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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하느님의 종 133위 약전: 김윤심 베드로 알칸타라 · 김성희 암브로시오 · 정치도 요한

189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2-22

하느님의 종 ‘이벽 세례자 요한과 동료 132위’ 약전


김윤심 베드로 알칸타라 · 김성희 암브로시오 · 정치도 요한

 

 

김윤심(베드로 알칸타라, 1801~1868)

 

김윤심은 1841년 서울 포도청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한 김성우(안토니오) 성인의 동생이다. 그는 1801년 경기도 광주 구산(현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에서 김영춘(바오로)과 청주 한씨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엄 체칠리아와 혼인해 아들 경희와 딸 막달레나를 얻었다. 1830년 무렵에 입교한 그는 형제들에게 교리를 전하고, 이웃과 친척들과 함께 구산마을을 교우촌으로 만들었다.

 

1839년 기해박해 초기에 구산의 김씨 형제들은 박해자들에게 고발돼 체포됐으나 곧 석방됐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서울 포교들이 다시 구산으로 들이닥쳤고, 이때 김윤심은 형 김덕심(아우구스티노)과 사촌 한 명과 함께 잡혀 광주 남한산성으로 압송됐다. 그리고 잠시 피신해 있던 맏형 김성우와 가족들이 함께 체포돼 서울 포도청으로 압송됐다.

 

남한산성으로 끌려간 김윤심은 형과 사촌과 함께 배교를 강요받으며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들은 남한산성 감옥에 갇혀 1858년 10월 18일 국왕의 특사로 석방될 때까지 19년 5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석방된 김윤심은 구산 마을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다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1868년 친척들과 함께 다시 체포돼 광주 남한산성에 투옥됐으며 그해 3월 8일 67세 나이로 순교했다. 순교 뒤 그의 시신은 아들이 거두어 고향인 구산에 안장했다.

 

 

김성희(암브로시오, 1815~1868)

 

김성희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돼 1841년에 순교한 김성우(안토니오) 성인의 외아들로 경기도 구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장성한 뒤 이범회의 딸과 혼인했다. 그러나 후사가 없어 숙부 김윤심의 손자 김교익(토마스)를 양자로 삼아 대를 이었다.

 

김성희는 20세 무렵에 부모와 함께 중국인 여항덕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아버지가 순교하자 시신을 수습해 구산에 안장했고, 회장 소임을 맡아 매부 홍희만에게 교리를 전하는 등 이웃 전교에 노력했다. 또한, 약국을 경영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등 자선을 베풀었다.

 

구산 마을이 다시 박해자의 표적이 된 것은 1868년 무진박해 때였다. 이때 김성희는 숙부 김윤심과 함께 체포돼 광주 남한산성에 투옥됐다. 그는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당했고, 친척들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1868년 3월 8일 남한산성 형장에서 순교했다. 그의 나이 53세였다. 그의 시신은 양자 김교익이 밤에 몰래 거두어 구산에 안장했다.

 

 

정치도(요한, 1842~1868)

 

정치도는 충청도 내포에서 정 요셉과 김 아가타의 외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전주에서 순교한 정태봉(바오로)이 그의 종조부이다.

 

그는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서 틈틈이 교리를 가르쳐 많은 이들을 입교시켰다. 그러다가 1866년 초 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부모와 숙부 정분옥(베드로)과 함께 처가가 있는 송도(현 개성) 두문동 교우촌으로 이주했다. 그의 가족이 두문동에 정착한 지 3개월이 되지 않았을 때 병인박해가 일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송도 포교들이 교우촌으로 들이닥쳤으나 다행히 아무도 잡히지 않고 모두 산속으로 피신했다.

 

이후 1868년 박해가 가열되자 송도 포교들이 다시 교우촌을 찾아와 “정치도가 누구냐”며 지목해 색출했다. 이 말은 들은 그는 “내가 정치도요” 하며 나섰고, 어린 자식이 딸려 있어 아내 빅토리아만 빼고 전 가족이 체포됐다.

 

정치도 가족들은 혹독한 고문에도 신앙을 증거해 결국 교수형 판결을 받았다. 이에 정치도는 그의 부모 정 요셉과 김 아가타, 숙부 정 베드로, 그리고 교우 3명과 함께 1868년 4월 24일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2월 25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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