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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일] 이 성전을 허물어라. (요한2,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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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3-07 ㅣ No.145078

 

2021년 3월 7일 주일

[사순 제3주일] 이 성전을 허물어라(요한2,13-25)

   

1독서 십계명 (탈출20,1-17)

하느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

2 “나는 너를 이집트 땅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10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그날 너와 너의 아들과 딸너의 남종과 여종그리고 너의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11 이는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13 살인해서는 안 된다.

14 간음해서는 안 된다.

15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16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7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

 

화답송 시편 19(18),8.9.10.11(◎ 요한 6,68)

◎ 주님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 주님을 경외함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 금보다 순금보다 더욱 값지며꿀보다 참꿀보다 더욱 달다네

 

2독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코린1,22-25)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25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복음<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2,13-25)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23 파스카 축제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

2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25 그분께는 사람에 관하여 누가 증언해 드릴 필요가 없었다사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

 

 

파일:Rembrandt Harmensz. van Rijn 079.jpg 

 

 사순 제3주일 제1독서(탈출20,1~17)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 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대 사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3~5)

 

새 성경의 본문 마지막에 나오는 '안 된다'는 말에 해당하는 '로'(lo)가 원문에서는 문장의 서두에 등장하여 부정의 의미를 강조한다. 부정어 '로'(lo)는 일반적인 금지를 나타내는 '알'(al)보다 더 단호하고 강경한 것으로서 주로 계율적인 금지 명령을 내릴 때 사용된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절대 금지를 나타내는 부정어 '로'(lo)를 문장 서두에 사용하여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십계명 가운데는 여덟개의 계명이 이런 절대 금지 명령으로 시작하고 있다 (탈출20,3.4.7.13.14.15.16.17.).

 

한편 '나 말고'로 번역한 '알 파나야'(al panaya; before me)에서 '알'(al)은 '~위에'(넘어), '~가까이'(곁에)라는 의미의 전치사이다. 그리고 '파나야'(panaya)의 원형 '파나임'(panaim) '얼굴'(창세38,15) 이라는 일차적 의미와 더불어 '몸소 함께 가면서'라는 뜻의 '개인적인 대면' (탈출33,14), '앞의 부분'(예레1,13)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두단어가 결합하여 '알 파나이'(al panai)가 되면, '나의 얼굴 가까이에', 즉 '나의 면전에서', '나의 앞에서'라는 뜻이 되고, '나보다 우선하여'(than me)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라틴어 번역본인 불가타(Vulgata)에서는 이것은 '코람 메오'(Coram Meo)  곧 '내 앞에서'라고  번역하였고, 구약의 희랍어 번역본인 70인역(LXX)에서는  새 성경과 유사하게 '플렌 에무'(plen emu) 곧 '나를 제외시키고서', '나 말고'라고 번역하였다.

 

원문 성경에는 이 두 가지 '내 앞에서' '나를 제외시키고서'(나 말고)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탈출기 20장 3절 하느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하느님을 제외하고서 하느님 보다 더 흠숭하거나 하느님보다 더 우선시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다른 어떤 존재도 끼여들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온전하고 독점적인 사랑을 기대하시며, 하느님 이외의 다른 우상들에는 아예 마음을 두지 말 것을 요구하셨던 것이다. 

이어서 '다른 신'으로 번역한 '엘로힘 아헤림'(ellohim aherim)에서 '다른'에 해당하는 '아헤림'(aherim; other)은 단수형이 '아헤르'(aher)이다. 이것은 '처음을 따라가는 두번 째'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창세17,21; 1열왕3,22).

그리고 '신들'에 해당하는 '엘로힘'(ellohim; gods)은 '신'(2역대32,15; 이사44,8)을 의미하는 '엘로아흐'(elloah)의 복수형이다.

 

물론 '엘로힘'은 유일(唯一)하시고 지존(至尊)하신 '주 하느님'과는 구별되는 존재로서, 이방의 우상신들 혹은 사람들을 진리가 아닌 거짓과 오류, 비진리로 이끄는 사이비(似而非)신과 사신(死神)들을 가리킨다.

특히 탈출기 20장 3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 머물렀던 이집트의 다신주의(多神主義) 종교와 그들이 앞으로 들어가 살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의 종교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여기서 왜 새 성경이 '다른 신들'(복수)로 번역하지 않고, '다른 신'(단수)으로 번역했는지 알 수가 없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 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4)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대 사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5)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된다'로 번역된 '로 타아세 레카 페셀'(lo thaaseh leka pesel)에서 '어떤 신상'으로 번역한 '페셀'(pesel)은 원래 '(돌들을)자르다', '깎다'(신명10,3), '새기다', '잘라(빚어) (우상을) 만들다'(하바꾹2,18)는 의미를 지닌 '파쌀'(pasal)에서 유래한 명사이다.

따라서 이것은 '신상', '새긴 형상'(이사44,15), '부어만든 상','빚은 형상' (예레10,14)이라고 번역될 수 있고, 결국 우상(idol)이라는 뜻이다. '어떤 신상', '새긴 우상'(any graven image; an idol)이란 석재(石材)나 금속을 자르거나 조각하거나 혹은 흙을 빚어 만든 형상을 일컫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과 그 주변 이교 나라들은 끊임없이 (예레26,1)이나 나무(하바꾹2,18~20), 금은(시편115,4; 예레10,9)같은 재료에 가증스러운 우상을 새기거나 혹은 금속을 녹인 주물을 가지고 무익한 우상을 만들었던 것 (이사44,10)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이 이렇게 다양한 방법, 여러 모양으로 우상들을 만들어 왔던 이유는 그 우상이 실재하거나 그 우상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탈출기 20장 4절에서 하느님께서는 '너를 위하여'('레카'; leka; for yourself; 새 성경은 이것을 번역하지 않았음)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했다.

 

실로 우상을 섬기거나 헛된 우상을 찾는 근본적인 이유가 인간 마음속의 이기심과 욕심을 투사하여 그것을 만족시켜주고 채워주는 대상을 만들어, 실제로 '없는 신'을 '있는 신'처럼 만들어 숭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탐욕을 경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을 수 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사도 바오로는 '탐욕'과 '우상숭배'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이러한 마음이나 행위를 피하라고 권고하고 있다(콜로3,5).

'그 모습을 본 뜬'이라고 번역된 '웨콜 테무나'(wekol themuna)에서 '콜 테무나'(kol themuna)는 '어떤 형태의 것이든지'(in the form of anything), '모든 유사한 것들을'(any likeness of)이란 뜻이다.

 

탈출기 20장 4절에서 언급한 우주의 모든 공간에서 발견될 수 있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의 형상을 가리키는데, 이 단어가 탈출기 20장 4절의 서두에 나오는 '로 타아세'(lo thaaseh)와 결합하여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어선는 안 된다고 번역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모든 것을 만들지 말라고 하는 말이 과연 인간에게 손으로 그 어떤 조형들을 만들지 말라는 즉 예술적 표현조차도 금지한다는 말은 아니다. 여기서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주제는 숭배와 섬김의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형상들이다.

제작 금지의 대상을 명확하게 표현하면, '어떤 형상으로도 우상을 만들어' (신명4,16)로 나타나지만 '형상화된 우상'(an idol in the form of)으로서 (신명4,15~20), 섬길 대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신명4,10.23.25 ;5,8).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 속에 있는 것이든' 

'하늘'로 번역된 '샤마임'(shamaim)는 '높다'는 의미를 지닌 '샤마' (shama)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땅과 대조되는 대기권, 혹은 눈을 들어 볼 수 있는 천체 전부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란 대기권을 날아다니는 각종 새(신명4,17)나 혹은 우주 공간에 있는 태양, 달, 별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어서 '땅'(아레츠; arets)이란 바다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육지'(뭍)(창세1,28)란 뜻을 지녔다.

따라서 '땅 위에 있는 것'이란 육지 위에 존재하는 생물체나 무생물체를 모두 일컫는 것으로서, 예를 들어 황소, 사람, 뱀이나 바위, 나무, 산등을 가리킨다. 그리고 '물'(마임; maim)이란 샘이나 시내, 강과 바다 등 물을 담고 있는 공간 전체를 일컫는다.

따라서 '땅  아래로 물 속에 있는 것'이란 민물이나 바닷물에서 생활하는 모든 물고기 종류나 개구리 같은 양서류등을 일컫는다.

따라서 하늘과 땅과 물 속이라는 세 공간 안에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이 생존하고 있는 전 우주의 공간 안에서 인간이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경험들 가운데 존재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통틀어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들을 경배하거나' 

'경배하거나'로 번역된 '티쉬타흐예'(thishithahwe)는 '샤하'(shaha)의 재귀 수동형 미완료로서, '엎드리다'(레위26,1),'경의를 표하다'(2열왕5,18), '자신을 복종시키다', '엎드리다'(시편45,12), '경배하다'(창세22,5)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결국 각종 형상화된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것을 흠모하거나, 그 우상을 신격화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복종시키거나, 그 우상에게 소원을 빌거나 무릎 꿇고 간청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그것들을 섬기지'라고 번역한 '타오브뎀'(thaobdem)은 '수고하다', '봉사하다', '섬기다'(창세27,40)는 뜻을 지닌 '아바드'(abad)의 사역 수동형 미완료로서 '봉사하도록 시킴받지 말라'라는 뜻이다. 

그런데 동사 '아바드'는 '봉사하다'(serve)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다'(판관2,13), '숭배하다'(이사19,23)는 뜻도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경배(절)하지 말라' 명령에서 한 단계 나가서 단순히 한 두번이 아니라, 지속적이며 습관적으로 종교 예식에 참여하는 등의 행위를 금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상실한 노예의 신분으로 우상에게 복종하고 숭배하는 자리에 머물지 말라는 뜻이다.

 

 

 사순 제3주일 복음(요한2,13~25)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4~16)

 

요한 복음 2장 13~25절은 예수님께서 하신 제1차 성전 정화 사건과 이로 말미암아 야기된 유대인과의 언쟁 및 기적을 보고 믿는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을 제1차 성전 정화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 후반에 제2차 성전 정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마태21,10~18; 마르11,15~19; 루카19,45.46). 그런데 제1차 성전 정화 사건은 요한 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제2차 성전 정화 사건은 공관 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공관 복음서 저자들이 유사한 두 사건 가운데서 예수님의 구속 사업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상 죽음과 밀접하게 관련된 후기 사건만을 기록한  반면에, 요한 복음사가는 이러한 공관 복음서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초기 성전 정화 사건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특히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활동 초기에 있었던 이 사건을 기록함으로써,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유대인들의 종교적 부패상을 부각시키며, 예수님의 이들의 위선과 죄악상을 깨우치기 위한 새로운 역할이 필연적이었음을 보여 주려고 했다.

 

요한 복음 2장 14절의 '보시고'에 해당하는 '휴렌'(huren; found) '휴리스코'(hurisko)의 부정 과거이다.  이 동사는 그 무엇을 집요하게 찾다가 본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발견하거나 만난 것을 나타낸다. 시기적으로 이때는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첫 해 겨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전 안에서 자행되던 불법 행위들은 너무나 쉽게 목격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며,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를 지키고자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에 들어가셨다가 우연히 이러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한편, '성전'에 해당하는 '히에론'(hieron) '성소'(sanctuary), '성전'(temple) 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정관사 '토'(to)와 같이 쓰여서 예루살렘 성전을 지칭한다.

'히에론'(hieron)은 성전 건물 그 자체를 가리키는 '나오스'(naos)보다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지는데, 성전의 건물은 물론이고 마당(뜰)까지도 모두 포함된다.

예수님께서는 매매와 환전이 이루어지던 성전 마당의 이방인 뜰을 유심히 보셨다.

 

하느님께서 성별(聖別)하신 이런 성전 영역 안에서 불법이 행해진다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 타락의 심각성을 보여 준다. 성전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던 범죄는 제물로 바쳐진 짐승들을 팔며 돈을 바꾸는 일과 관련 되어 있다.

멀리서 성전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은 희생 제물을 가져올 수 없어서 예루살렘에서 구해야 했다. 이 제물은 흠없는 것이어야 했고, 사제가 적격 여부를 심사했다. 비록 흠없는 제물이라 할지라도 멀리서 가져온 경우, 사제들은 쉽게 트집을 잡아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사제들은 가져갈 수 없는 제물들을 헐값에 사들여서 성전에서 비싼 값에 되팔았다결국 성전에서 파는 제물들은 불합격을 받을 우려가 없어서 선호되었고, 대사제 무리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막대한 이득을 올리고 있었다. 

또한 환전 행위는 많은 순례자들이 성전을 찾는 기회를 이용해서 매년 바쳐야 하는 성전세 반 세켈을 바치는 것과 관련된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20세 이상의 유대인 남자는 성전세를 바쳐야 하는데, 이것은 이방의 군주나 우상의 얼굴이나 각명이 들어 있지 않으면서 순도가 높은 은으로 만들어진 세겔 주화여야 한다. 유대인들은 보통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이 주화를 바쳤다(마태17,27).

 

파스카 축제 약 20일 전부터 환전소가 예루살렘 성전에 설치되었고, 이때 환전 수수료는 12.5% 정도였다. 대사제 무리들은 자신들의 직권을 이용해서 이러한 일에 관여하여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대사제 무리들은 큰 부(富)를 누렸고, 이렇게 모은 돈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사용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2장 19절에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신다. 

여기서 '성전'에 해당하는 '나온'(naon)은 2장 14절의 성전 경내 전체를 가리키는 '히에론'(hieron)보다 좁은 의미로 쓰였는데, 이것은 비유적으로 예수님의 몸과 성도의 몸(1코린6,19), 교회(1코린3,16.17; 에페2,21) 등을 가리킨다.

여기서도 예수님께서 염두에 두신 성전은 바로 자신의 몸이며, 그분은 이것을 허물어 보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 안에는 돌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과 그 안에서 행해지던 일체의 의식들이 이 땅에서 소멸되고 없어질 수 있지만, 예수님을 통한 구원 사업은 아무도 막거나 없애지 못한다는 중요한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요한 복음 2장 20절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나오스'(na0s)라는 성전은 '헤로데 성전'으로서 B.C.19년에 착공하여 A.D.46년에 이르러셔야 완공이 되었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때는 아직도 20 여년 가까이 앞둔 시점이었다.

예수님께서 요한 복음 2장 19절에서 성전을 허문다는 것은 위의 성전이 아니라, 인류 구속 사업이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 상에서 죽어야 하는 당신 육체의 죽음을 가리키며,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것은 사흘 안에 부활하시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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