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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당 이야기21: 성 베르나르도가 시토회 시대를 열다 - 퐁트네 수도원 성당

707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2-22

[성당 이야기] (21) 성 베르나르도가 시토회 시대를 열다


퐁트네 수도원 성당

 

 

로마네스크 시기에 성지 순례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성지 순례의 길목마다 세워진 로마네스크 성당들은 대부분 수도원에 속한 성당이었습니다. 이는 수도원 성당이 로마네스크 건축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수도원과 관련해서는 클뤼니 개혁과 그레고리오 7세 교황, 그리고 제2클뤼니 수도원 성당 편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간단히 설명하였습니다. 그때 프레-로마네스크 시기 수도원의 표준이 되었던 성 갈로 수도원을 소개하였는데, 당시의 수도원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하나의 도시와도 같았고, 그 도시가 그리스도교 세계를 이끄는 중심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클뤼니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는 다시 자기 성찰을 필요로 했고, 그때 그 소명에 응답한 곳이 시토회입니다. 로마네스크를 주도하였던 부르고뉴 지방 디종 근처의 시토(Citeaux)라는 마을에, 베네딕토회 몰렘 수도원장 성 로베르토는 엄격한 수도생활을 강조하며 1098년 시토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이후 시토회는 1112년에 입회한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에 의해서 영성적으로나 규모면에서나 훌륭한 발전을 이루어, 12세기의 유럽을 자신들의 무대로 만들었습니다. 이때 일드프랑스의 생드니에 쉬제라는 수도원장이 있었는데, 그는 시토회 수도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양식을 소개하며 성 베르나르도와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것이 ‘고딕’의 시작인데, 쉬제와 베르나르도의 이야기는 뒤에 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시토회는 수도원을 개혁하면서 클뤼니의 대형화와 화려함에 반해서 석재의 물성이 강조된 검소한 건축을 지향했습니다. 그중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 르토로네 수도원과 퐁트네 수도원 등입니다.

 

퐁트네 수도원 성당은 성 베르나르도가 제시한 이상적인 수도원의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네이브는 3랑식 8베이로 되어 있고, 트란셉트는 양 날개의 동쪽면에 소성당을 두 개씩 두고 있습니다. 로마네스크 성당은 일반적으로 공간의 확장과 분화가 생기면서 이스트엔드가 발달하여 성가대석과 제단, 방사형의 소성당들이 발달합니다. 그러나 퐁트네 수도원은 제단 뒤편의 소성당들은 물론이고 앱스도 없이 단순한 사각형의 제대만 가지고 있습니다. 네이브월 역시 갤러리층이나 클리어스토리 없이 천장과 맞닿은 아케이드층의 1단만을 취하고 있습니다. 천장은 배럴볼트로 되어 있는데 횡방향 아치가 네이브월의 양쪽 기둥에 얹혀 천장을 떠받들고 있습니다. 기둥은 사각형의 코어기둥에 네 방향에서 대응기둥이 덧붙여진 복합기둥입니다. 수도원 내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들만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을 비워낸 영혼의 제일 안쪽 방 같습니다.

 

수도원의 외관 역시 내부의 연장입니다. 벽돌로 쌓은 외벽은 장식 없이 소박하면서도 매우 정교하게 축조되었고, 삼각형과 사각형의 기하학적으로 안정된 구도는 기도하는 수도자를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웨스트워크에도 종탑 등의 복합적 요소가 배제되어 절제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수평이 강조된 편안한 모습을 가진 성 베르나르도의 수도원들은 다가올 시대에 맞서 그리스도교 정신을 지켜낼 것입니다.

 

[2020년 2월 23일 연중 제7주일 의정부주보 7면, 강한수 가롤로 신부(민락동 성당 주임, 건축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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