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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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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의 삶: 하느님 아버지 -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144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6-16

[영성의 삶] 하느님 아버지 -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영성생활은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입니다. 아주 단순하고 쉬운 의미지만 실제적인 삶 안에서는 막막함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이 너무나 큰 분이시기에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어떻게 함께해야 할지 분명하게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분을 막연히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영성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잘 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사고의 한계를 지닌 나약한 인간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생각에도 많은 왜곡된 개념과 사고의 한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 잘못된 신관(神觀)이 수도 없이 등장했고, 사이비 종교는 지금도 세상에 널리 퍼지고 있는 중입니다. 자신들의 생각에 맞는 신을 만들어 믿는 것입니다. 올바른 정통 종교를 가진 신앙인들도 편협하고 왜곡된 신앙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수많은 이단들이 생겨났고, 교리의 왜곡된 이해로 잘못된 신심에 빠진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듯 하느님을 좁은 인간의 사고로 완전히 이해하려 한다면 잘못된 신앙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모른다’는 생각이 더 주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합니다. 지식 이전에 하느님을 마주하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을 어떤 분으로 마주해야 하는지, 그분 앞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지 등이 우선적으로 자리잡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명확히 정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얻게 되는 지식은 주님과의 관계를 더 깊게, 더 넓게 만들어 갑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어떠한 장애물도 없는 순수한 관계여야 합니다. 우리는 의외로 공기청정기의 필터처럼 여러 필터를 끼고 주님을 만나곤 합니다. 그 필터에는 하느님에 관한 지식도 포함되고, 자신의 신분도 포함됩니다. 지식이나 신분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인간 사고의 한계 때문에 좋은 지식과 신분도 왜곡된 필터의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처음의 순수한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는 것이 그분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가장 먼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는 이 부분을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리곤 하지만 기도를 시작할 때의 마음, 하느님을 향한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시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어떠한 가식도 꾸밈도 없는 순수한 관계입니다.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부모에게는 그저 자식일 뿐입니다. 교황님도 부모에게는 단지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어떠한 이익이나 목적 없이 형성된 가장 순수한 관계이면서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아 가식적이지 않는 관계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께 이처럼 진솔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가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아버지로 받아들이게 될 때 그분과의 관계는 진솔해지고 순수해져 더욱 사랑하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 이유로 부모와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은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사랑하는 아버지 상을 생각하며 하느님을 바라보면 됩니다. 또한 가장 순수하고 진솔하게 다가갈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생각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장애물도 없이 순수하게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마음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고, 세상 만물의 주인이시며, 모든 권한을 쥐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분께서 당신 아들을 하찮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셨고, 우리에게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당신을 친구로 부르라고까지 하셨습니다.(요한 15,15) 이것은 우리와 깊은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시기 위한 그분 마음의 표현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더 사랑하기 위해서 그 어떤 겉치레도 다 벗어버리고 있는 그대로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영성생활은 이렇게 주님을 마주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진정 하느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친구로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는 것, 이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을 그분께 드러낼 수 있고, 어떠한 가식도 벗어 버릴 수 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이러한 순수한 마음에서부터 싹트게 됩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영성생활이 됩니다.

 

[월간빛, 2020년 6월호, 서보효 라이문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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