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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읽기: 존재와 본질을 구분하는 형이상학

55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9-24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읽기] ‘존재’와 ‘본질’을 구분하는 형이상학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다섯 가지의 길’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한 뒤, 제I부 제3문제부터 제11문제에 걸쳐서 신의 속성에 대한 질문을 장황하게 탐구한다.

 

신학적인 내용을 기대했던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에는 매우 난해한 내용인데, 가장 큰 이유는 토마스가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기술 방식 때문에 토마스의 「신학대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개념을 파악하지 못하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앞으로 이어질 논의를 위해서라도 핵심적인 개념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인 주요 개념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을 자주 ‘제1철학’이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이 학문이 일상적인 경험에서 마주치는 개별적인 대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일반, 존재 자체를 알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떤 대상들에 대해 던지는 모든 물음에는 이미 그것이 존재하며,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이 내포된 존재에 대한 물음을 명시적으로 제기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바로 이 형이상학이라는 학문의 과제였다.

 

스승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만족하지 못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에서 경험하는 운동을 설명하고자 많이 노력했다. 그는 운동(변화)을 일단 네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곧 장소의 이동, 양의 변화, 질의 변화, 실체의 변화 등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변화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주체가 있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것을 변화 밑에 있는 것, 곧 실체(實體, Substantia)라고 불렀다.

 

실체는 그 자체 안에 있는 것이고, 다른 것 안에 속하거나 붙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실체와 구분되는 다양한 우유(偶有, Accidentia)들이 있다는 사실을 관찰하고 이들을 크게 성질, 분량, 관계, 공간적 규정, 시간적 규정, 능동, 수동, 배치, 소속의 9개로 분류함으로써 자신의 10범주론을 완성했다.

 

예컨대 장소를 이동하거나 사고하는 작용들은 그 자체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운동하는 주체, 사고하는 자아에 속한다. 장소의 이동이나 사고 등은 우유로서 다른 것 안에, 곧 그 작용의 실체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체를 항구적인 것, 곧 동일한 것으로 본다면, 우유는 실체에 의존하므로 수시로 변화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와 우유의 구분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는 변화 이외에 더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유기적 생명체의 죽음처럼 어떤 실체가 완전히 다른 실체로 변형될 때마다 자연 안에서는 불변하는 것으로 보이던 실체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실체적 변화에서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부분을 설명하고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명한 ‘질료 형상론’(質料形相論)을 도입했다.

 

나무에서 석탄으로 변화한 경우 그 질료는 두 실체에 동일하게 남아 있지만, 각각의 실체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실체적 형상(Forma), 곧 나무와 석탄의 형상에 따라 규정된다. 질료(Materia)란 다른 형상을 받음에 따라 다른 실체가 될 수 있는 가능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 형상론을 도입함으로써 모든 변화를 더욱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변화가 일어나려면, 곧 어떤 사물이 가능태(Potentia)에서 현실태(Actus)로 넘어가려면 외적 원인이 필요하다.

 

가능태는 그 자체의 힘으로는 현실화되지 못하고, 현실화되려면 다른 요인들, 곧 원인의 개입이 요청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인, 형상인, 능동인, 목적인의 네 가지를 가장 대표적인 원인으로 요약하였다.

 

 

본질과 존재의 구분을 통해 얻게 된 ‘존재 자체로서의 신’

 

토마스 아퀴나스는 나폴리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할 무렵부터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그 이후의 발전을 섭렵하였다. 다른 교황청 직속 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금지령이 내렸을 때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섭렵했다는 것도 신의 섭리였을까?

 

그의 해박한 지식은 초기 작품인 「존재자와 본질」(De ente et essentia)에 잘 나타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지식을 「신학대전」에서 신의 속성에 대해 논의할 때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예컨대 신존재 증명에 이어지는 제3문제에서 “신은 어떤 가능성도 갖지 않는 순수 현실태(purus actus)”(STh I,3,1)라고 밝힌다.

 

그렇지만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난해한 형이상학을 이해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그리스도교의 창조론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형이상학을 발전시켰다. 그는 이미 아랍 철학자들이 발전시켰던 본질과 존재의 구분을 받아들였는데, 이 구분은 특히 유한한 존재인 피조물과 절대적 존재인 신 사이를 구분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본질과 존재라는 개념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본질(Essentia)은 사물에 대해, “그것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표현된다.

 

이를테면, “사람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에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다.”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질’을 말한 것이다. 또 “그것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존재’(Esse)를 말하는 것이다. 존재와 본질은 한 사물을 현실적으로 있게 하는 존재자의 구성 원리가 된다.

 

토마스는 바로 이 구분을 신과 피조물(인간)의 구별을 통해 신의 속성을 규정하는 데 사용한다.

 

“신에게는 본질과 존재가 동일하다. 인간처럼 존재와 본질이 구별되는 경우엔 늘 어떤 원인을 갖는 법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을 산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에게는 다른 무엇으로부터 원인 받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STh I,3,4).

 

인간을 포함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고 탐구하는 존재들은 유한한 존재자들이다. 이 유한한 존재자들은 자체 내에 존재 이유가 있지 못하고 다른 존재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어서 우연적 존재라고도 불린다.

 

우연적 존재란 그 존재에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이런 유한적 존재는 서로 다른 존재들과 구분하도록 제한하는 성격을 지닌 본질과 그 본질을 실제로 있도록 현실화시켜 주는 존재 사이에 서로 구별된다.

 

그렇다면 우연히 존재하는 것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런 근거는 필연적 존재[必然 有], 곧 존재 자체(Ipsum esse)라고 한다. 존재 자체란 있을 수밖에 없어서 필연적 존재는 자신의 본질과 존재가 일치한다. 이 필연적 존재는 다른 존재자들과 구분되고 제한되는 우연적 존재와 달리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절대적 존재라고도 불린다.

 

이 존재 자체는 형이상학적인 추론 과정을 통해서야 명확하게 드러났지만, 우리가 던지는 일상적인 존재자와 세계에 관한 질문 속에도 내포적이고 함축적으로 이미 전제되어 있던 것이다. 토마스는 신이야말로 바로 이 ‘존재 자체’라고 말한다.

 

토마스는 「신학대전」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러한 통찰을 토대로 신에 대한 설명을 더욱 확장해 간다. 실재하는 유한한 존재자의 근거가 되는 존재 자체는 단순히 인간 이성의 힘으로 추상해낸 순 논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본질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기에 어떤 것보다도 더욱 실재적이다.

 

신은 존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며, 모든 완전한 것들의 총체 개념 자체이며, 그 완전성이 너무나도 한이 없어서, 이 이상 더 새로운 것을 신에게 덧붙일 수는 없다. 존재를 가득 채운다는 뜻으로, 존재 자체인 신은, 분명히 신플라톤주의의 신이다.

 

토마스는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을 비롯한 다양한 철학적인 사상을 종합하여 존재 자체로서의 신 개념에 도달했다. 기존 형이상학 개념의 정화를 통해 도달한 존재 자체라는 개념이야말로 전통적으로 인간이 체험해 왔던 신(神)을 표현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다.

 

철학적인 통찰을 통해 도달한 존재 자체인 신은 세계의 원인으로서 시공을 넘어서는 초월자이며, 동시에 세계의 존재와 보존의 근원으로서 비물질적 양식으로 세계에 내재한다.

 

토마스는 이 철학적인 신 개념이 그리스도교에서 구체적으로 믿고 공경하는 신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를 「신학대전」 전체를 통해서 하나씩 밝혀 가고자 한다.

 

* 박승찬 엘리야 - 가톨릭대학교 철학 전공 교수. 김수환추기경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가톨릭철학회 회장으로 활동한다. 라틴어 중세 철학 원전에 담긴 보화를 번역과 연구를 통해 적극 소개하고, 다양한 강연과 방송을 통해 그리스도교 문화의 소중함을 널리 알린다. 한국중세철학회 회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9년 9월호, 박승찬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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