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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69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6-08

[레지오 영성]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매년 신학교 학사일정의 첫 학기에 저는 신학생들에게 ‘은총론’을 가르칩니다. 사실 ‘가르친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은총이라는 주제로 하느님의 이야기(theo-logia)를 나누고자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리고 첫 수업 때마다 수업을 시작하며, 학생들에게 ‘은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어봅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 학생들은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입안에서는 저마다의 생각들을 웅얼거리며 때를 기다립니다.

 

그때 한 학생이 “은총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라고 운을 뗍니다. 좋은 대답입니다. 이 대답은 우리 가톨릭 신자보다 표현력이 뛰어난 개신교 신자들이 자주 찾는 은총과 유사해 보입니다. 그들은 ‘은총 많이 받으세요!’, ‘은총 많이 받으셨어요? 저는 은총을 많이 받았어요!’라며 선물과 같은 은총을 주고받는 일에 능숙하며, 때로는 받은 은총이 행복해 어깨를 으스대는 것을 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내 한 학생이 다소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묻습니다. “신부님! ‘성소의 길은 은총’이라고들 말하는데, 저는 그 선물을 받고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선물이면 항상 기쁘고 행복해야 할 텐데, 그러면 저의 성소는 은총이 아닌 것입니까?” 갑작스러운 성소 상담과 같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학생의 질문은 ‘은총론’이라는 한 학문을 이해하기 위한 매우 날카로운 단초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경당 천장에는 미켈란젤로(1475-1564)의 ‘천지창조’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아담이 뻗은 손가락과 하느님이 뻗은 손가락이 닿을 듯 말 듯 서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이자 종착점은 그 손가락이 맞닿는 순간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으로 창조되어서 ‘하느님과 같이’(神化)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인 인간은 진정으로 하느님과 완전히 결합될 수 있는 천상의 순간을 갈망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아담이 서로 내민 손가락의 사이를 미세하게 떼어 놓았던 미켈란젤로. 그의 의도는 그 사이에 담고 싶은 것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이 뻗은 손과 인간이 뻗은 손. 그리고 그 사이의 공간.

 

우리는 자주 성모송을 바치며 외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성모님은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은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그리도 가까이 계셨으며, 하느님을 잉태함으로도 모자라 그분의 구원 사업의 태(胎)를 여신 분이십니다. 그 선물은 차고 넘쳤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는 성모님께서 하느님께로부터 화려한 선물만을 받으셨기에 기도할 때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라고 외칠까요?

 

우리는 성모님의 생애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태에 지니셨던 하느님은 얼마나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이에 대해 시메온은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루카 22,35 참조)이라고 그 아픔을 표현합니다. 그리하여 성모님은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으셨을 때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도, 그리고 골고타 언덕에서도 그저 미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어찌 행복만을 가져다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어찌 기뻐할 만큼의 가득한 선물인 은총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뻗으십니다. 구세주의 잉태를 알린 소식에서부터 하느님의 손가락은 마리아를 향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 소식에 응답했습니다. 자신의 손가락을 하느님의 손가락과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닿지 않은 그 손가락 사이에서는 둘을 잇는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그림 안에 놓여있던 손가락 사이의 공간에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리하십니다.

 

 

은총은 하느님이 뻗은 손과 내가 뻗은 손이 마주한 채 맺고 있는 관계

 

교회는 은총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호의이며 거저 주시는 도움”(가톨릭교회교리서 1996항)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은총은 “하느님의 생명에 대한 참여”(1997항)라고 덧붙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손을 거저 내밀어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그 손을 향해 우리의 손을 뻗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뻗은 손을 잘 찾을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그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행복하고 화려한 선물만은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영혼이 칼에 꿰찔리듯 아플 것이며, 때로는 나의 것을 내려놓고 성소(聖召)의 길을 나서는 데에 따르는 인내와 고행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무를 때, 그 길은 아름답고 은총이 가득하기에 기뻐할 수 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총은 단순히 우리가 소유하고자 하는 상품과 같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뻗은 손과 내가 뻗은 손이 닿을 듯 말 듯 마주한 채로 맺고 있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선물만을 바라는 인간적인 욕심으로 가득 찬 신앙이 아닌, 그리고 그 은총을 받지 못했다고 좌절하는 신앙도 아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하신 길을 따라 나서보는, 하느님과 가까이 관계 맺는 은총의 신앙생활 안에서 살아가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며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를 외칠 때마다, 성모님께서도 우리를 향해 ‘너희에게도 은총이 가득하니 기뻐하여라!’라고 함께 기뻐하실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6월호, 명형진 시몬 신부(인천교구 선교사목부 부국장, 인천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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