낸다.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과 같은 친자 관계 안으로 불러들이신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마다 우리는 “나는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둘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는 청원은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라며, 우리 삶이 그 뜻을 증거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간구이다. 성 치프리아노 주교는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삶을 살 때 가능하다.”(De dominica oratione,12)고 했다.
셋째,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청원은 단순히 물질적 필요를 위한 기도에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살리는 성체성사, 곧 생명의 빵을 가리킨다.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받아 모심으로써 그분 안에 머물고, 그분과 일치를 이루게 된다.
넷째,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도 용서합니다.” 이 부분은 주님의 기도 중심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려면, 받은 용서를 다른 이들에게도 흘려보내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너희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기도는 너희 입술의 심판이 될 것이다.”(Sermo 58,9)라고 강하게 경고하였다.
마지막으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단순히 시험을 피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악의 세력과 맞설 때 성령의 힘으로 굳건히 서게 해 달라는 간구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유혹과 시련이 늘 함께 하지만, 그 속에서 주님과의 일치가 더욱 깊어진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그리고 날마다 이 주님의 기도를 드린다. 그러나 그 기도가 습관적 반복이 되지 않도록, 매 구절을 내 삶에 비추어 드려야 한다. 주님의 기도는 단순히 입술의 기도가 아니라, 삶으로 드려야 할 기도이다. 이 기도를 묵상하며 드린다면, 그 기도는 참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은총의 기도가 될 것이다. 아멘.
이병우 신부님_"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11,1)
'하느님의 모습이요 본질인 자비(자애)!'
오늘 복음(루카11,1-4)은 '주님의 기도'입니다.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11,1) 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루카11,2-4)
오늘 복음과 독서를 묵상하면서, '참으로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를 만납니다. 하느님의 크신 자애를 묵상하게 합니다.
기도할 줄도 모르는 제자들에게 유일하고도 완전한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심으로써, 당신의 자애를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요나4,1-11)는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신 모습을 보고, 언짢아 하며 화를 내는 요나에게 '하느님의 자애를 깨우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요나4,11)
'자비(자애)'는 하느님의 모습이며, 인간을 향해 드러나 있는 하느님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죽지 않고 살아가는 본질이며,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본질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드러난 완전한 사랑, 극진한 사랑 앞에서, 내가 어떻게 바리사이처럼 기도할 수 있을까? '세리처럼' 기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18,13)
(~ 2사무6,1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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