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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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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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04-11 ㅣ No.146011

애틀란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에서 부활특강을 준비하였고, 제게 강의를 의뢰하였습니다. 대림특강과 사순특강은 본당에서 준비하게 됩니다. 주님의 탄생을 준비하고,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서 대림특강을 준비합니다. 나의 허물과 잘못으로 또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기 위해서, 주님의 수난이 나를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임을 생각하며 감사드리기 위해서 사순특강을 준비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만일 주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고린토 전서 15, 12-22) 주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시작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신앙의 신비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들 또한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저도 부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았습니다. 부활 성야 독서와 복음은 빈 무덤에서 끝이 납니다. 그리고 천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에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삶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셨던 곳, 표징을 보여주셨던 곳 갈릴래아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새로운 탄생이 아닙니다. 부활은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부활은 슬픔에서 기쁨으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다시금 허리띠를 동여매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는 더 이상 치욕과 굴욕의 상징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주는 구원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12명의 제자가 시작한 하느님 나라 운동이 2000년 역사를 이어온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하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초대교회의 많은 신자들은 십자가를 받아들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부활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던 예수님께서는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부활하였습니다.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하고,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환상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 맺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의 위기는 재물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조직이 잘못되어서가 아닙니다. 십자가 없이 부활하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외면하는 교회는 언제나 위기를 겪었습니다.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고통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보내셔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소생의 차원이 아닙니다. 부활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추구하였다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절망과 슬픔 속에 있었다면 희망과 기쁨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손을 뻗으시어 병자들을 고치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를 마치자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면서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하는 것,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을 일어나게 하는 것, 병자들을 고쳐주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의 아픔에 함께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활의 삶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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