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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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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복음으로 세상 보기: 오월의 어머니 마리아

164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5-11

[복음으로 세상 보기] 오월의 어머니 마리아

 

 

오월하면 “맑은 하늘 오월은 성모님의 달……”을 흥얼거리며 아름답게 봉헌했던 성모의 밤이 떠오릅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밤에 곱게 옷을 차려입고 아름다운 성가 속에 묵주기도를 드리고 꽃과 초를 봉헌하며 성모님의 모범을 따르겠다고 다짐하는 아름다운 밤입니다.

 

특히 신학교 성모의 밤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서서히 어두워짐과 함께 아름다운 조명이 성모님을 비추는 가운데 기도와 성가와 성모님께 바치는 글과 함께 꽃과 초가 봉헌됩니다. 이런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모의 밤이 슬프게 느껴졌던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니던 80년대 초중반 시대는 암울하고 무자비했던 군사독재시절이었습니다. 특히 5월이면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을 요구하며 연일 시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신학교 3학년쯤으로 기억되는데 그해도 밖에서는 학생들의 함성과 함께 최루가스가 신학교 마당에 흘러 들어오는데 신학생들은 성모상 앞에 모여 아름다운 성모의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다치고 잡혀가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는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지 못하고 성모님께 아름다운 편지와 기도를 드리는 성모의 밤이 부끄러웠고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성모님은 아들을 잃고 가장 아팠던 생을 사신 분인데 우리는 그것은 잊어버리고 천상의 어머니, 영광의 어머니 마리아만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성경 속에 나오는 마리아의 모습은 강한 여성, 시대에 순응하고 맞춰간 여성이 아니라 시대를 거슬러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새로운 시대를 꿈꾸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고통을 겪은 여인이었습니다. 성직자, 수도자들이 성무일도 저녁기도에, 레지오 단원들이 매일 바치는 까떼나의 ‘마리아의 노래’에서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루카 1,51-55)

 

 

마리아의 노래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염원이 담긴 노래

 

아름답게만 들리는 이 노래는 사회, 정치, 경제의 변혁을 노래합니다. 교만한 자들을 흩고, 높은 사람은 낮추고 낮은 사람은 높이고, 배고픈 사람은 배불리시고, 부유한 사람은 빈손으로 보내시는 하느님을 노래합니다. 실제로 ‘마리아의 노래’는 당시 이스라엘 민중들이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질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 담긴 노래라는 것이 일반적 통설입니다. 그것을 루카복음서 저자는 ‘마리아의 노래’로 기록하여서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실 ‘하느님 나라’를 예시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당시 이스라엘은 나라를 빼앗기고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힘없는 백성들은 로마의 식민지 백성으로 수탈당했습니다. 당시 지배층들은 백성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강대국의 붙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에 급급했고, 당시 지식층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자기 백성을 무식하고, 율법을 어기는 개, 돼지만도 못한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개, 돼지 취급당하며 천덕꾸러기 취급당하던 힘없고 가난한 민중들의 마지막 희망은 자신의 고통을 종식시켜 주실 메시아를 고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이스라엘 백성의 염원이 담긴 노래입니다.

 

마리아는 어린 처녀의 몸으로 자기의 생명을 걸고 천사의 말을 받아들이고 순명합니다. 역사의 부름,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당시 여성으로 주어진 당연한 길에서 벗어나 아기를 통하여 올 새 세상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갖고 자신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당시 이 노래의 의미와 민중의 열망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리치시고 보잘것없는 자들을 높이시는 정치혁명, 배고픈 자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신다는 하느님의 경제혁명에 대한 기대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하느님의 나라를 노래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사회변혁을 통해 평등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염원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은총을 가득히 받은 복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삶은 쉬운 삶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출산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짐승의 자리에 아들을 눕혀야 했고, 출산을 하자마자 헤로데의 죽음의 손길을 피해 난민이 되어야 했습니다. 요즘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고향과 나라를 떠난 난민들의 비참한 모습이 마리아와 요셉과 예수가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가정의 경제를 담당해야했던 남편인 요셉도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리아는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생활전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강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렵고 힘들게 키운 아들이 이제 집을 떠나 본격적으로 공생활을 시작합니다. 들리는 소문은 좋지 않습니다. 위험한 인물로 찍혀 감시와 사찰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는 당시 지배계급과 기득권들에게 대립하고, 날을 세우면서 가난한 자들과 약자들과 함께 하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결국 다 장성한 아들이 국가반역죄, 국가 전복 내란죄라는 죄명으로 사형수가 되었지만 힘없고 빽없는 촌로의 어머니는 아들을 구할 능력이 없습니다. 국가 반란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앞장서서 구명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제자들마저 다 도망간 상태입니다. 누구하나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시무시한 반란을 꿈꾼 사형수의 어머니 마리아…  빨갱이의 어머니… 친척들마저 거리를 둡니다. 결국 죽어가는 아들을 지켜만 봐야했던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셨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미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마리아는 차갑게 식어버린 아들의 시신을 품에 안고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가슴에 묻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 죽음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 죽음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픔과 절망을 딛고 슬픔을 뛰어넘어 제자들과 함께 아들의 뜻,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이 살아있고, 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평등한 세상, 하느님 나라를 선포합니다. 이제 또 다른 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아들이 다 이루지 못한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이제 마리아는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마리아의 부활입니다.

 

 

우리 시대의 성모님을 알아보고 만나면 더 의미 있는 성모성월

 

실제로 주변에서 굴곡의 세월에서 많은 어려움을 딛고 살았던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아들에게 죽음을 구걸하지 말고 당당히 죽으라는 편지와 수의를 보냈던 안중근 도마의 어머니 조마리아, 70년대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의 울부짖음과 진상을 밝히기 위해 수 십 년을 싸워 오신 분들, 또한 민주화 과정에서 젊은 자식을 잃고 자식이 다 이루지 못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피눈물 나는 세월을 싸우며 살아오신 민가협 부모들, 최근엔 세월호 유가족들의 모습에서 우리 시대의 성모님을 떠 올려 봅니다. 최근 위험의 외주화로 죽음으로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인 태안 서부발전소 고 김용군 노동자의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다시는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기 아들처럼 죽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비롯해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명 ‘김용균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우리 시대의 부모님들은 자식을 잃고 통곡했지만,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더 이상 이 같은 죽음이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간답게, 생명답게 살 수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존중받는 평등과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싸우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자식을 얻고, 더 넓은 세상을 위해 마음 쓰시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힘을 얻습니다. 그분들은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이 되셨습니다. 아픔을 딛고 다른 이들에게 힘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존재로 변하신 분을 ‘복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모 마리아도 그런 분이십니다.

 

오월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우리 시대의 성모님을 알아보려하고 만나 뵐 수 있으면 더 의미 있는 성모성월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5월호, 이영우 토마스 신부(봉천5동(선교)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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