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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커피20: 심상의 눈으로 커피 색을 느껴라

61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9-29

[사유하는 커피] (20) 심상의 눈으로 커피 색을 느껴라


색의 어우러짐에 따른 맛의 향연

 

 

커피잔 위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더욱 정겨운 계절이다. 하늘거리며 적막을 흔들다가 이내 힘에 부친 듯 공간으로 사라지는 향의 흔적들. 커피 향이 색깔을 띤다면 얼마나 좋을까?

 

커피의 본질이 색(color)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색은 만물의 원천인 ‘빛’과 인과관계에 있다. 커피가 거무튀튀하게 보여도 와인이나 브랜디를 담는 유리잔에 따르면 고운 색을 드러낸다. 잔을 기울여 가장자리를 얕게 만들면 불그스레하기도 하고 노르스름한 색상이 감지된다. 때론 희끄무레하고 여린 풀처럼 푸르레하다. 성질이 다른 커피, 유리, 공기가 만나 서로 경계를 이루는 인터페이스(interface)에서 본성이 반영된 현상을 감지하기가 더 쉬운 법이다.

 

무리의 한복판에 뭉쳐 있을 때보다 이질적인 영역과 맞닿은 지점에서 참모습을 드러내는 속성은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같은 이치겠다. 향과 맛 역시 커피가 외부와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서 더 잘 드러난다. 모든 조건을 같게 한 커피라고 할 때, 가장자리가 노란빛을 띤다면 상대적으로 산미가 두드러진다. 붉은빛이 우세하다면 더 저돌적으로 관능을 자극하고 꽃향기를 선물처럼 길게 남겨준다. 햇사과처럼 녹색이 감돈다면 토마토를 연상케 하는 식물체의 생동감이 입안을 꽉 잡아준다. 색의 어우러짐이 곧 맛의 향연이다.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색과 맛을 무의식적으로 연결해 표현하고 있다. 이채로운 맛을 경험하는 순간, “색다른 맛!”이라고 외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존과 관련된 정보는 수만 년 세월 속에서 DNA에 깊게 새겨졌다. 커피에서 장미 같은 진한 향이 느껴지면 붉은색, 잘 익은 오렌지처럼 새콤달콤하면 노란색, 박하만큼 화한 기분이 들면 흰색, 달고나가 떠오르면 갈색, 그리고 유칼립투스 향이 풍기면 녹색이 각각 떠오르는 것은 호모사피엔스 종이 오랜 세월 자연 속에서 체득한 결과물들이다.

 

색은 때론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경고해주기도 한다. 고인 물에 찌든 회색빛 흙을 연상케 하거나 아궁이를 훑은 손바닥처럼 거친 질감의 검댕을 떠올리게 하는 커피는 뱉어야 한다. 뇌가 유쾌하지 않은 색과 기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삼키지 말도록 신호를 보내주는 것이다.

 

색에 관한 이런 사연을 깊이 생각하다가 문득 인간을 아껴주는 절대자의 손길이 느껴졌다. 색은 빛에서 비롯된다. 빛을 과학으로만 풀어내면, 전기장과 자기장이 수직을 이루며 움직이는 파장이자 알갱이 같기도 한 입자이다. 때론 열을 발생시켜 에너지로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인간의 눈으로는 모든 빛을 볼 수 없고 특정 파장의 가시광선만 감지할 수 있다. 특정 물질이 빛을 모두 흡수하면 검은색으로 보이고 통과시키면 투명하게 보인다. 붉은색으로 감지되는 파장만을 반사한다면 그 물질은 붉은색으로 보인다. 색은 마치 지문처럼 물질의 고유한 특성을 표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빛이 없으면 색이 없고, 색은 빛의 존재를 증언하다. 성경에 따르면 빛은 단지 태양에서 나와 낮과 밤을 가르는 장치에 불과한 게 아니다. 빛은 첫날 만들어지고 태양은 나흘째에야 창조된다. 어둠이 심연을 덮고 있던 태초(창세 1,3)에 빛이 생겨 빛과 어둠을 가른 것을 시작으로 만물의 모든 것에 경계가 생겼고, 그 지점을 색이 알기 쉽게 밝혀준다.

 

커피가 진한 갈색을 띠는 것은, 정작 그 색을 내는 빛의 파장만이 커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져 나오는 탓이다. 색으로 커피의 본성에 다가가려면 뉴턴처럼 과학의 눈으로 보지 말고 괴테처럼 심상의 눈으로 색을 느껴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9월 27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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