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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고 행동하는 것이 곧 거룩함입니다

147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9-08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고 행동하는 것이 곧 거룩함입니다”

 

 

자비의 하느님

 

“사랑”, “진리”, “정의” 등의 개념들은 신학 역사 속에서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교회라는 주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신학의 역사에 있어서 “자비”라는 개념이 두드러지게 부각되지는 않았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사랑의 하느님’, ‘정의의 하느님’, ‘진리의 하느님’이라는 표현은 익숙하지만 ‘자비의 하느님’이라는 표현은 자주 고백되지 않았습니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신론과 인간론과 교회론은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습니다. 하느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의 모습에 대한 이해가 좌우됩니다. 신관의 차이는 인간관의 차이를 낳고 교회관의 차이를 낳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배제와 분노와 혐오와 폭력을 행사하는 종교인들은 과연 어떤 하느님을 믿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자주 있습니다.

 

신학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 개념이 오래 동안 망각되어 온 이유는 형이상학적 신관과 현대 무신론의 도전 때문입니다. 형이상학적(존재론적) 신관은 하느님을 초월적 존재, 존재 그 자체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형이상학적 속성(무한성, 영원성, 무소부재, 전지전능)이 강조됩니다. 또한 하느님 완전성에 대한 강조는 하느님을 고통 받지 않는 분이며 피조물들의 고통에도 무감각한 분으로 묘사하는 경향을 드러냅니다.

 

한편으로 현대 무신론의 끈질긴 도전은 그리스도교의 신학이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성찰을 할 여유를 갖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느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에 대응하기 위해 하느님 존재의 입증에만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존재에만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하느님의 속성에 대해 성찰할 여유가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 자비의 강조는 성경의 하느님에 대한 복원입니다. 자비의 하느님에 대한 강조는 철학자들의 신이 아닌 성경의 하느님, 역사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성찰입니다. 인격신으로서의 하느님이 강조될 때 인격적 특성인 자비의 개념이 부각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 정의의 하느님, 진리의 하느님이시지만 동시에 무엇보다 자비의 하느님이십니다.

 

 

자비의 교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취임 초부터 자비를 강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 우리의 삶을 위한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의 진리입니다”(2013년 4월17일 로마 주교좌 착좌미사 강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와 자비의 교회, 이 두 개념은 교황님의 핵심 교회관입니다. 교황님에게 있어서 중요한 복음적 태도는 겸손함과 온유함입니다. 가난과 연결되는 겸손함의 덕, 자비와 결부된 온유함의 덕이 강조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님, 성모님, 요셉 성인, 이 세 분 모두 겸손함과 온유함의 덕을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다정함이시고 사랑, 온유이신데 모든 의미의 이데올로기는 항상 딱딱합니다.”(공식 대담집, ‘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p.129) “교회의 복음화 활동에는 마리아 ‘방식’이 있습니다. 마리아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온유한 사랑의 혁명이 지닌 힘을 믿게 됩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겸손과 온유가 나약한 이들의 덕이 아니라 강한 이들의 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복음의 기쁨’, 288항)

 

“여기에서 저는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돌보고 보호하는 데에는 선함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부드러움이 요구됩니다. 복음에서 요셉 성인은 강인하고 용감한 사람, 노동자로 나오지만 우리는 그의 마음에서 커다란 부드러움을 봅니다. 이는 약자의 덕이 아니라 강한 영의 표징이며, 관심, 연민, 타인에 대한 참다운 개방, 사랑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선함, 부드러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교황 즉위 미사 강론, 2013년 3월19일)

 

자비의 교회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조는 현실 교회에 대한 성찰과 비판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눈에 비친, 이 시대의 교회는 세상의 고통과 비참에 대해 조금 무관심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 같고, 교회가 윤리적 · 교의적 문제에 대한 냉혹한 심판관의 모습으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자비에 대한 강조 안에는 어머니로서의 교회와 따뜻한 교회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습니다.

 

 

자비의 그리스도인 – 나눔, 헌신, 이해, 용서

 

올바른 신관, 올바른 교회관, 올바른 신앙관을 갖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하느님은 무엇보다 자비의 하느님이십니다. 자비의 하느님을 고백하고 믿고 따르는 교회와 신앙인은 그 자신이 자비의 태도와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합니다. “자비에는 두 측면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하여 베풀고 도와주고 봉사하는 것뿐 아니라, 그들을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 또한 여기에 포함됩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80항)

 

어쩌면 “베풀고 도와주고 봉사하는 것”은 그래도 조금 쉬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이러한 자비의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레지오 단원으로 살아가는 이상 자선과 봉사는 몸에 밴 태도와 행동일 것입니다. 물론 시혜적 관점과 태도에서 베풀고 도와주고 봉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자비란 단순한 베품과 봉사의 뜻이라기보다는 나눔과 헌신이라는 뜻이 더 정확한 이해일 것입니다. 내가 많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것도 자비이지만, 내 것을 포기하고 나누는 것이 더 큰 자비일 것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진정한 자비는 잉여의 물품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마저도 더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양보하고 나누는 행위입니다. 당연히 진정한 자비란 우월의식을 갖고 남을 도우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적 친교의 마음과 태도로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용서를 실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실감합니다. 그저 추상적인 명사로서 용서를 쉽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용서가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도 우리는 잘 압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어떤 불이익과 상처를 받았을 때, 말처럼 쉽게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교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 현대인들은 타인을 이해하기보다는 판단하고 심판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오늘의 종교인들이 하느님의 정의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단죄하고 심판하고 보복하는 모습을 뜻밖에도 자주 발견합니다. 슬픈 풍경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36)

 

용서는 주님의 몫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주님만이 용서하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용서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을 향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보면 오히려 더 분노에 사로잡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용서가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 어리석음과 교만입니다. 용서는 주님의 몫입니다. 주님을 향할 때, 오직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아주 조금 용서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과 일치하여 주님의 시선으로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의 시선은 따뜻해지고 우리의 마음 안에는 이해와 용서의 미덕이 조금씩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이해의 마음과 태도로 다가갈 때 우리는 주님을 닮아 조금씩 거룩해질 것입니다.

 

* 이 글은 오래전 어느 잡지에 실었던 것을 발췌, 수정, 첨가한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9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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