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부활 제3주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루카24,35-48)

스크랩 인쇄

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4-18 ㅣ No.146164

 

2021년 4월 18일 주일

[부활 제3주일성경에 기록된 대로(루카24,35-48)

   

 

1독서<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사도3,13-15.17-19)

13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14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17 이제형제 여러분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19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화답송 시편 4,2.4.7.9(◎ 7)

◎ 주님저희 위에 당신 얼굴 밝은 빛을 비추소서◎ 알렐루야.

○ 저를 의롭다 하시는 하느님제가 부르짖을 때 응답하소서곤경에서 저를 구해 내셨으니자비를 베푸시어 제 기도를 들으소서

○ 너희는 알아라주님은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기적을 베푸신다내가 부르짖으면주님이 들어 주신다

○ 많은 이가 말하나이다.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 주랴?” 주님저희 위에 당신 얼굴 밝은 빛을 비추소서

○ 주님당신만이 저를 평안히 살게 하시니평화로이 자리에 누워 잠드나이다

 

2독서<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1요한2,1-5)

나의 자녀 여러분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복음<성경에 기록된 대로다시 살아나야 한다.>(루카24,35-48)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바로 나다나를 만져 보아라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베드로의 설교

 

 부활 제3주일 제1독서(사도3,13~15.17~19)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아는 이 사람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14~16)

 

사도행전 3장 11절부터 26절까지는 예루살렘 성전 '아름다운 문'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 치유 사건으로 인하여 놀라서 모여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한 사도 베드로의 솔로몬 행각에서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앞서 오순절 성령 강림의 현장에서 행한 첫번째 설교(사도2,14~36)에 이어 사도 베드로의 두번째 행하여진 설교이며, 첫번째 설교와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구세주 되심을 선포하고, 모여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도 베드로는 생명을 기준으로 즉 바라빠는 생명을 죽이는 자로,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는 분으로 대조한다.  

사도 베드로가 두 인물을 대조하여 강조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생명을 살리는 예수님을 거절하고 생명을 죽이는 바라빠를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고 영원한 죽음을 취한 어리석은 민족이요, 미련한 백성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거룩하다' 표현은 죄와는 전혀 상관없이 존재하시는 하느님께만 사용될 수 있는 문자 그대로의 거룩한 표현이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거룩하고'에 해당하는 '하기온'(hagion)이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속성을 지니신 하느님과 동일한 분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의로우신'에 해당하는 '디카이온'(dikaion)이라는 단어는 하느님의 공의(公義) 대변한다. 

'거룩하고'와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거룩함 하느님과의 관계 대변한다면, 의로움 인간과의 관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거룩하다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신분의 성격을 규명하고(사도,27.30), 의롭다는 것은 예수님의 의로운 성품과 삶을 대변한다(사도7,52; 22,14). 

결론적으로, 베드로가 유대인들이 생명의 주이신 메시아를 거부하고 살인자를 선택한 사실을 상기, 부각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 역시 살인자라는 것이다. 

'생명의 영도자' 번역된 희랍어는 '퀴리오스'(kyrios)가 아니고 '아르케고스'(archegos)이다. '아르케고스'(archegos) '어떤 분야의 길에 가장 먼저 들어서는 인도자나 선구자'라는 의미이다(히브2,10). 또한 어떤 일의 기원자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생명의 영도자' '생명의 근원자' 혹은 '생명의 부여자'라는 뜻이다.

 

실로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얻게 하시고 풍성하게 얻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생명의 근원자란 이름이 적합하며(요한10,10),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 한계를 갖는 육체적 생명이 아니고 영원토록 죽지 않는 영적 생명이다(요한17,1.2). 

그리고 '여러분은 ~죽였습니다'에 해당하는 '아펙테이나테'(apekteinate)에서 '여러분' 사도행전 3장 14절 주어 '휘메이스'(hymeis)와 같다. 

실제로 예수님께 사형 선고를 내린 법정은 로마의 법정이요,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직접 시행한 자들은 로마의 군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베드로가 강조형 주어(인칭대명사)까지 사용하여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을 유대인으로 지목하여 단죄하는 이유 이 죄가 법률적인 죄가 아니고, 신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증인'으로 번역된 '마르튀레스'(martyres) 피고의 죄를 변호하거나 고발하기 위해 세워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법정 용어이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실제로 본 목격자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을 다른 이들 앞에서 알리기까지 하는 증인이었다. 

증인들이 증거하는 것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는 사실이다. 

한편, 역설적인 의미에서 사도 베드로는 바른 증인으로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살인자를 놓아 주게 하고 무죄한 자를 죽이라는 불의한 증언을 한, 잘못된 증인이었던 유대인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고대 세계에서 이름은 단순히 명칭으로서의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지닌 사람의 인격과 존재 자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앉은뱅이였던 사람의 다리를 낫게 한 주체가 그 사람이 믿은 이름이라는 사도 베드로의 주장 그 이름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아직 살아 계시며 병조차 복종시키는 능력과 권세를 지녔음을 간접적으로 주장하는 표현이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란 표현에서도 나오지만, 믿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의 대상이다.  믿음의 대상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앉은뱅이를 낫게 한 믿음의 주체 사도 베드로로 보는

 경우와 앉은뱅이였던 사람으로 보는 두 가지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마다 그들의 믿음이 그들을 낫게 하셨다고 병자들을 칭찬하셨던 것에 근거해서(마태9,22; 마르10,52),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듣고 믿은 앉은뱅이였던 사람 자신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19) 

베드로의 설교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청중들의 회개에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회개하고'에 해당하는 '메타노에사테'의 원형 '메타노에오'(metanoeo) '생각을 바꾸다'(change thought)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자기가 옳다고 여겨왔던 모든 가치관과 생활 습관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전인격적인 변화를 뜻한다.

그리고 사도행전 3장 19절과 20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 세 가지인데, 첫번째 보상이 죄가 지워진다는 것이다.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해당하는 '엑살레입테나이'(eksaleipthenai) '지우다'(묵시3,5), '씻어 내리다'(묵시7,17)는 뜻을 지닌 '엑살레이포'(eksaleipho) 수동태 부정사로서 전치사 '에이스'(eis)와 함께 '죄가 지워짐을 받으려면'(씻기움을 받으려면)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죄가 지워짐을 받는 것' 회개하고 돌이키는 결과로 오는 보상이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글을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썼다. 그런데 당시의 잉크는 오늘날처럼 산이 섞이지 않은 잉크였기 때문에 한번 쓰여진 글이라도 고치고 싶으면 물묻은 스펀지로 한 번 닦으면 말끔히 지워졌다. 

어떤 죄를 지었든지간에 심지어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죽인 죄를 지었을지라도, 일단 회개하면 그 모든 죄는 기억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말끔하게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이다(이사43,25).


 


 

 부활 제3주일 복음(루카24,35~48)


"내 손과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39)


여기서 '내', '나의'에 해당하는 '무'(mu; my) 두 번 사용하여 예수님께서 드러내시고자 하신 의도가 명백해지는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유령으로 오해하는 제자들의 그릇된 생각을 수정하기를 원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유령이 아니라 실제 육체를 가지신 몸으로 부활하신 것을 당신의 손과 발을 확인함을 통해 깨닫게 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손과 발인가?

루카 복음사가는 여기에 대해 확실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요한 복음 20장 25~27절은 그 손과 발에 '못 자국'(못박힌 자국)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 당신 자신이 '몸'이 없는 유령이거나 혹은 '또 다른 어떤 존재'가 아니라, 과거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고 기적을 베풀며,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바로 그 예수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 주시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 요한 복음 24장 39절에는 명령형 동사가 세 번 나오는데,  첫번째 '보아라'에 해당하는 '이데테'(idete; Look at)이고, 두번째 '만져'에 해당하는 '프셀라페사테'(pselaphesate; touch)이며, 세번째 '보아라'에 해당하는 '이데테'(idete; see)이다.

이 세 동사는 모두 복수 2인칭 부정(不定) 과거 명령형으로서 매우 강한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제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령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거듭 세 번의 명령형을 사용하신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구체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는 '만져'로 번역된 '프셀라페사테'((pselaphesate)이다. 이것은 '손으로 만지다'를 뜻하는 원형 '프셀라파오'(pselaphao; touch; handle) 명령형으로 사용된 것으로서, 예수님께서 실제 육체를 지녔음을 접촉을 통해 확인하라는 뜻이며, 육체적 부활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증명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 단어는 요한1서 1장 1절에서 영지주의자들을 반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가진 완전한 인성(人性)을 지녔음을 증명할 때에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오늘의 묵상

신학교에 입학한 지 5년이 지난 어느 날 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앞으로 4년 뒤면 신부가 될 터인데, 지금처럼 살아도 될까? 아직 아무런 하느님 체험도 없고, 하느님도 알지 못하는데 하느님을 전할 수 있을까?’ 이런 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마음을 두드리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당시 신학교 학장 신부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영성 생활은 영적 독서(Lectio Divina)와 함께 시작되고, 영적 독서를 끝내는 순간 끝난다. 먼저 성경을 읽어라. 읽으면서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찾아라. 그 찾은 말씀을 되새겨라. 그리고 그 말씀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라.” 그래서 다음 날부터 신약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읽다가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있으면 밑줄을 긋고 종이에 써서 그 말씀을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성당으로 가는 시간 뿐 아니라, 수업을 듣기 전에 노트에 그 말씀을 가장 먼저 썼습니다. 그리고 틈 날 때마다 되 뇌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되새기며 살다 보면 그 말씀과 꼭 맞아 떨어지는 일이 생기는데, 그럴 때면 그 말씀대로 살아 보고자 더욱 노력하였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고 외우며 그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한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깨달음이 올라왔습니다. ‘참으로 하느님께서 계시는구나! 그냥 저 멀리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시라 바로 곁에 살아 계신 하느님이시구나! 그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으려면 우리도 노력해야 합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내 말 안에 머무르면”을 『공동 번역 성서』에서는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읽고 새김’으로써 ‘말씀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1,128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