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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사회교리30: 난민에 대한 사랑

53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7-21

[교부들의 사회교리] (30) 난민에 대한 사랑


이주민은 더불어 살아야 할 '새로운 가족'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헐벗고 집 없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수많은 전쟁 포로들이 우리 집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외국인들과 추방당한 이들도 적지 않으니, 그 울부짖음을 어디서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 아래 허공을 집으로 삼고, 처마 아래와 골목길과 외딴 공터를 거처로 삼습니다. 그들은 부엉이나 올빼미처럼 폐허 속에 웅크립니다. 옷이라고는 구멍 난 누더기이며, 할 일이라곤 자비로운 이들의 선의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식사라고는 먼저 온 사람들이 떨어뜨리는 부스러기요, 음료는 동물들과 뒤섞여 마시는 샘물입니다. 잔은 그들의 손 움큼이요, 창고는 주머니도 없이 주워담아야 하는 그들의 옷자락이고, 식탁은 웅크린 무르팍입니다. 침대는 맨땅이요, 목욕탕은 하느님께서 모두에게 주신 아무런 가림막도 없는 강이나 웅덩이입니다. 이 야만적인 떠돌이 생활은 처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불행과 가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단식하는 그대, 이 사람들을 도와주십시오. 그대의 불행한 형제들에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그대의 배에서 덜어낸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십시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공정한 정의가 되게 하십시오. 그대의 탐식과 그대 형제들의 굶주림,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악을 그대의 지혜로운 절제로 치유하십시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사랑해야 하는 가난한 이들」 1,5-6)

 

 

이 세상의 떠돌이들

 

가난과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과 조국을 떠난 이들이 세상 곳곳에서 고달픈 피난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셔츠 한 자락으로 어린 자녀를 품어 안고 가로지르기에는 이 세상의 물살과 장벽이 너무 거칠고 가파르다. 대한민국은 난민에게 가장 야박한 국가 가운데 하나다. ‘글로벌 대한민국’을 내세우면서도 난민들의 비극은 언제까지 딴 세상 남의 일이어야 하는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335~394) 교부는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준다. 인간다운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난민들을 맞아들이고 도움을 베풀되 우리 힘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단식으로 그들의 배고픔을 덜어주고, 우리의 검소함으로 그들의 궁핍을 채워주며, 우리 배와 마음에 가득한 것들을 덜어내어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자는 것이다. 이 자비의 실천은 남에게 떠넘길 수 없을뿐더러, 반드시 우리의 단식과 절제, 우리의 희생과 연대를 요구한다.

 

 

우리가 맞서야 하는 대상은 난민이 아니라 탐욕

 

우리 신앙의 두 기둥은 성경과 성전(聖傳)이다. 외로운 떠돌이의 벗이 되어 주시고 가난한 나그네와 당신을 동일시하시는 주님의 성경 전통과, 가난과 전쟁에 떠밀린 난민과 외국인들을 주님처럼 맞아들이고 환대하는 교부 전통에 맞서서 난민 반대를 외치며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달고는 할 수 없는, 그리스도에 맞서는 행위이다. 

 

난민들은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가족이기 때문이다.(에페 2,19) 이주민들은 국내에 침투한 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새로운 가족, 새로운 백성이다. 정말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은 가냘픈 희망을 움켜쥐고서 낯선 세상에 뿌리내리려 몸부림치는 이주민들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이글거리는 불의와 탐욕, 부정과 부패임을 그레고리우스는 일깨워준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7월 21일, 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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