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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19년 9월 18일 (수)연중 제24주간 수요일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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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사ㅣ 준성사
[견진성사]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견진성사

29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3-04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18) 견진성사 ①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와 함께 견진성사는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이며, 이 입교 성사들의 단일성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견진성사가 세례성사의 은총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신자들에게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견진성사로 신자들은 더욱 완전히 교회에 결합되며 성령의 특별한 힘을 받아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고 옹호하여야 할 더 무거운 의무를 집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85항)

 

세례성사가 하느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성사라고 한다면, 견진성사는 “신앙 안에서 성숙해지는” 성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견진성사를 통해서 성령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신자들은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사명과 책임감을 깊이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견진성사에서 주어지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의 사명과 성령의 은총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시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였고, 자신들이 받은 성령의 은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받들어, 새 신자들에게 안수하여 세례의 은총을 완성시키는 성령의 선물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리하여 히브리서에서 그리스도교 입문의 초보적인 교육 주제들 가운데 세례와 안수의 교리도 언급하게 된 것입니다.(참조. 히브리서 6,2) 가톨릭 전승은 안수를 견진성사의 기원으로 당연히 인정하였으며, 이 견진으로써 성령 강림의 은총이 교회 안에 영속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88항)

 

이처럼, 성령의 은총은 세례성사를 통해 ‘새 사람’이 된 하느님의 자녀들을 살리고 성장시키는 힘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늘’을 허락하셨고, 성실한 신앙인으로서 그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 또한 함께 허락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13) [2019년 2월 3일 연중 제4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왕태언 요셉 신부(백석동 협력 사목)]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19) 견진성사 ②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1요한 2,27)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십시오.”(Accipe signaculum Doni Spiritus Sancti)

 

이는 견진성사 때에 주교님께서 견진성사를 청하는 신자들의 이마에 축성성유를 발라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거룩한 기름, 즉 성유는 부활을 앞둔 성주간 목요일 성유축성 미사에서 주교님이 축성하신 ‘크리스마 성유’입니다.

 

성유를 바르는 것은 견진성사 예식에서 가장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합니다. “성서와 고대 사회의 상징 체계에서 기름부음은 풍부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름은 풍요와 기쁨의 표징입니다. 기름은 정화시키고 유연하게 하며, 깨지고 상처난 곳을 낫게 하므로 치유를 상징하고, 아름다움과 건강과 힘이 넘치게 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93항)

 

이러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기름부음’은 성사 안에서 “영적 인호(印號)”로서, 성령의 이끄심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원의식을 깨닫는 은총을 누리게 되었음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서 성령으로 기름 부으신 분’(사도10,38)이심을 기억한다면, 견진성사에서의 도유 즉, ‘기름부음’은 그리스도인의 신원의식을 넘어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닫게 해 줍니다. 따라서 “(…) 세례 직후와 견진과 서품 때에 축성 성유를 바르는 것은 축성되었다는 표징입니다. 그리스도인, 곧 견진의 도유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과, 그분이 가득히 지니신 성령의 충만에 더 깊이 참여함으로써, 삶 전체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94항)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2코린 1,21~22)

 

견진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은총은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의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은총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깨달아, 자신의 구원이 하느님께 달려있음을 알게 되고,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구원의 보증을 드러내 보이셨음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견진의 인호는 신자들이 세례성사로 받은 보편 사제직을 완전하게 합니다. 그래서 견진성사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공적으로, 마치 직분으로 하듯이, 고백할 힘을 받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305항) [2019년 2월 10일 연중 제5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왕태언 요셉 신부(백석동 협력 사목)]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20) 견진성사 ③ “그때에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사도 8,17)

 

 

안수(按手)는 어떤 물건이나 사람의 머리 위에 손을 들고 행하는 전례적인 행위를 의미합니다. 가톨릭교회의 전례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동작 중 하나이며, 모든 전례 동작 중에서도 특별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 안수 동작은 성경의 여러 부분들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구약성경에서 창세기의 족장들이 자녀들에게 손을 얹어 복을 빌어주는 의미로 등장합니다.(창세 48,14) 복을 빌어주는 의미 외에도 후계자를 임명할 때에도 손을 얹는 방법이 사용되는데, 모세가 자신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임명할 때의 모습이 대표적입니다.(민수 27,18) 또한, 탈출기 29장 10절에서처럼 봉헌 제물로 바칠 동물에게 안수함으로써 제물을 봉헌하는 이와 제물을 동일시하여, 봉헌자를 하느님께 바침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참조: 한국가톨릭대사전 8권 “안수”)

 

이러한 구약의 전통들은 신약에 이르러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복음서의 여러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손을 얹는 행위를 통해서 병을 낫게도 하시고, 축복을 전하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제자들에게도 당신의 권한을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 15~18)

 

따라서, 견진성사에 있어서 주교님의 안수는 사도들의 후계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고, 그 안수를 통해 성령의 은총을 전달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진성사 예식에서 주교님께서는 견진성사를 받는 이들의 이마에 축성성유(크리스마 성유)를 바르시며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십시오.’라고 말씀하신 후에, 안수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선물이 성령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심을 신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물론, 사제들도 하느님의 축복을 전하는 의미의 안수를 할 수 있지만, 견진성사 예식에서만큼은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님의 안수와 도유가 “견진 받는 사람들을 교회와 교회의 사도적 기원과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명에 더욱 긴밀히 결합시키는 것이 견진성사의 효과임을 잘 나타내줍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313항) [2019년 2월 17일 연중 제6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왕태언 요셉 신부(백석동 협력 사목)]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21) 견진성사 ④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이사 11,2)

 

 

견진성사를 ‘어른이 되는 성사’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례성사를 준비하는 예비신자들의 대모 혹은 대부가 되기 위해서는 견진성사를 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이는 세상에서 복음을 전해야 할 신앙인으로서의 사명과 책임감을 깊이 깨달은 이들이 교회의 ‘성인(成人)’으로서 합당하게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직무수행을 온전히 ‘의무’로서만 생각한다면 인간적인 나약함과 한계 앞에서 무너지기 쉬울 뿐더러, 신앙생활을 큰 부담으로만 느낄 수도 있게 됩니다.

 

견진성사는 그러한 신앙인으로서의 사명뿐만 아니라, 그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필요한 은총 또한 함께 주어지는 성사입니다. 인간적인 능력만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도우심 곧,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사명을 수행할 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일곱 가지 은사를 “성령칠은”이라고 하는데, 그 유래는 이사야서 11장 2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성령의 은사를 일곱이라는 숫자로 국한한 것은, ‘일곱’이라는 숫자가 성경 안에서 지니는 ‘충만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간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충만한 은총을 드러내기 위해 일곱 가지로 정리된 것입니다.

 

‘슬기’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올바로 판단하고 실천하도록 도와주며, ‘통달’은 성경의 내용이나 교회의 교리들을 깊이 통찰하여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의견’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일을 함에 있어서 성령의 뜻을 구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지식’은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심으신 질서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용기’는 유혹과 어려움을 극복하여 굳은 마음으로 하느님을 따르는 여정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효경’은 스스로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며, 끝으로 ‘경외심’은 자신의 죄와 잘못이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임을 깨닫도록 하여 죄를 피하고, 죄로부터 멀어지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따라서, 복된 신앙생활이란 교만함을 버리고, 신앙인으로서 살아갈 힘과 은총을 주시는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여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완성되어 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가 자신을 버리면 버릴수록 우리는 더욱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게 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736항) [2019년 2월 24일 연중 제7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왕태언 요셉 신부(신앙교육원 부원장)]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22) 견진성사 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갈라 5,25)

 

 

세례성사를 받은 모든 사람은 견진성사를 받아야 합니다.

 

“아직 견진성사를 받지 않은 영세자들은 모두 이 성사를 받을 수 있으며, 받아야만 합니다.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와 성체성사는 일체를 이루므로 신자들은 적절한 시기에 이 성사를 받을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견진성사와 성체성사 없이도 세례성사는 유효하며 효과가 있지만, 그리스도교 입문은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306항)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들은 견진성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견진성사를 받지 않아도 신앙생활을 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견진성사를 받지 않는 분들이 제법 많습니다. 세례성사를 받을 때에도 몇 달을 교리 공부를 하느라 고생했는데, 견진성사를 받기 위해 그 수고로움을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서 견진성사를 미루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이들은 또한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에 걸맞게 성장해야 하고, 성숙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따라서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들은 성체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고 성숙하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그 성사들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견진성사는 언제 받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까?”

 

세례성사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견진성사를 받는 것이 괜찮은지, 또는 청소년 시기에 받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성인이 된 다음에 받는 것이 좋은 것인지 등등 견진성사에 ‘걸 맞는 시기’에 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신자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교회법 891조에서는 “견진성사는 분별력을 가질 나이쯤의 신자들에게 수여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분별력’에 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나이에 대해서 섣불리 다른 이의 ‘분별력’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판단은 교회가 하는 것이지, 어른들이 청소년들에 대해서 혹은 기존 신자들이 새 신자들에 대해서 할 수 있는 판단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신앙을 돌보며 견진성사의 필요성에 대해 숙고하면서 견진성사에 대한 의지를 키우고 간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숙고를 통하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스스로 성령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며,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올바로 찾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갈라 5,25) [2019년 3월 3일 연중 제8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왕태언 요셉 신부(신앙교육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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