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녹) 2025년 8월 12일 (화)연중 제19주간 화요일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나눔마당

sub_menu

자유게시판
[문암칼럼] 한국 천주교 2대 사제 최양업(토마스) 신부 생애 연구(7)[강원경제신문-2025-07-30]

232949 박관우 [pgu77] 2025-07-30

 

▲ 문암 박관우.역사작가/강원경제신문 객원 칼럼니스트 © 박관우

최양업(崔良業.토마스), 김대건(金大建.안드레아) 신학생(神學生)들이 전공(專攻)한 것은 성직자(聖職者)가 되기 위한 철학(哲學)과 신학(神學)이었지만, 그것을 익히기 위하여 기초교양(基礎敎養) 과정(課程)이라 할 수 있는 서양 학문(西洋學問)의 초,중등 과정을 거쳐야 했으니 실로 단시일내에 많은 학문을 소화(消化)해야만 하였다.

아울러 그들의 면학 장소(勉學場所)가 마카오나 필리핀 같이 국제색(國際色)이 짙은 도시(都市)인 만큼 보다 더 견문(見聞)을 넓힐 수 있는 기회(機會)가 되었으며, 이제 그들은 마카오에서의 면학 생활(勉學生活)을 통하여 조선인(朝鮮人)으로서 최초(最初)로 해박(該博)한 서구 학식(西歐學識)을 겸비(兼備)한 청년 교양인(靑年敎養人)으로 성장(成長)할 수 있었다.

그런데 1842(헌종 8)년에 들어서 신학생들이 계속 면학을 할 수 없는 새로운 변수(變數)가 발생하였는데 구체적인 내용(內容)을 소개(紹介)한다.

1840(헌종 6)년 청국 침략(淸國侵略)의 기회를 노리던 영국(英國)에 의하여 아편전쟁(阿片戰爭)이 발생(發生)하였으며, 그 이듬해 연초(年初)에 일단락(一段落)될 것으로 예상(豫想)하였던 전쟁이 1842(헌종 8)년에 접어 들면서 다시 악화(惡化)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는 아편전쟁으로 영국이 청국에 영향력(影響力)을 행사(行事)할 것으로 예상하고 루이 필립 황제(皇帝)3척의 군함(軍艦)을 극동 해역(極東海域)으로 파견(派遣)하여 청국과 조선의 사정(事情)을 정찰(偵察)할 것을 지시(指示)하였는데 그 군함의 사령관(司令官)이 세실 제독(提督)이었다.

그런데 세실 제독은 파리외방전교회 경리부(經理部)를 방문(訪問)하여 리부아 신부(神父)에게 자신의 원정계획(遠征計劃)을 알리고 조선인 신학생 1명을 통역(通譯)으로 동행(同行)시켜 줄 것을 요청(要請)하였다.

이러한 요청에 대하여 리부아 신부는 고심한 끝에 김대건과 조선 선교사(朝鮮宣敎師)로 임명(任命)된 메스트르 신부를 파견하기로 결정(決定)하였다.

그래서 김대건은 세실 제독의 통역관(通譯官)으로서 매스트르 신부와 함께 에리곤호에 탑승(搭乘)하여 떠났으며, 홀로 마카오에 남게 된 최양업은 5개월후인 717일에 요동 교구(遼東敎區) 선교사 브뤼니에르 신부와 함께 파브리트호를 타고 마카오를 출발하여 823일 상해 관문(上海關門)인 오송항에 도착(倒着)하였다.

거기서 김대건을 6개월만에 다시 만나는 기쁨을 나누었으나 프랑스 함대가 중국(中國)과 남경 조약(南京條約)을 체결(締結)하면서 이권(利權)을 인정(認定)받게 되자 더 이상의 북상(北上)을 포기(抛棄)하고 조선으로 향하는 것을 중단(中斷)하였다.

이러한 변수가 발생(發生)한 상황에서 최양업과 김대건은 프랑스 군함의 도움으로 중국 배 한척을 구하여 102일 요동에 도착하기에 이르렀다.

*문암 박관우.역사작가/강원경제신문 객원 칼럼니스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0 22 0

추천  0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