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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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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우리의 길동무, 성모님!

66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2-11

[레지오 영성] 우리의 길동무, 성모님!

 

 

1. 지금도 제 기억 속에는 어렸을 적에 국어 교과서에서 보았던 서양시 한 편의 내용이 잔잔하게 남아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R. Frost)라는 시인이 쓴 ‘가지 않은 길’이라는 글입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중략]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피천득 편역)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했느냐, 어떤 길을 걸었느냐에 따라서 많은 것이 아니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2. 사도행전의 저자는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殺氣)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사도 9,1-2)라고 하면서,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사도 9,18)라고 사도 바오로의 회심을 전해줍니다. 여기서 보듯이 사도 바오로는 주님 앞에서도 두 개의 길을 걸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사도 바오로조차도 우리가 결정적으로 따라야 할 유일한 길,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인 주님의 길을 처음부터 올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사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 앞에 아주 열심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열심함이 그를 올바른 길을 걷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심함을 내세웠지만, 그 결말이 자신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선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들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3. 성녀 소화 데레사께서는 “매일 새롭게 ‘작은 길’을 출발하는 것은 진정 ‘사랑의 모험’이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어서 “무엇인가 힘들게 느껴질 때, 그것이 꼭 그래야만 한다면 하루에 백 번이라도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 당신을 위해서!’” 그리고 “내 체험을 살펴보면, 사랑과 기쁨을 주는 데서 작게나마 진보했을 때, 그리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려고 나를 잊어야 할 필요를 느꼈을 때 나는 행복했다”고 덧붙이십니다. 이처럼 리지외(Lisieux)의 데레사 성녀에게 ‘작은 길’은 일상 안에서 자신을 조금 더 낮추는 길이었으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끼며 함께 걸었던 길이었습니다. 그 길이 성녀에게 ‘내적 자유’를 깨닫게 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매 순간을 ‘주님을 위해서’ 살지 못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그와 같은 지향을 항상 품고 살아가려는 영적인 노력은 참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섬세한 영적 깨달음이야말로 아주 조금이지만 우리 자신이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너무 큰 것에 마음을 쓰기 보다는, 작은 것을 통하여 조금씩 진보하는 기쁨의 체험이야말로 나날이 새로 나는 은총의 충만입니다.

 

4.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미 암브로시오 성인이 가르친 대로, 믿음과 사랑 그리고 그리스도와 이루는 완전한 일치의 영역으로서 천주의 성모님께서는 교회의 전형이시다.”(‘교회헌장’, 63항)를 인용하시면서, 성모님께서는 “신앙의 모범, 애덕의 모범, 그리스도와 친교의 모범”이라고 다시금 새겨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섭리하시는 구원의 길에 “예”라고 응답하신 성모님, 산골에 사는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기 위해 수고스런 길을 나선 성모님, 성부께 순명한 그리스도의 삶 안에 똑같은 방식으로 일치하셨던 성모님은 우리가 택하고 걸어야 할 길을 보여주십니다.

 

사실 성모님의 일생은 숨겨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모님에 대하여 참으로 많은 것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루르드, 파티마, 과달루페, 반뇌, 로렛토 등. 우리는 이미 성모님과 관련된 수많은 신앙의 유산들을 살고 있습니다. 그 유산들은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 더욱 더 생생하게 체험되고, 우리를 주님의 자녀들로 양육하고 있습니다.

 

5. 성모님의 군대, 레지오 마리애 단원 여러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주님의 길’입니다. 주님의 길은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 가야 할”(루카 13,33 참조) 우리의 길이기도 합니다. 이 길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걸어야 할 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께서는 “환난도, 역경도, 박해도, 굶주림도, 헐벗음도,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로마 8,38-39) 우리 주 그리스도의 길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다고 담대하게 선언하셨습니다.

 

언젠가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했을 때, 안내를 맡았던 가이드 자매님이 자신을 ‘길동무’라고 소개했습니다. 정말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이었습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같이 동행하는 친구. 그 친구가 우리의 모든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어머니라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영적 여정을 함께 하시는 길동무이십니다. 성모님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 앞에서도 결코 주저하지 않고 미련 없이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저희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따라 살아가고, 그 길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변화되고 성화될 수 있도록 전구해주십시오.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2월호, 정연정 디모테오 신부(서울 화곡본동성당 주임, 강서 평화의 모후 Co. 지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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