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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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시몬의 영광 / 시몬 타싸[3] / 1마카베오기[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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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22-08-10 ㅣ No.156846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 시몬의 영광(1마카 14,1-15)

 

백칠십이년에 데메트리오스 임금은 트리폰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은 다음, 도움을 얻으러 메디아로 갔다. 기원전 14110월에서 기원전 1409월 사이이다. 그러나 페르시아와 메디아의 임금 아르사케스는 데메트리오스가 자기 영토에 들어왔다는 보고를 듣고, 그를 사로잡으라고 장수 하나를 보냈다. 아르사케스 6세로도 불리는 미트리다테 1세는(기원전 171-138) 파르티아 제국의 창건자이다. 이 생포는 기원전 139년에 일어난다.

 

그 장수는 가서 데메트리오스의 군대를 치고 그를 잡아 아르사케스에게 데려갔다. 그리고 아르사케스는 데메트리오스를 감금해 버렸다. 데메트리오스는 카스피해의 남동쪽 연안에 있는 히르카니아에 유배되었다. 때는 포에니 전쟁으로 카르타고가 로마인들에게 멸망하고, 그리스는 로마 제국의 속국으로 되는 시점이다. 이리하여 헬레니즘 시대는 서서히 종말을 고하고 있었을 때 데메트리오스가 붙잡혔다.

 

이처럼 요나탄의 형 시몬은 항전을 계속하여 여러 승전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유다 땅은 시몬이 다스리는 동안 내내 평온하였다. 그는 자기 민족의 행복을 광범위하게 추구하였고 그의 권위와 영광은 언제나 그들의 마음에 들었다. 그는 야포 항구를 점령하고 바다의 여러 섬으로 가는 길을 터놓아 그 영광이 더욱더 빛났다. 그는 자기 민족의 경계를 넓히고 유다 지방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많은 포로를 데려오고 가자라와 벳 추르와 예루살렘 성채를 차지하여 그곳에서 이민족들의 부정한 것들을 모두 몰아내었다. 아마도 시몬이 데려온 이들은, 이민족들에게 끌려가 외국 여러 곳에 흩어져 유배살이를 하던 유다인들일 것이다(3,9; 5,9-36.45-54 참조). 가자라와 벳 추르와 예루살렘 성채, 이 세 곳이 유다에 있는 셀레우코스의 요새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하였다(11,65-66; 13,43-48.49-52 참조).

 

이렇게 시몬은 탄탄한 기반을 확고히 구축했다. 그리하여 그에게 대항할 자가 아무도 없었다. 백성은 평화로이 제 땅을 일구고 땅은 많은 소출을 내었으며 들판의 나무들도 무성하게 열매를 맺었다. 노인들은 거리에 나와 앉아(즈카 8,4 참조) 모두 함께 좋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젊은이들은 화려한 군복을 지어 입었다. 나아가 시몬이 성읍마다 양식을 공급하고 방어 무기들을 설치하니 그 명성이 땅 끝까지 자자하였다.

 

그가 이 땅에 평화를 이루자 이스라엘은 크게 기뻐하였다. 저마다 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았다(미카 4,4 참조). 그들을 두렵게 할 자 아무도 없고 이 땅에 남아 그들과 싸울 자 아무도 없었다. 그 시절에는 임금들까지도 패망하였다. 시몬은 백성 가운데 가련한 모든 이에게 힘을 북돋아 주고 스스로 율법을 따르면서 무도한 자들과 악한 자들을 모두 쫓아내었다. 그는 또 성소를 영광스럽게 꾸미고 성전 기물들을 많이 갖추어 놓았다. 이렇게 마타티아스의 둘째 시몬의 영광은 유다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즈음 요나탄이 죽었다는 소식이 로마는 물론 스파르타에까지 전해지자 사람들은 몹시 슬퍼하였다.[계속]

 

[참조] : 이어서 ‘4. 동맹의 갱신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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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메디아,아르사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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