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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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화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독서,복음(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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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2-01-24 ㅣ No.152486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바오로 사도는 소아시아 킬리키아 지방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교육받은 철저한 유다인이었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그였으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극적으로 회심한 뒤 그리스도의 사도로 변신하였다. 교회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별도로 지내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으로 이루어진 그의 회심이 구원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바오로 사도는 많은 이방인의 눈을 뜨게 하여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세력에서 하느님께 돌아서게 하였다.

 

 

 

1독서<일어나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2,3-16<또는 9,1-22>

그 무렵 바오로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3 “나는 유다 사람입니다.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지만 이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례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4 또 시자들을 죽일 작정으로 이 새로운 길을 박해하여,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포박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5 대사제와 온 원로단도 나에 관하여 증언해 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동료들에게 가는 서한까지 받아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 처벌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내가 길을 떠나 정오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7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8 내가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하고 여쭙자, 그분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9 나와 함께 있던 이들은 빛은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소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10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 줄 것이다.’

11 나는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어, 나와 함께 가던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갔습니다.

12 거기에는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따라 사는 독실한 사람으로, 그곳에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13 그가 나를 찾아와 앞에 서서, ‘사울 형제, 눈을 뜨십시오.’하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뜨고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14 그때에 하나니아스가 말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15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16 그러니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2

조용히 하라는 손짓에 이어 바오로가 아람어로 이야기를 하자 청중은 더욱 조용해졌다. 바오로가 아람어를 사용한 것은 자신이 유다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청중들에게 알리는 효과를 낸다.

 

3

루카는 한 인물의 전기에 필요한 세 가지 기본요소를 밝힌다. , 출생과 성장과 교육이 그것이다. 가말리엘 발치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말은 그의 가르침에 완전히 복종했다는 뜻이다. 가말리엘은 6.34에서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로 소개된 바 있다. 바리사이파는 조상들의 율법을 정확하게 지키기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들이다.

 

바오로는 자신의 말을 듣는 청중들처럼 하느님께 대한 넘치는 열정을 지니고 있었으나 여기서는 이 열성을 비판한다(로마 10.2 참조).

 

4

이 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길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길은 갈릴래아에서 요한이 세례를 베풀 때부터 시작되어 온 유다를 거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승천하심으로 완성된다. 교회의 길은 성령강림 때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를 거쳐 로마에까지 이어지면서 예수의 재림까지 계속될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이 길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이 선포하신 평화의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말한다. 바오로가 이 길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죽음에까지 이끄는 데 성공했는지의 여부는 스테파노의 죽음 이외에는 확인되지 않는다.

 

5

바오로 개종의 첫 기록과 비교하여 세 가지 다른 점을 볼 수 있다. 거기서는 대제관만이었으나 여기서는 원로단도 바오로의 행동에 대해 권위를 행사한다. 9.2에서는 공한을 회당들에 보내지만 여기서는 형제들에게 보낸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처벌하려 했다고 명백히 밝힌다. 현재의 변호연설에서 대제관과 원로단은 바오로의 증인으로 소개되는데, 증인들의 증언은 고대의 변호연설에서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6

9장의 첫 개종기록과 비교하여 사건의 시간을 정오로 밝힌다. 현재의 변호연설에서 대제관과 원로단은 바오로의 증인으로 소개되는데, 증인들의 증언은 고대의 변호연설에서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8

예수에 덧붙인 나자렛 사람은 루카가 선호하는 호칭이다.

 

9

9.7에서는 바오로의 동행자들이 여기서와는 정반대로 소리만 보고 빛을 보지는 못했다. 26.13에서는 바오로와 동료들에게 단순히 빛만 쏟아져 내린다.

 

10

이 질문이 9.8에는 없다. 바오로가 예수를 주님으로 부른 것은 그의 청중이 비그리스도교 유다인들임을 감안할 때 이야기의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다. 루카는 그리스도인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 호칭을 사용한다.

 

11

루카는 빛의 밝음 때문에라고 하지 않고 빛의 영광 때문에라고 했다. 루카복음에 보면 빛과 하느님의 영광이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이때 후자는 세상에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하느님의 현존을 가리킨다

 

12

9.10에서 하나니아스는 제자라고만 소개되었다. 여기서는 율법을 열성적으로 지키는 유다인들에게 설교하는 자리이므로 그가 율법을 지키는 경건한 유다인으로서 모든 유다 주민에게 인정받는 사람으로 소개된다. 루카는 하나니아스가 전통적 유다인임을 강조하기 위해 13절에서 바오로를 사울이라는 아람어 이름으로 부르게 한다.

 

13

다시 눈을 뜨고 보다는 그리스어 한 단어를 풀이 설명한 것이다. 아나플레포는 다시 보다처다보다의 두 가지 뜻이 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의로운 분은 유다인 성서의 전통적 표현들이다.

 

15

하나니아스의 이 선언은 바오로를 예수 부활의 목격 증인들인 다른 사도들의 대열에 올려 놓는다. 목격 증인의 칭호는 26,16에서 다시 바오로에게 붙여진다.

 

16

2,38에서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바오로의 회개가 완성된다. 그리고 세례의 의미가 죄를 씻는 것으로 밝혀진다.

 

 

 

 

복음<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은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15

루카 24.47; 사도 1.8; 참조: 마태 28.19. 복음의 골자는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다.

 

16

복음선포에 대한 반응은 믿음 아니면 불신이다. 믿음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받아들이는 결단이다. 이 결단을 내린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부활하는 것을 뜻하는 상징적 행위, 곧 세례를 수락하게 마련이다.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종말에 구원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멸망할 것이다. 요한 3,3.38에도 믿음과 세례와 구원의 상관관계가 드러난다.

 

17

17-18절에서는 신앙인들에게 다섯 가지 기적적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네 가지는 사도행전에서 따온 것 같다. 구마이적, 언어이적, 도사이적, 치유이적, 음독이적만은 신약성서 밖의 구전에서 따온 것이다. 가이시리아 주교 에우세비우스는 유스투스 바르사바스에 관해서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치명적인 독을 마셨지만 주님의 은혜로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열두 사도는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계실때 뽑은 제자들이고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우리와 똑같이 인간으로 사시면서 뽑은 분은 아니지만 성령님께서 부르셔서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란 "파견된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 평신도들도 파견된 자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코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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