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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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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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2-08-11 ㅣ No.156860

220811.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너도 너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33) 

 

예수님께서는 공동체설교(마태 18장)에서 먼저 공동체에서의 작은 이들의 가치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되찾은 양의 비유”를 통해 마무리 하셨듯이, 이어서 공동체에서의 형제애를 말씀하시면서 먼저 죄지은 형제에 대한 “사랑의 교정 4단계 교정”에 대해 이야기하신 다음, 이제 “매정한 종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왜 용서를 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밝혀줍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는 대조적인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한편에는 ‘조금만 참아달라는’ 종의 간청에 대해, 단지 참아 주는 것을 넘어서서 청하지도 않은 빚을 아무런 조건 없이, ‘먼저’ 탕감해주는 ‘자비로운 왕’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동료의 간청을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버리는”(마태 18,30) ‘무자비한 종’이 있습니다.   

 

이 비유의 주제는 “용서”입니다. “용서”의 특성을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용서하되 끝까지 용서하라.”는 것이요, <둘째>는 “용서하되 먼저 용서하라.”는 것이요, <셋째>는 “용서하되 진심으로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첫째> “용서하되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은 이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이는 용서에는 한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곧 용서하되 무한히, 계속해서, 끝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한 번 혹은 몇 번 용서해보고 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미처 받아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죽기까지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말입니다.   

<둘째> “용서하되 먼저 용서하라.”는 말씀은 이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너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33)   

 

이는 용서의 이유를 밝혀줍니다. 곧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잘못을 인정하기도 전에, 혹은 잘못을 고백하거나 용서를 청하기도 전에, 당신께서는 ‘먼저’ 우리를 용서하신 까닭임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사랑하기도 전에 ‘먼저’ 사랑하셨고, 구원을 청하기도 전에 ‘먼저’ 구원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역시, 내 형제가 용서를 청하기도 전에, 혹은 비록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고백하기도 전에, ‘먼저’ 용서함으로써 하느님의 용서가 그들에게 베풀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역시 하느님의 용서에 참여하게 되고, 그 용서를 통해 구원으로 인도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용서해야 할 궁극적인 이유는 ‘먼저’ 우리가 용서를 통해 구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바로 그 용서를 통해 타인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용서하되 마음으로 용서하라.”는 말씀은 이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너희가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 35) 이는 용서의 태도를 밝혀줍니다. 곧 진심으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선심 쓰듯이 혹은 값싼 동정심이나 의무감이나 보상을 얻기 위한 방편에서가 아니라, 남의 시선이나 평가 또는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진심으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용서하되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사랑으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원망도 원한도 없는, 분노도 미움도 보복도 없는, 오직 사랑만이 있는 용서입니다. 결국, “용서”란 왕이 빚진 종을 “가엾이 여겨 빚을 탕감해주고 놓아 보내는 것”(마태 18,26)으로 드러납니다. 

 

바로 우리가 이러한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입었기에, 이제 우리 역시 이러한 용서와 자비를 이웃과 형제들에게 베풀어야 할 일 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주님!   

용서할 수 있게 하소서. 아니, 용서하기에 앞서 용서받았음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여 더 큰 사랑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일곱 번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끝까지 용서하게 하소서. 무한히 용서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선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나아가, 그가 잘 되도록 기도하고 도와주고 돌보게 하소서.   오늘도 먼저 용서하고, 용서에 사랑을 더하게 하소서. 아무리 꺾이어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으신 주님처럼, 저 역시 당신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아멘.  

 

(이 영근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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