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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 시대의 신앙: 철학은 신학의 시녀, 그럼 과학은?

38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2-03

[과학 시대의 신앙] 철학은 신학의 시녀, 그럼 과학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을 비롯하여 중세 신학자들은 철학을 신학의 시녀라고 여겼다. 철학을 업신여겨서 한 말이 아니라, 신학을 제대로 하기 위해 철학의 도움이 절실함을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

 

무신론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박사와 함께 쓴 책 「위대한 설계」(Grand Design) 첫머리에 “철학은 죽었다. 철학이 들고 있던 진리의 횃불을 이제 과학이 들고 있다.”고 밝히며, 과학 지상주의적인 말을 하고 있다. 호킹 박사의 이러한 무신론적 사고가 일반인들에게 비판 없이 받아들여지고,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까 걱정된다. 그에 비하면 아인슈타인 박사의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고,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라는 말은 아주 균형 잡힌 표현이다.

 

신학이 과학과 기술의 엄청난 성취를 따라잡지 못해서, 또는 그에 위축되어 교회 내에서 과학과 신앙에 대한 논의를 피하거나 과학자들과 젊은이들이 신앙을 등지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다행히 이러한 흐름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신학과 사상 학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 9월 말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신학과 사상 학회’와 ‘한국 가톨릭 철학회’ 주최로 “무로부터의 창조 - 물리학적, 신학적, 철학적 새 전망”이라는 주제의 국제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염수정 추기경은 축사에서 “신학이 전통적으로 철학과 늘 대화해 왔듯이, 오늘날 신학은 과학과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날 한국과 인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미국의 신학자와 철학자, 과학자들의 알찬 발표와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창조주와 틈새의 신

 

우주가 약 138억 년 전 한 점에서 폭발로 시작되어 팽창하고 있다는 ‘빅뱅’(Big Bang, 대폭발) 이론은 1929년 이를 발표한 에드윈 허블의 이름을 따 ‘허블의 법칙’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그보다 2년이 앞선 1927년 벨기에의 조르주 르메트르 신부가 ‘팽창 우주론’을 제안하였다는 사실이 2018년 국제천문연맹에서 인정되어 이제 ‘허블-르메트르의 법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우주가 어느 한 시점에 시작되었다는 빅뱅 이론은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첫 말씀처럼, 우주가 존재하려면 이를 창조한 창조주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닮았다. 그래서 비오 12세 교황은 1951년 교황청 과학원에서 빅뱅 이론과 유신론의 관계에 대하여 연설하였다. 다른 물리학자들로부터 ‘콩코디즘’(Concordism), 곧 ‘성경 사실주의’ 신봉자로 부당한 의심을 받고 있었던 르메트르 신부는 교황에게 빅뱅을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와 동일시하면 안 된다고 설득하였고, 과학과 종교를 분리하는 자세를 유지하였다.

 

과학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늘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빈틈을 과학적 논리가 아니라 종교적 신앙으로 메우려는 시도에 ‘틈새의 신’(God of Gaps)이 등장한다. 이는 신을 창조주가 아니라, 오히려 과학적 논리의 보조자처럼 격하시키는 셈이 된다.

 

이 우주를 하느님의 피조물이라 믿는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과학자가 피조물인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며 혹시 자신의 발견이 하느님을 부정하게 될까 두려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도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에 마음 놓고 탐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있을 때마다 혹시 그것이 성경이나 우리 신앙의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따를 수 있다. 원자핵에 있는 ‘양성자’나 ‘중성자’가 ‘쿼크’ 세 개로 이루어졌다는 이론이 나오자, 이것이 삼위일체의 증거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고립된 계의 엔트로피는 줄어들 수 없다.”는 ‘열역학 제2법칙’을 근거로, ‘엔트로피가 줄어서 질서도가 높아지는 생명체의 진화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 창조 과학이다. 이러한 섣부른 주장은, 잘못 적용된 과학적 주장이 부정될 때에 자신들의 신앙까지도 무너지게 하는 어리석음을 부른다.

 

과학 철학자 칼 포퍼의 주장처럼 과학적 주장은 반증 가능해야 한다. 곧 틀렸을 가능성에 열려 있어야 하고, 실험과 이론 탐구를 통해 기존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진리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야 하는 것이 과학이다. 뉴턴의 운동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은 한때 영원한 진리처럼 보였지만,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의 등장으로 진리가 아닌 근사적인 것이라 알려지게 되었다. 이를 통해 과학은 진리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었다.

 

 

종교적 믿음과 과학적 탐구

 

과학자들 사이에 근거가 약하거나 아예 없는 주장에 대해 흔히 ‘그건 종교야.’라고 비꼬는 소리를 듣는다. 종교적인 믿음을 얕보는 무신론적 표현이기도 하지만, 반증 가능성이 없는 무조건적인 주장임을 일깨우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탐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과학적 진리도 있지만, 탐구로 얻을 수 없는 진리도 있다. 교회는 그러한 진리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드러내어 보이신다.’ 곧, ‘계시하신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우주의 생성과 역사에 관심이 많지만, 이를 직접 연구하지는 않는다. 우주가 지금의 주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도 지금의 나는 달라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100년 전에는 내가 이 우주에 없었고, 오늘의 나는 여기 있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100년 뒤 나의 존재는 이 세상 것이 아닐 것이다. 한편으로 내가 여기에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고 있다는 사실은 100년 전에는 사실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물론이고 이 우주가 사라지더라도 영원한 사실이다. 그것 자체가 영원한 가치를 가진다.

 

이러한 영원한 가치를 가진 영적 존재는 인류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계시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반증도 가능하지 않다. 과학은 우리가 잘못된 믿음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한편 신앙은, 과학의 열매라고 할 수 있는 기술이 잘못 사용되지 않도록 도와준다.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 발간 300주년을 기념하여 1987년 바티칸 천문대에서 열린 국제 학술 대회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보낸 편지 내용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다.

 

“종교와 과학은 그들의 자율성과 독특성을 지켜야 합니다. 종교는 과학에 근거하지 않고, 과학은 종교의 연장이 아닙니다. 각각은 그 자신의 원칙, 절차 양식, 해석의 다양성, 그리고 자신만의 결론을 가져야 합니다. … 과학은 종교를 오류와 미신으로부터 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종교는 과학을 우상과 거짓절대성으로부터 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각각 서로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신학이 사이비 과학을 주장하지 않고 과학이 무의식적인 신학이 되지 않게 하려면 오직 신학과 과학 간의 역동적 관계만이 각자의 학문의 온전함을 지지하는 그들의 한계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종교와 과학은 우리가 되어야만 하는 것, 존재하도록 요청받은 것이 되도록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 김재완 요한 세례자 – 고등과학원(KIAS) 계산과학부 교수로 양자 컴퓨터, 양자 암호, 양자 텔레포테이션 등을 연구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9년 11월호, 김재완 요한 세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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