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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13: 수도성소 형태에 관한 고민

131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10-01

[세상과 소통한 침묵의 관상가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13) 수도성소 형태에 관한 고민


“완벽한 장소는 없다! 다만 완벽한 고독이 있을 뿐이다!”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중반에 토마스 머튼은 수도성소의 형태에 관해 고민하였다. 위대한 고독을 향한 간절한 열망 때문에 그는 독수도승의 삶을 살아가는 카르투시오회나 카말돌리회 수도승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저는 진정한 고독과 진정한 관상적 삶의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실제로 그는 카말돌리 수도회로 옮겨 가려고 적극적인 시도를 하였지만, 그의 요구는 돔 가브리엘 소르타이스(Dom Gabriel Sortais) 총아빠스의 결정으로 거절되었다. 이미 겟세마니 수도원에서 종신서원을 한 머튼은 트라피스트 수도승으로 남아 있어야만 했다.

 

 

위대한 고독을 향한 간절한 열망

 

그는 ‘완벽한 수도원’을 찾는 것을 중단했지만 ‘완벽한 고독’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했다. “고독을 위한 완벽한 장소는 없다. 다만 완벽한 고독이 있을 뿐이다.” 더 깊은 고독과 관련된 머튼의 관점은 날이 갈수록 더 깊어져 갔다.

 

1950년대 후반 고독에 대한 머튼의 생각은 그의 신비로운 체험으로 통합되었고, 이것은 1960년대에 그가 쓴 글들에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논쟁점들(Disputed Questions)」이라는 저서에서 “참된 고독은 단순히 분리됨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치를 향할 따름입니다. 참된 고독은 사람들과의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관계에서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깊이 일치된 이는 더 이상 주변적 관심사들에 도취되지 않기에 모든 것이 더 깊어집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머튼에게 루이빌 도시 거리의 모퉁이에서, 주변의 일상적인 낯선 행인들 모두에게서 강한 영적인 연결점을 깨닫게 해 준 1958년의 유명한 ‘루이빌 깨달음’(Louisville Epiphany)은 그에게 봉쇄 구역의 담장을 넘어 새로운 전망과 고독과 세속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루이빌 깨달음’에 대해서는 하느님 신비체험에 대해 다룰 때보다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이 신비로운 체험이 그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었고, 그는 인간 세상을 향한 새로운 성소와 함께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 체험에 의해 1960년대에 이르러 그의 영성은 더욱 무르익었다. 그는 이때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아마 저는 (지금) 영적인 삶의 전환점에 있습니다. 어쩌면 두려움들을 잊어 가고 성숙의 지점과 의심의 해결을 향해 서서히 가고 있는 듯합니다.”

 

 

“저의 수도원은 저의 집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의 수도성소 관점 역시 변화되었다. “저의 수도성소가 무엇이든지 간에 결코 의심을 갖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면에서 어디에나 있습니다. 저의 수도원은 저의 집이 아닙니다.” 그의 수도생활에 관한 새로운 관점은 더 황량한 환경과 더 깊은 고독을 향한 갈망으로 자양분을 얻었으며, 그의 삶의 마지막 시기에 영적인 방향을 더 굳건하게 만들었다.

 

요컨대, 머튼의 영적인 사춘기와 같은 기간인 1940년대에 그는 지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그리스도교의 관상적인 삶의 전통적인 견해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다면, 1950년대는 그가 자신의 저서 요나의 표징에서 표현한 것처럼, ‘고래의 뱃속’과 같은 시기였다. 역설적으로 이원론적인 태도를 극복하기 위한 분투와 더 깊은 고독을 향한 그의 열망은 ‘자기-수용’과 ‘자기-변형’을 이끌었다. 그의 종교적인 체험은 통합된 관상과 활동을 깨닫게 도왔으며, 세속과 인류를 향해 마음과 가슴을 열게 했다. 이 시기의 마지막에 그는 참된 자아를 깨닫게 하고, 하느님과 일치하도록 해 준 깊은 고독에 도달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9월 29일,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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