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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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그대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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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2-01-26 ㅣ No.152513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말씀의 한 부분입니다.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다가 다시 독서의 이 말씀에 멈칫했습니다. 저는 숨기고 싶지도 않고 솔직한 저의 감정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 말씀은 바오로 사도가 티모테오를 향해 한 말씀입니다.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그것도 끊임없이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끔찍하게 아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대상이 다르지만 아끼는 것은 주로 연배가 높은 사람, 직위가 높은 사람이 자기보다 아랫사람을 향해서 하는 행동으로 최소한 동등한 위치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행위입니다. 저의 경우는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역활이 바뀌었습니다. 아낀다는 의미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먼저 사전적인 의미를 떠나서 아낀다는 말은 제일 먼저 절약한다의 의미가 가장 많이 연상될 수 있을 겁니다. 또는 소중한 것을 조금씩 사용하는 거와 같은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정신적인 의미에서는 어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의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건 굳이 사람이 사는 인간 세상에서 서열과 같은 수직적인 인간관계를 논외로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마치 나라를 지키는 것 하면 군인만 연상할 수도 있지만 나라를 지키는 것은 군인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나이가 어려도 윗어른을 깍듯이 예의를 다해서 소중하게 또 마음을 다해 존경할 수도 있습니다. 그 대상은 성별도 학벌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지위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티모테오를 아끼는 마음처럼 저는 그런 마음으로 육적인 피를 나눈 분은 아니지만 마음으로, 영적으로는 육의 형제보다도 더 애지중지하게 여기는 분이 계십니다. 저희 본당에 계시는 스물두 살 연상이신 자매님이십니다. 때론 어머니처럼, 때론 이모처럼, 때론 심지어는 옆집 누나처럼 그렇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제가 이분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분을 뵌 지 한 달이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연말에 문자로 인사만 남겼습니다. 혹여나 제가 문자를 드리면 또 답장도 하시게 하는 번거로움을 드리고 싶지 않아서 문자에 "귀찮게 해드리고 싶지 않으니 답장은 안 하셔도 됩니다. 자매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예전엔 그렇게 해도 답장을 주시거나 어떨 경우엔 바로 전화를 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께는 정말로 죄송한 일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과 성모님보다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미사 참례 후에 집으로 가는 길에 꼭 그분 댁 앞을 멀리서 지나가면서 봅니다. 댁을 보면서 자매님 얼굴 한 번 더 생각합니다. 운전을 하고 갈 때는 하필 그 부분에서는 코너를 도는 위험한 구간인데도 속도를 늦추어서 창문을 한 번이라도 보고 지나갑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이해를 할 수 있는 분이 과연 몇 분이나 계실까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저를 보고 사오정 같다고 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조금도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그건 정말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또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이런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사랑'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랑의 감정은 어떻게 전달이 되는지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순수한 사랑은 말과 특히 목소리로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눈빛입니다. 얼굴은 양보해서 가면을 쓴다고 해도 눈빛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절대 숨길 수 없습니다. 제가 그분을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분께서 저에게 주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3년 전쯤에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을 때 첫마디 인사말씀 "베드로야! 잘 있제" 하는 말씀. 글로써는 잘 느낄 수 없는 특유의 감정이 들어간 그 말씀은 아마 제가 하늘나라 갈 때까지 치매가 걸리지 않는 이상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특이한 감성이 발달된 것이 있습니다. 지금도 37년 전 처녀 영어 선생님의 눈빛도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입니다. 특히 그 선생님 덕분에 제가 영어를 좋아하게 된 것이지만 사실 그분은 처녀 땐 이국적인 외모였습니다. 졸업 후에 진주에서 8년 만에 인사를 드렸을 땐 시집도 가시고 애도 있고 하셔서 그런지 이국적인 모습은 다 사라지셨기는 했습니다. 졸업 후 어떻게 어떻게 해서 경찰서의 도움으로 지금 같아서는 통신비밀보호법 때문에 할 수 가 없지만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 수 있게 되어 선생님을 진주에서 뵙게 되었을 때 마치 중학교 시절로 되돌아가는 줄 알았습니다.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는데 처음 만나뵈었을 때 순간 놀랐습니다. 예전의 그 모습이 어디로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마치 그 선생님께는 세월도 비껴갈 것 같은 착각을 했던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학원을 경영하면서도 여학생들도 제가 남자 선생이지만 왠만한 여자의 감성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이런 부분에서는 독특하고 특이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 이런 감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저는 그 자매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감정은 절대 가식적인 감정으로 천하의 명배우라도 그런 연기를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진실한 감정이 배어 있고 그게 목소리로 그대로 전달된 것입니다. 순수하고 맑은 감정이니 아마도 그 감정의 주파수가 울리는 공명이 더 크게 저에게 전달이 돼서 그런지 저는 그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기분을 느껴보지 않은 분은 이해를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전에는 미스코리아보다도 더 아름답게 보인다고 했는데 이젠 그 말씀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현재 세상 나이로 일흔 셋인데 설령 제 마음이 아무리 진실이라고 해도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미스코리아랑 비교해서 그렇다는 거지 제 눈에는 아직도 제가 어렸을 때 50대 아주머니를 바라본 그런 모습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분을 어떻게 평가하실지 모르겠지만 근 1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분에 대해 조금도 어떠한 좋지 않은 이야기와 또 험담을 한 번도 듣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이것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미처 이분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분이 많으실 겁니다. 저는 남들이 보지 못한 그런 부분을 이분에게서 많이 봤기 때문에 단순히 존경의 차원을 넘어서 신앙 안에서 흠모합니다. 흠모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에 그리고 우러러 따른다의 의미입니다. 이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 저는 이분의 신앙관이 부럽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말씀 한 구절 때문에 자매님이 많이 생각나서 이런저런 싱거운 이야기만 했는지 모르겠네요. 자정 전에 그냥 독서와 복음만 묵상하고 자려고 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새벽 1시 40분이 되었습니다. 6시에 기상해야 돼서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너무나도 소중한 분은 항상 가슴속에 기억으로 남는다는 게 제가 드리고 싶은 뜻입니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수정처럼 순수하면 그 마음을 받는 사람은 무한감동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ps 잠이 쏟아지려고 해서 내용을 점검하긴 좀 어렵네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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