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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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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이스라엘 성지: 십자가의 길

185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9-10

[예수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십자가의 길

 

 

- 십자가의 길 제1처를 시작하는 안토니오 요새터.

 

 

겟세마니 동산에서 붙잡히신 예수님께서는 대사제 카야파의 집에서 고초를 받으며 밤을 지새우십니다. 날이 밝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로 끌려가 신문을 받으신 후 다시 유다 총독 빌라도에게 끌려가 사형선고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골고타로 십자가를 지고 가신 후 그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요.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시는 순간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시기까지를 ‘십자가의 길’ 기도를 통해 묵상하면서 신앙인의 삶을 되새깁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는 예루살렘을 찾은 순례자들이 2000년 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습니다. 또 매주 금요일 오후 4시(겨울철에는 오후 3시)에는 작은형제회 수도자들이 주관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가 이 길을 따라 열립니다.

 

- 십자가의 길 지도.

 

 

라틴어로 ‘비아 돌로레스’(Via dolorosa, 고통의 길, 슬픔의 길)이라고도 하는 십자가의 길은 동쪽 성 밖에서 스테파노의 문이라고도 부르는 사자 문으로 들어가 곧장 가다가 300m 채 되지 않아 왼쪽에 보이는 한 아랍인 학교에서 시작합니다. 이 학교 자리는 안토니오 성(城) 혹은 안토니오 요새가 있던 곳입니다. 헤로데 대왕(기원전 37~기원후 4)이 자신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위해 지은 성채였지요. 하지만 원래의 성채는 유다 독립 항쟁(기원후 66~70) 때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고 지금은 학교 건물 아래에 흔적만 약간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 초등학교 맞은편인 길 오른쪽에는 작은형제회 수도원이 있습니다. 수도원 안에는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끌려 나오셨을 때 병사들에게 채찍으로 맞으신 것을 기념하는 채찍 성당,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을 기념하는 사형선고 성당 등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순례하는 한국인 순례자들은 보통 안토니오 요새 자리인 아랍인 학교에서가 아니라 이 채찍 성당에서 또는 이 성당이 있는 수도원 경내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시작하며 제1처를 바칩니다.

 

-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십자가 지심을 기념하는 사형 선고 성당(좌)예수님께서 매맞으신 것을 기념하는 채찍 성당(우).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께서 못 박혀 돌아가신 골고타까지 약 500m에 이르러

 

채찍 경당에 들어서면 제대 뒤 색 유리화가 순례자를 압도합니다. 가시관을 쓴 채 온몸이 채찍 자국과 함께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 모습을 그린 색 유리화입니다. 그 옆에는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마태 27,24) 하며 손을 씻는 빌라도의 모습을 그린 색 유리화도 보입니다.

 

아랍인 학교 구내 또는 그 맞은편 작은형제회 수도원 경내에서 시작하는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골고타까지 약 500m에 이릅니다. 원래 십자가의 길은 기원후 4~5세기쯤부터 순례자들이 올리브산 자락 겟세마니에서 골고타까지 예수님께서 가신 수난의 여정을 따라 순례하던 여정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1처, 2처 같은 구분이 없었다고 합니다.

 

십자가의 길 각 처를 거쳐 가면서 기도하는 신심은 성지를 순례할 수 없었던 중세기에 시작됐습니다. 그러다가 13세기 말 현재와 비슷하게 십자가의 길 각 처가 결정됐는데, 각 처의 숫자는 적게는 7개에서 많게는 18개까지 다양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현재와 같이 14처로 고정된 것은 18세기 이후부터라고 합니다. 이제 그 길을 따라 가보겠습니다.

 

- 십자가의 길 제3처 경당 내부의 그림(좌)과 액체 호모 아치(우).

 

 

수도원 경내에서 나와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길 양쪽을 연결하는 아치가 눈에 들어옵니다. 라틴어로 “엑체 호모”(보라, 이 사람을)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리토스트로토스라고 하는 곳에 있는 재판석에 있다가 유다인들에게 “보시오, 여러분의 임금이오” 하고 말했다는 곳이지요(요한 19,13-15). 이 ‘엑체 호모’ 아치 부근의 벽에는 ‘II Statio’라고 쓰인 표식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제2처를 여기서 바치라는 표시이지요.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넘어지심을 묵상하는 제3처는 액체 호모 아치를 지나 100m 정도 더 가다가 왼쪽으로 꺾어져 모퉁이를 지나면 바로 왼쪽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진 채 넘어지시는 모습의 부조가 전면에 있는 작은 경당인데 닫혀 있을 때가 많습니다. 여기서 십자가의 길은 시장 통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시는 제4처는 제3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옷 가게 바로 옆에 있습니다. 제3처와 제4처의 경당은 아르메니아 예법을 쓰는 동방 가톨릭교회가 관리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4처에서 30m쯤 더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집니다. 그 모퉁이에 경당 문이 있는데 문 위에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졌다는 내용의 라틴어가 있습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에게 바쳐진 이곳 경당은 작은형제회가 1229년 예루살렘에 세운 첫 수도원 자리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이제 좁고 가파른 언덕길로 이어집니다. 100m가량 가면 오른쪽에 경당 문이 보이는데, 성녀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린 일을 묵상하는 제6처입니다. 물론 베로니카 성녀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렸다는 내용은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전승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넘어지심을 묵상하는 제7처는 6처에서 60~70m쯤 더 올라가야 합니다. 작은형제회가 관리하는 경당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셨음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제8처는 7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벽에 표시돼 있습니다.

 

- 성녀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렸다는 표식이 있는 제6처(좌)와 십자가의 길 제9처 자리.

 

 

소란스럽고 번잡한 시장 통이야말로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기에 좋은 곳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넘어지심을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제9처는 제7처가 있는 쪽으로 잠시 되돌아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100m가량 가면 오른쪽으로 돌계단이 있습니다. 돌계단 위로 올라가 70m가량 가면 벽면에 제9처 표시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순례할 때 십자가를 지고 가기도 하는데, 이곳 9처까지 오면 십자가를 내려놓습니다.

 

예수님께서 옷을 벗기심을 묵상하는 제10처부터 돌무덤에 안장되심을 묵상하는 14처까지는 모두 주님 무덤 성당 구내에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호에서 좀 더 살펴봅니다.

 

십자가의 길이 있는 곳은 모두 아랍인 지역입니다. 게다가 3처부터 8처까지는 번잡한 시장 통에 있습니다. 때로는 순례자들이 너무 많아서, 때로는 각 처를 기념하는 경당들의 문이 닫혀 있어서 벽에 붙은 표식만 보고 순례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조금 조용하게 예수님의 수난 길을 묵상하고 싶어서 고요한 새벽에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란스럽고 번잡한 시장 통이야말로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기에 더욱 좋은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을 그 상황을 훨씬 더 실감 나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오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이 묵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9월호, 이창훈 알퐁소(가톨릭평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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