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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9일 (금)부활 제3주간 금요일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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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온유하고 겸손하게 응대하는 것이 곧 거룩함입니다

144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6-08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온유하고 겸손하게 응대하는 것이 곧 거룩함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라는 격리의 시간(a time of quarantine)이 꽤 길었습니다. 다시 성전에 모여 미사를 조심스럽게 거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4월24일에 쓰고 있습니다) 이 감염병의 파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여전히 예측이 어렵습니다. 그저 우리는 신앙생활이 예전의 모습으로 회복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성당에 가서 형제자매들과 친교를 나누고, 공동체와 함께 하는 감사의 미사를 매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뿐입니다. 그런데 감염병을 물리치고 사회의 모든 것이 정상화되면 우리의 신앙생활도 예전처럼 그렇게 정상화(?) 될 것인지 살짝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 삶의 방식이 많이 바뀔 것이라고 학자들은 예견하고 있습니다. 교황청에서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읽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사회의 모습과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지, 그리고 그 변화가 신앙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연구한다고 합니다. 교회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그저 예전의 모습과 방식을 고수하기만 한다면, 아마도 성당 안에서의 신앙생활은 위축되고 축소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위험이 있는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당신의 교황직 수행에서 식별(discernment)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모든 신앙인은 식별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교회는 식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자주 강조합니다. 식별한다는 것은 시대의 징표를 읽고, 교회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화와 선교를 지향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과 오늘의 한국 교회 역시 식별을 필요로 합니다. 오늘의 현실과 징표들을 섬세하게 읽어내야 합니다. 우리들의 지난 신앙생활의 모습과 한국 사회 안에서의 교회의 지난 모습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 신앙생활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 교회의 모습과 성당 안에서의 신앙생활이 어떤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새롭게 상상하고 새로운 전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일본에서 선교하고 있는 어느 메리놀 신부님은 한 칼럼에서 흥미 있는 지적을 합니다. 격리의 시간 동안 본당 미사와 모임이 취소되는, 신앙의 공백(?)을 경험한 신자들이 본당 미사가 재개되어 다시 돌아올 때, 그들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신자들의 모습이 코로나 사태 이전의 본당 생활의 성적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의 본당 미사와 본당 생활에서 진정한 신앙과 공동체 의식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면, 이 격리의 기간 동안의 공백이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울한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코로나 이전 시대에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은 격리의 시간 동안 본당에 나오지 않는 것이 습관적으로 익숙해져서,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본당으로 돌아오지 않을 확률이 많다는 뜻입니다.

 

본당 안에서의 신앙생활과 본당 밖에서의 신앙생활이 언제나 연결되어 있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참 신앙은 본당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참 신앙은 언제나 삶의 모든 자리에서 표현되는 태도로서 드러납니다. 사실, 신앙은 신념과 확신의 문제라기보다는 삶의 태도의 문제입니다. 신앙은 어떤 신념과 확신을 가지는 것이라기보다는, 또 어떤 종교적 관행을 습관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무엇보다 삶의 모든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태도는 온유하고 겸손한 태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과 태도가 거룩함의 길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은 타인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현대인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이기적 자기중심주의입니다. 현대인은 자기표현을 선호하고 자기주장이 강합니다. 경쟁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 열중하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자기중심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타인마저도 자신의 관점과 기준에서 판단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생각과 관습, 심지어 말과 옷차림으로 다른 이들을 끊임없이 판단합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71항)

 

솔직히 고백하면, 성직자로 살아가면서 가장 범하기 쉬운 잘못이 식별과 판단을 잘 구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학생 시절부터 저희들은 식별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고 또 스스로 사용합니다. 우리 성직자들은 식별이라는 이름으로 자꾸만 타인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식별은 복음과 신앙의 관점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는 일이고, 공동체와 자기 자신이 하느님 뜻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하고 성찰하는 일입니다. 식별은 타인을 판단하고 규정하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개념입니다. 식별의 행위 안에는 분석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행위가 포함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적 맥락에서 식별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과 공동체를 성찰하는 것입니다. 개별적 타자를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타인을 규정하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타인을 제멋대로 규정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 뿐입니다. 남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신앙인이 아닙니다.

 

타인에게 쉽게 화를 내고 타인의 허물에 대해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 아닙니다. 쓸모없는 불평에 힘을 낭비하고 우월감에 빠지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 아닙니다.(72항) 자기 자신과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어떤 사람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사람은 참 신앙인이 아닙니다. 참 신앙인은,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사람은 온유하고 겸손한 태도로 타인을 대하는 사람입니다. 거룩함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서 드러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자비의 희년’에 그토록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신앙은 무엇보다 사랑과 자비의 태도로 드러난다는 사실 말입니다.

 

 

온유는 나약함이 아니라 내적 청빈이며, 타인을 대하는 신앙인의 거룩한 방식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온유함을 자꾸만 나약함과 어리석음의 모습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74항) 단호하지 못한 유약함, 자기주장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온유함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앙적 의미에서 온유함은 인간적 힘과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만 신뢰와 희망을 두는 영적 겸손함과 가난함의 태도입니다.(74항) 온유하다는 것이 기질적으로 부드럽고 성격적으로 유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타고난 성격과 기질이 괄괄하고 강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온유는 타고난 성격과 기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신앙적인 맥락에서 온유는 기질과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 겸손함으로 드러나는 태도입니다.

 

온유는 성격과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응대하는 신앙인의 방식의 문제입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 무엇을 대하든 항상 온유한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선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우리의 고유한 신앙과 확신을 수호해야 할 때도 우리는 ‘온유하게’ 해야만 합니다.”(73항) 온유는 삶의 모든 자리에서 신앙인이 지녀야 할 태도와 방식입니다. 우리는 온유함을 통해 거룩함으로 나아갑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6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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