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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을 떠나 다른 종교로 간 지인 어떻게 대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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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임 [rmskfk] 쪽지 캡슐

2021-04-17 ㅣ No.146153

가톨릭을 떠나 다른 종교로 간 지인 어떻게 대해야 하나? / 사이클 제9회




바오로 서간 외에도 베드로 서간, 요한 서간 등에도 등장하는 '거짓 예언자'

요한 1서 '그리스도의 적'

요한 2서 '속이는 자'

베드로 2서 '자기들을 속량해 주신 주님을 부인하면서 파멸을 재촉한다.'

요한 1서 中 : ···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고 하느님과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 ···

요한 2서 中 : ···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 ···

그러니까 아마 인간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희한한 현혹되는 이야기들을 많이 따라갔던 것이 아닌가.

 

▶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신약성경들이 쓰이는데 그때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이런 이단들을 보면, 교회의 역사는 끊임없이 이단과의 싸움이었다. 이천 년 동안 이단과 싸우면서 나름의 어떤 형태의 교리들이 정립이 되면서 신앙의 본질이 지켜지면서 지금까지 온 것. 베드로 2서, 요한 1. 2. 3서에 나와 있는 그거는 아까 우리가 읽었던 바오로 서간보다 후대로 1세대거든요. 바오로 서간은 기원후 50년경쯤으로 보는데 고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거죠.

 

▶ 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을 한다고 그러니 우리가 위장한 사탄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 사람들의 심리와 마음은 늘 불안심리가 있거든요. 왜냐하면 '지난여름에 한 일을 내가 알잖아요.'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내가 한 일을 내가 아니가 신과의 만남이 있을 때는 두렵거든요. 그런데 그런 심리를 이용해서 사탄, 어둠의 세력들이 교묘하게 접근을 하거든요. 그런데 일상에서 사기꾼들이 '나 사기꾼이야!' 하고 접근하지 않잖아요. 아주 친절하게 진짜처럼. 바로 사탄, 악의 세력도 그렇게 하는 거죠.

 

그래서 처음에는 구별하기 어렵지만 만나고 이야기하다 보면 '이건 아닌데'라는 느낌과 생각들이 있거든요. 그럴 때 의심하고 알아보는 과정이 필요한 건데, 설마 ...? ... 이 사람이? ... 내가 설마 여기에 속겠어? 이런 마음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사탄에 쑥 빨려 들어가게 되는 그런 사태가 벌어지죠.

 

▶ 그러니까 일단 의심을 갖는 마음 가짐이 나쁜 것은 아니다! 믿음에 의심을 갖는다고 보기 보다 뭔가 좀 이상하다 싶으면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것이 중요.

 

◆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것 같은 동료 신자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우리가 카더라 통신은 분명 경계해야 해요. 자기가 보고 확인한 게 아니라면 카더라 통신으로 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고, 친했던 관계였다면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고 얘기한다면 이 사람이 여기에 왜 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기회가 있거든요. 만약에 그분에게 신앙적인 도움이 필요하면 신부님이나 수녀님께 연결을 시켜 주고 이렇게 어떤 노력을 좀 할 필요는 있는데, 그분과 교리, 성경을 가지고 논쟁할 필요는 없다. 만약 못 본 체해버리면 아까 강의에서 '잘도 참아 준다.' 여기에 해당될 수 있어요.

 

▶ 특히 자녀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을 때, 알면서도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평소의 관계대로 이야기하면서 상대가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 자녀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을 때, 무조건 말리면 큰일 난다?!

그 사실을 안 후 굉장히 화가 나고 속상하거든요. 그러니까 아주 강압적으로, 극단적으로 '가지 마! 못 가!' 이렇게 탁 막아버리는데 그 순간 서로의 벽이 생기는 거고, 서로의 대화 통로가 막히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거든요. 그러면서 감정싸움이 붙거든요. 그래서 그럴 때는 들어보고 그 부분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고 알아가는 과정으로 가야지 극단적으로 '가지 마!' 비난하기 시작하면 상대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죠.

 

▶ ··· 누가 여러분이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갈라 1,9)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에게 저주를 직접 주라는 얘기는 아닌 거죠?

 

▶ 아니죠. 이건 수사학적으로 굉장히 강하게 쓰여서 재미있는 게, 갈라티아서의 특징 중에 1장은 굉장히 인간적인 권위를 부정하는 듯한 내용들이 계속 등장해요. 바오로 사도는 바리사이였고 본인은 열두 제자도, 나자렛 출신의 예수님 제자도 아니었어요. 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 이런 내용을 강조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하다. 인간적인 권위, 그 거짓 사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거든요. 유다교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갈라티아 사람들한테 계속 감언이설로 속삭였어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너희가 세례 받고 해도 ··· 2% 모자란 신앙이야, 너네 할례 해야 돼, 안식일 규정도 지켜야 되고, 정결례, 달력 다 지켜야 돼!"라고 감언이설로 꼬시니까 바오로 사도는 그걸 듣고서 화가 난 거예요. 율법을 강조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가 사라지기에. 그래서 그걸 '다른 복음' , '거짓 사도' 이런 표현들을 쓴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돼요.

 

◆ 시대에 맞춰 융통성 있게 변화 VS 전통을 더 존중하고 지켜나가야 하는 마음

▶ 가톨릭교회 안에서 신앙의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방식은 변화 가능하다. 세상이 바뀌면서 사람들이 사고하는 방식, 인식의 틀 이런 것들이 바뀌기 때문에 그 신앙을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어요. 이해하는 것도. 그러나 바뀔 수 없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는 거죠.

 

▶ 그런데 이단, 사이비들은 이 본질을 바꾸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재림 예수다, 이 시대는 끝났다, 우리 교회 와서 누구의 말만 들어야 구원받는다.' 이것은 본질을 바꾸는 거거든요.

▶ 저주를 말씀하셨는데 사실은 강조점이 저주가 아니라 복음이거든요. 하지만 초점이 복음이 아닌 저주에 맞춰지면 두려움이 일어나고 초점이 바뀌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거죠.

 

◆ 오늘의 한 줄 결론

 

▶ 잘 식별해야 한다.

▶ 바오로 사도는 이단과 싸운 투사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우리 교회 안에 그런 투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모두가 다 이단과 싸워야 되는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 바오로 사도가 가지고 있었던 복음의 열정의 수호자가 되어서 우리는 얼마나 복음을 알고 열정을 갖고 사느냐... 그것만 있다면 우리 모두 복음의 열정의 수호자가 되자.

 

Q : 가톨릭을 떠나 다른 종교로 간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제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물을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모르는 척하세요!' 입니다.

 

A : 개신교로 갔던 사이비로 갔건, 절에 갔건 우리 성당을 떠났다는 그 배경이 있을 거거든요. 그 배경의 공통적인 것들을 제가 경험해 보니까 첫 번째는 주변에서 상처를 받았거나 (신부님, 수녀님, 교우들 간에서), 둘째 외로움의 상황에 처해 있거나 (무관심 속의 신앙생활) 이런 것들이 그 바탕에 있을 거거든요.

 

그런 분을 만났다면 그가 간 곳이 신앙을 떠난 곳이잖아요.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요소도 충분히 있거든요. 그러려면 사람은 먼저 따뜻함을 느꼈을 때 돌아오려고 하거든요. 종교적인 교리 내용으로 설득하려면 돌아올 수 없어요. 먼저 인간적인 관계를 맺어가라. 두려워하지 마라. 그다음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신앙적인 문제라면 그것은 다른 분께 도움을 청하면 되니까.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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