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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환경] 제주의 식물을 사랑한 에밀 타케 신부

169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1-20

제주의 식물을 사랑한 에밀 타케 신부 (1) 에밀 타케, 그 상징성의 의미

 

 

왕벗나무를 비롯한 제주의 식물을 세계에 알리고 최초로 온주밀감을 제주에 들여온 에밀 타케 신부님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에밀 조셉 타케(Emile Joseph Taquet 1873∼1952)

 

이 이름은 아마도 우리 제주교구 신자뿐만 아니라 타 지역 비신자들에게도 ‘왕벚나무 신부’로 어느 정도는 익숙한 이름일 것입니다. 그동안 에밀 타케 신부는 여러 매체를 통해, 또 최근에는 도서와 서귀포성당 설립 120주년 기념 학술포럼 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110년 전의 프랑스 선교사 에밀 타케 신부님을 주님께서는 어떤 연유로 우리들 가까이 보내주시는 걸까요?

 

에밀 타케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7년 9월 27일 사제 서품을 받은 후 1898년 약관 24세의 나이에 조선으로 파견되어 55년을 이 땅에서 살았습니다. 제주에서는 1902년 4월부터 1915년 6월까지 서귀포 하논본당 3대 주임신부로 13년을 선교하였고, 이후 목포, 노안, 나주 등을 거쳐 대구 유스티노신학교에서 3대 교장으로 선임, 30년의 생을 교육자로 헌신하다 79세에 선종하였습니다.

 

에밀 타케 신부가 우리에게 유난히 친숙하게 느껴지는 데에는 제주 사목시절 그가 채집한 수많은 식물 채집본(7,047점 이상)의 영향이 클 것입니다. 실제로 이 표본들은 세계 식물학자들에게도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되어 프랑스는 물론 영국, 독일, 덴마크, 스위스, 일본 등에서 식물연구의 기초 자료가 되고 있으며, 제주도가 식물의 보고임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채집번호 ‘표본 4638‘, 이것은 에밀 타케 신부가 1908년 한라산 600미터 지점에서 처음 왕벚나무를 발견했을 당시의 기록으로, 제주 왕벚나무가 자생하고 있음이 최초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소중한 이름입니다. 또 일본에서 선교하던 식물학자 포리 신부에게 왕벚나무를 보내고 답례로 받은 온주밀감 14그루는 오늘날 제주 감귤산업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07년에는 포리신부와 오른 한라산에서 쿠살낭(구상나무)을 발견, 표본을 미국 하버드대 아널드 수목원으로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크리스마스 트리의 토종 ‘아비에스 코리아나’가 탄생되기도 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에밀 타케 신부는 하루에 적어도 여덟 시간씩을 풀을 돌보는 일에 전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여정에는 당시 가난했던 제주민들의 삶의 애환과 현실적인 사목의 고민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지점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또 당시는 신축교안으로 300여 명이 넘는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던 터라 흉흉한 분위기에서 말도 서툰 외국인 신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란 오직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기도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110년이 지난 현대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인간의 이익을 더 극대화하려는 욕심은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많은 것을 파괴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세력을 믿고 교회 안팎에서 불법적인 행동을 하며 사리사욕 챙기기에 폭력적이었던 신축년의 몇몇 사람들처럼 오늘날 우리 공동의 집 지구는 우리의 무책임한 남용으로 손상되고 있으며 지구를 마음대로 약탈하고 파괴한 죄는 다시 우리 마음을 황폐화하여 죄로 인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무고한 생명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닥친 기후 변화는 마치 ‘회개(悔改)’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사람임을 다시 한번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고 모든 만물의 신비로움, 경외감을 회복하는 기도와 실천을 통해 공동의 집 지구를 다시 살려내야 합니다.

 

사제의 길을 가기 위한 여정에서 우연히 만난 제주의 식물…. 하지만 모든 물리적 상황에는 창조와 필연, 즉 우연과 필연의 판타지가 있습니다. 모든 인생이 우연과 필연의 하모니이듯이 말이지요.

 

에밀 타케 신부님의 손끝을 통해 전해졌을 작은 사랑의 존재들. 주님께서 손수 지으신 그 소중한 생명을 우리도 함께 보살피며 미래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준비하라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형제자매임을 새겨봅시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 참고: 도서 ‘에밀 타케의 선물’(정홍규 저) [2019년 11월 10일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제주주보 4면, 이정희 아녜스(서귀포본당)]

 

 

제주의 식물을 사랑한 에밀 타케 신부 (2) 창조의 신비, 모든 생명의 연결성에서 에밀 타케 신부를 만나다

 

 

에밀 타케 신부가 제주 사목 시절 썼던 일기에 대해 가끔 생각했습니다. 사실 실제로 일기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존재했다면 사제 서품을 받은 그날 타케 신부는 어떤 감회의 글을 남겼을까? 또 1906년 제주도를 방문한 식물학자 포리 신부와의 첫 번째 식물채집 날과 무엇보다 1908년 4월 표본 4638(왕벚나무)을 발견했을 때 그 느낌은 어떻게 기록했을까.

 

2018년 4월 대구대교구 정홍규 신부님의 에밀 타케 연구서를 위한 사진 작업차 오른 한라산 관음사에서 저는 1908년에 느꼈을 타케 신부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한참을 왕벚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경내는 운무가 가득했고 이슬 같은 것이 조금씩 아침 햇살에 맺히는 시간으로 큰부리 까마귀가 가끔씩 하늘을 크게 날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는데, 그때 흘러나온 노래가 있었습니다. 아낌없이 사랑을 해야만 백만 송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그 꽃을 피워야만 그리운 별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그런 노래. 장미과 식물인 왕벚나무의 꽃잎들은 정말 백만 송이 즈음 되어 보였습니다. 전과는 달리 분명 통속적이거나 대중적인 그런 느낌과는 거리가 먼 가사로 다가왔던 그날, 오히려 백만 송이 장미로 가득한 왕벚나무에서 저는 타케 신부님의 고독과 찬란한 사랑의 약속을 본 듯했습니다. 타케 신부님은 이 아름다운 꽃송이들 앞에서 하느님의 별을 다시금 약속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서귀포성당 설립 120주년 기념 역사 학술포럼에서 황종열 레오 박사(두물머리복음화 연구소)는 「통합 생태의 관점에서 본 제주교구 초기 가톨릭 선교사들의 역할」을 통해 1904년 7월 22일 뮈텔 주교에게 보낸 타케 신부의 서한을 소개하며 교회의 무지한 제사 금지가 무죄한 조선인들에게 죄값을 대신 치르게 한다는 타케 신부의 서한 일부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신부가 아니면 누가 그들을 도와주겠습니까? 박해자들과 학살자들은 그들의 공훈에 대한 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목졸려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그 불행한 자들에게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주었습니까? 그들은 그래도 싸다! 이것이 죽은 자들에 대한 추도사였습니다.”(뮈텔 문서번호 1904-119)

 

2001년 발간된 「천주교 제주교구 100년사」에는 당시 프랑스 선교사들의 행적을 ‘초기 본당과 성직자들의 서한 2’을 통해 남기고 있습니다. 타케 신부의 사목 행적 또한 이 책에 남겨진 뮈텔 주교와의 서한 18편만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 중에는 문서번호 1904-119와 같이 당시의 사건과 제주민에 대한 타케 신부의 마음, 제주도에 부임한 이후 하논에서 홍로로 이전하는 필연적 이유들, 사목의 재정적 어려움에 대한 호소, 그리고 유일하게 전해지는 ‘식물채집’에 관한 한 통의 서한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자연은 위대한 연결망을 가지고 있어 서로 소통한다고 합니다. 예컨대 나무의 건강한 뿌리에 있는 균류는 서로 영양분을 교환하기도 하고, 이웃 나무들과의 정보 연결망 역할을 하여 벌레의 공격으로부터 자신과 이웃을 보호하고 또 연약하거나 병든 나무를 함께 돌보는 역할을 수행하여 숲을 지켜낸다고 합니다. 실제로 숲에서 같은 DNA를 가진 나무들은 한쪽 나무가 병들면 뿌리를 통해 강한 호르몬을 분비하여 멀리서도 병든 나무를 보살핀다고 하지요. 이때 어미목에 해당하는 돌봄의 나무가 건강하지 못할 경우에는 함께 고사되기도 합니다. 이제 곧 다가올 성탄, 에밀 타케 신부의 크리스마스 트리로 알려진 제주특산 구상나무가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고 하얗게 고사되어가는 한라산 풍경을 떠올리며 생태계 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생명의 철학을 새겨봅니다. 창조 때 주셨던 주님의 위대한 네트워크는 많은 부분 순환과 생명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오직 인간에게만 부여된 ‘창조’, 그 생명의 역사 속에 각인된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을 우리는 다시금 ‘사랑’으로 피워낼 때입니다.

 

“우리는 여정에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무엇인가를 향해 걷고 있다는 것이고 이 분명한 사실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2019년 에밀 타케 신부 조명을 위한 하느님 사업에 많은 지도를 해주시는 황태종 신부님의 말씀으로 맺습니다. [2019년 11월 17일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제주주보 4면, 이정희 아녜스(서귀포본당)]

 

 

제주의 식물을 사랑한 에밀 타케 신부 (3)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믿음과 에밀 타케의 생태영성

 

 

지속가능한 ‘성장’은 분명 모순입니다!

 

산업사회의 물질적 부의 축적이 과연 우리와 우리 사회의 행복을 함께 증가시켰는가를 생각해 보면 절대 그렇지 않음을 그리스도인들은 알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하고 있는 인디언들은 땅과 연결될 때 비로소 인간이 신성한 그 무엇인가에 연결된다고 말합니다.

 

“이 땅의 모든 부분이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오래전 사라진 날들에 일어났었던 슬프거나 행복했던 사건들이 우리의 모든 언덕, 모든 계곡, 모든 평야와 작은 숲 모두를 신성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조용한 해변을 따라 햇볕 아래 무더위에 지친 것처럼 말 못하고 죽은 것 같아 보이는 바위조차 우리 종족의 삶과 관련된 감동적인 사건들을 기억한다!”

 

현시대 우리의 성장 측정 방식은 총체적이지 못한 채 경제규모를 측정하는 GDP(국내총생산)가 국가 성장의 대다수 지표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GDP를 달성하기 위해 파괴되고 훼손된 인간 삶과 자연에 대한 지표는 많은 부분 무시되고 있는 것이지요. 결국 어떤 나라의 GDP가 높아진다는 것은 반대로 지구의 자연자산을 더 많이 파괴한다는 의미입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미래세대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제약하지 않고 현세대가 자기필요를 총족한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제주도의 오늘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전 세계 원시림은 75%나 소멸했습니다! 대형 어류 90%가 이미 바다에서 사라졌고 지하수는 고갈되고 있으며 강은 산업폐수로 많은 부분 오염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죽음의 바다는 200개 이상이라고 합니다. 또 사람들 몸엔 독성물질이 쌓여 암 발생률은 매일매일 치솟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기후변화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고. 이것은 분명 ‘충격’입니다! 결국 미래를 향해 살아온 우리 삶의 방식이 이런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주학자 브라이언 스윔은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가슴으로 느끼는 방식으로 살아오지 않은 탓에 오늘날 직면한 현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모른다고 말합니다. 마치 슬퍼해야 할 것에 슬퍼할 줄 모르는 것과 같이 말이죠!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생태영성’이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 데에는 바로 이 지점이 핵심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든 창조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민감하게 느끼며 그래서 우리가 모든 생명에 대해 신성함을 느끼는 존재로서의 기쁨으로 이 공동의 집 지구를 다시금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에밀 타케 신부의 식물 여정은 우리에게 많은 상상과 비전의 징표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생태적 감수성을 원천으로 지구의 변화를 인식하고 삶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전환의 모티브로서 강하게 다가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은 결국 복음을 살아가는, 살아내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세상을 인간의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것이라 말할 때 우리는 그 세상을 회복시키는 힘을 기쁘게 얻을 것입니다.

 

‘교황청 파견 선교사’ 에밀 타케 신부.

 

“당시 대부분의 프랑스 선교사들의 의식구조는 조선을 문명의 종교인 천주교로 개종시켜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교육하는 것을 ‘문명화의 사명’이라 믿었고, 이것은 19세기 유럽인들의 일반적인 시대정신이기도 했다.”(「에밀 타케의 선물」, 정홍규 저)

 

그러나 타케 신부는 제주 땅에서 신성한 땅과 연결된 생명들과 함께 제주민을 위한 사목의 길을 성실히 열어갔습니다. ‘식물’로 이어진 순하고 작은 영혼들 속에서 그는 연민으로 신앙인들을 대했을 것이며 하느님의 정원에서 모두가 함께 ‘연결’되어 피조물로서의 완전한 순명을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멘. <끝> [2019년 12월 15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제주주보 4면, 이정희 아녜스(서귀포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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