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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성모성월 신심

68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5-03

[레지오 영성] 성모성월 신심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에서 편찬한 ‘올바른 성모신심’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교회 초창기부터 성모성월 신심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예수회 선교사 이탁(李鐸)이 저술한 ‘성모성월’이 한글 번역본으로 간행되어 널리 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한역 서학서의 하나로 전래된 이 책은 ‘성모성월’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총 32일 분량의 묵상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모성월을 정하게 된 이유도 세 가지로 밝히고 있는데, 성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 성모님께 의뢰하여 천주의 성총을 받는 것, 성모님을 특별히 열애하고 공경하는 거룩한 때와 가르침이 되도록 하는 것 등입니다.

 

레지오 교본은 성모성월과 관련하여 별도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본이 바탕으로 삼고 있는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안에 성모성월 신심과 관련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잘못된 성모 공경과 신심에 대해 우려하면서 성모 신심 실천에 대한 성찰을 간략하게 다루었습니다.

 

여기서 프로테스탄트의 반(反)마리아주의와 함께 가톨릭교회 안에서 빗나간 성모 신심들을 열거하면서도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활동과 성모 신심은 정당하고 칭찬받을 만하다고 평가하였습니다. 또한 성모님을 올바르게 공경하는 데 필요한 것은 많은 지식을 얻는 것보다 참으로 사랑하는 일이며, 꽃다발이나 초를 봉헌하는 일보다도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제안하였습니다. 레지오는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부탁하셨듯이 우리의 어머니로 사랑하고 공경할 뿐만 아니라 성모님의 손발이 되어 세상 모든 사람이 성모님을 통하여 구원의 은총을 받도록 협력하고 있습니다.

 

프랭크 더프는 1956년 데이톤 대학교에서 마리아학 권위자상(Marianist Award)을 받았을 때 수상소감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성모님을 섬겼다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 이상으로 더 큰 기쁨을 주는 말은 없습니다.”

 

레지오는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섬기려는 열망에 가득 찬 젊은 여성들로 시작되었습니다. 프랭크 더프는 ‘참된 신심’에 대한 자신의 강의가 이 여성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유니온병원의 병자를 방문한 매트 머레이의 병원 활동 보고에 감동을 받은 그들에게 성모님을 위해 봉사하는 레지오를 창설할 마음을 일으키도록 영향을 주었습니다. ‘참된 신심’을 신학으로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던 자신과 달리 체계적인 이해가 없어도 어렵지 않게 실천으로 옮기는 열성적인 사람들을 보면서 그 역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성모성월 신심의 참뜻은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

 

‘참된 신심’에서 성모님께 온전히 봉사하는 이상적인 자세는 ‘거룩한 노예’로 표현됩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프랭크 더프도 처음에는 ‘노예’라는 말에 심한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사도직 수행 방법을 전수해준 조셉 가베트가 성모님의 노예임을 드러내는 표시로 몸에 사슬을 지닌 것을 알고 매우 놀라고 감동했던 사실을 회고하였습니다. ‘참된 신심’에서 말하는 ‘거룩한 노예’는 사실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신 성모님을 본받는 사람입니다. 성모님이 ‘주님의 종’이셨듯이 ‘성모님의 종’이 되기를 열렬히 바라는 사람들과 함께 프랭크 더프도 성모님을 섬기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였고, 레지오 마리애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마침내 공적으로 성모님의 종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교본은 ‘성모님께 대한 레지오 단원의 의무’에서 성모 신심의 묵상과 실천을 다루고, 성모님의 노예 상태를 일종의 순교 행위라고 표현합니다. 자신의 소유물은 아무것도 없는 노예와 같은 상태가 되어, 전적으로 성모님께 의탁하고 성모님이 쓰시도록 자신을 철저히 내맡기는 것은 성모님을 제단삼아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제사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제물이 되신 십자가상의 제사와 참으로 같지 않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성모님의 태중에서 탄생하셨고, 성모님의 팔에 안겨 하느님께 봉헌되셨으며, 그 후 당신 일생의 매 순간을 통하여 성모님의 품에 안기셨고, 마침내 갈바리아 산상의 성모 성심의 십자가 위에서 제헌되신 것이다.”(64쪽)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는 성모 공경 축제로 오랜 기간 지내오고 있는 성모성월에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선행과 기도로써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데 성모성월의 참뜻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레지오는 성모님께 대한 단원의 의무를 통해 평소에 이것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성모성월 신심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레지오가 한국교회 안에서 더욱 성장하려면 한국교회 초창기부터 실천해 온 성모성월 신심의 전통을 기억하고 이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앙선조들처럼 “악을 고치고 선을 행하는” 은총을 성모님께 청해야

 

한역 서학서인 ‘성모성월’에서 가르친 내용에는 신자들이 성모님께 의뢰하여 받아야 할 천주의 성총으로 “악을 고치고 선을 행하여 선종하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요즘 착한 일을 하고 죽음을 잘 맞이하는데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당시 유교 사회는 선과 악을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며, 하느님(天)의 개입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철저한 인문주의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 초기 신자들은 인간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선한 일을 할 수 없다는 서학의 가르침을 수긍하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올바른 사람이 되는 길을 받아들였습니다. 정하상 바오로 성인이 평신도 회장으로서 한국교회를 대표하여 조정에 올린 ‘상제상서’에는 당시의 신앙생활이 이렇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스스로의 잘못을 고치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천주의 계명을 지키려는 것뿐입니다.”

 

“스스로의 잘못을 고치는”데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한역 서학서를 통해 유교 사회에 전래된 새로운 인간관입니다. 달래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최초로 신앙생활을 실천한 인물로 언급된 농은 홍유한 선생을 정작 우리나라 교회사 학자들이 외면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농은 선생을 조선에 전래된 한문 서학서 ‘칠극’을 수덕의 방법으로 활용한 유학자로만 단정하고 그의 신앙생활을 무시하는 경향 때문에 정하상 바오로 성인이 천명한 당시의 신앙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신학적인 정교함이 결코 신앙을 성장시켜주지 않으며,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도록 해야만 한다는 프랭크 더프의 확신을 이어받은 레지오 단원들은 우리 신앙 선조들이 실천했던 방법도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기 바랍니다. 성모성월 내내 “악을 고치고 선을 행하는” 하느님의 은총을 얻게 해주시도록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며 자신의 성화를 위해 노력한다면, 박해 가운데에서도 신앙을 지켰던 선조들의 신앙생활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통해 얻고자 하는 구원은 예수님을 닮은 선한 사람이 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5월호, 권용오 마티아(안동교구 상주 가르멜 여자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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