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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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여시어 성경의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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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1-04-17 ㅣ No.146160

1독서<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3.13-15,17-19

그 무렵 베드로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3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14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17 이제,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19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

13

루카는 이스라엘 백성, 다윗, 마침내 예수를 일컬어 하느님의 종이라고 한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하느님의 종이라고 한 까닭은 예수의 일생이 제2 이사야에 나오는 신비스런 인물 야훼의 종의 일생과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이 서로 닮았던가? 루카는 예수 수난 또는 부활과 관련하여 하느님의 종 그리스도론을 전개했다. 루카는 야훼의 종과 예수의 대속적 죽음에는 별관심이 없었던 같다.

 

마르코는 야훼의 종과 예수의 대속죄 죽음에 관심을 가졌다. 마태오는 야훼의 종의 조용하고 순한 면모, 선하고 자비로운 면모, 이방인들의 빛 구실을 하는 면모를 예수께 적용했다. 사도교부들까지도 예수를 일컬어 하느님의 종이라고 했다. 그러나 2세기 후반부터는 이 존칭이 소멸되었다. 13절 끝 예수를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는 하느님이 그분에게 치유의 능력을 주셨다는 뜻이다. 부활을 통한 영광은 15절에 가서야 언급된다.

 

14

본래 하느님 홀로 거룩하시다. 그런데 하느님과 밀착된 예수도 거룩하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 7.52에서는 예수 메시아를 의인이라 한다. 거룩하고 의로운 예수께 반대되는 인물은 살인자의 사내바라빠다.

 

15

생명의 창시자죽은 자들의 부활에 있어 첫째 분이 되시어다른 이들을 영생으로 인도하는 분이란 뜻이다. 창시자라는 존칭은 신약에 세 번 나온다. “창시자자와 구원자”,“구원의 창시자”, “믿음의 창시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

 

17

17-26절에서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서라고 촉구한다. 이를 뒷받침하려고 구약성서를 길게 인용한다.

무지한 탓으로예수께서는 한편 유다인들이 무지한 탓으로 죽임을 당하셨고 다른 한편 하느님의 구원 계획으로 돌아가셨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신론과 인간론의 양면 고찰은 베드로의 성령강림 설교에도 나온다.

 

19

우리말 번역 회개하다는 그리스어 메타노에오(직역하면 생각을 바꾸다”)의 의역이다.“회개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슈브(직역하면 돌아서다”)는 하느님을 등진 인간이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방향전환을 뜻한다. 일찍이 유다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랍비들에 관한 이야기에서 돌아섬의 참 뜻을 감명깊게 밝힌 바 있다. “회개하다”(메타노에오)돌아서다”(에피스트레포)가 함께 나오는 단락은 루카 17,3-4;사도 3.19;26.18.20이다. “회개하다용서받다라는 뜻이 동사가 함께 나오는 단락은 마르 1.4;루카24.47;사도2.38;3.19;5.31;8.22;26.18이다.

 

 

2독서<그리스도는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재물이십니다.>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1-5

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3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주해

1

나의 어린 자녀 여러분은 정이 듬뿍 담긴 호칭으로서 필자는 요한계 여러 교회 교우들을 그렇게 통칭했다. 그리스도로는 테크니아. 파이디아 두가지 낱말을 구사하나 뜻은 매한가지다.

 

변호자의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는 변호자.중보자.위로자.훈계자 등으로 옮길 수 있는 다의적 명사다.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을 1요한2.1에서는 예수를 뜻한다.

 

5

하느님의 사랑이란 표현은 요한 1서에 여섯 차례 나온다. 이는 주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뜻하지만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을 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2.5 경우.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뜻한다고 보는 설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 두 설을 합쳐서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주고 받는 사랑이라고 보는 설. 곧 단순히 인간적인 사랑과는 질적으로 다른 신적 사랑이라고 보는 제3설도 있다. 그럼 어느 설을 따른다?

 

표현과 내용에 있어 2.5와 가장 밀접한 4.12를 눈여겨보면 2.5에 나오는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2.5를 윤색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느님이 먼저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결실을 맺게 된다. 본디 사랑은 받고 주는 것. 교호작용으로 완성되는 것이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이요,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복음<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35-48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

36

36ㄴ 절은 파피루스 75.시나이.바티칸.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있으나 서방 사본군에는 없다. 같은 말씀이 요한의 인지 발현사화에도 있다.

 

39

예수 발현을 유령이 나타난 것으로, 곧 원혼이 출현한 것으로 곡해할세라,예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뜻에서 ,루카는 인지 발현사화에서 부활하신 예수의 육체성을 강조했다. 요한의 인지 발현사화에서도 유체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부활하신 분의 육체는 이승의 속박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사실에 유의하라. 사도 바오로는 이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육체를 영광스러운 몸이라 했고 장차 부활한 신도들의 육체를 영적 몸이라 했다.

 

40

40절 역시 파피루스 75.시나이.바티칸.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있으나 서방 사본군에는 없다. 매우 비슷한 말이 요한의 인지 발현사화에도 있다.

 

41

루카는 제자들의 못난 짓을 변명하는 습성이 있다. 제자들이 게쎄마니에서는 근심한 나머지잠들었다고 하더니 이제 여기서는 기쁜 나머지믿지 못했다고 한다.

 

42

예수께서는 생선을 잡수셨다는 것도 그분이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뜻으로 그 육체성을 또 한번 강조한 것이다. 루카는 베드로가 고르넬리오의 집에서 설교할 때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한다. “우리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그분이 다시 살아나신 다음에 그분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43

44-46절은 1고린15.3-4의 선포문을 옮기다시피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나타나셨습니다.” 루카는 앞에서도 예언과 성취 도식에 따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설명했거니와 앞으로 사도들의 설교를 창작할 때도 그렇게 할 것이다. 44절의 기록된 모든 것들은 신역성서 중 갈라 3.10인용문을 제외하면 18.31;21.22;24.44;사도13.29;24.14에만 나온다.

 

47

전에 예수님은 갈릴래아에서 시작하며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으나 이제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 끝에 이르기까지예수의 구원사건을 선포할 것이다.

사도들은 모든 민족에게, 곧 이방인들에게도 선포할 것이다.

일찍이 요한 세례자도 죄사함을 위한 회개를 선포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사도들도 죄사함을 위한 회개를 선포하겠는데 그분의 이름으로선포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요소다.

 

48

사도들은 예수사건. 특히 죽음과 부활의 증인이 될 것이다.

 

#. 24.36-49는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는 인지 발현사화. 제자들을 교육하여 고난과 부활의 증인들로 삼으시는 사명 발현사화로 짜여 있다. 여기 인지 발현사화는 요한 20.19-20과 닮았다. 그런가 하면 여기 예루살렘에서의 사명 발현사화는 갈릴래아에서의 사명 발현사화와 모든 민족에게 전도하라는 명령이 닮았다. 루카가 마태 28,16-18의 원형과 비슷한 갈릴래아에서의 사명 발현사화를 수용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루카는 전승된 사화를 대폭 수정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쨌든 루카의 사명 발현사화는 구구절절 루카 특유의 낱말과 문체와 사상으로 가득하다. 그가 애용한 낱말과 문체는 각각 지적하겠기에 여기서는 그가 강조한 사상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께서는 고난을 겪고 부활하셨다는 선포문, 성령 약속, 제자들은 예수사건의 증인들. 모든 민족에게 죄사함을 위한 회개 선포.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따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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