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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9일 (금)부활 제3주간 금요일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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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교황청 내사원 내적 법정의 중요성과 성사의 봉인의 불가침성에 관한 공지

96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9-08-07

교황청 내사원

내적 법정의 중요성과 성사의 봉인의 불가침성에 관한 공지

 

 

1)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짓과 말씀으로 지고하고 불가침한 인간 존엄을 밝혀 주셨다. 또한 친히 당신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죄와 죽음의 어둠을 물리치시어 타락한 인류를 회복시켜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당신께서 아버지와 이루시는 관계를 분명히 드러내 주셨다. 또한 성령을 부어 주시어, 당신의 참된 몸이자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고, 교회가 예언자이고 왕이며 사제이신 당신의 고유한 권한에 동참하게 해 주셨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이 세상에 현존하시고 당신 사명을 계속 수행해 나가신다. 교회가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진리를 선포하고, 그들을 예수님의 찬란한 빛으로 이끌어, 그들의 삶이 참으로 감화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이 시대는 참으로 신음하고 있다. 기술 과학의 지속적 진보에 부합하는 적절한 윤리적 사회적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도리어 정작 문화적 도덕적으로 ‘퇴보’하고 있다. 그래서 문화와 도덕은 하느님에 대하여 적대적이지는 않더라도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모든 분야와 모든 단계에서 인간 실존과 더불어 교회의 삶 자체가 나아가야 하는 본질적인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존중할 수 있는 역량도 잃어 가고 있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윤리 교육, 인간의 내적 성숙을 통한 진보와 상응하지 않는다면, 이는 결코 진보가 아니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위협일 따름이다.”2) 대인 소통과 대중 매체의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도, 진리에 대한 사랑과 이를 추구할 임무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 앞에서 지녀야 할 책임 의식이 아니라, ‘기술적 가능성들’만 무한히 증대되고 있다. 윤리와 수단들 사이의 불균형이 우려된다. 커뮤니케이션의 과도한 증진은 진리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결국 하느님과 인간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스르고 교회와 그 역사적 실제적 현존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더 많은 정보에 대한 ‘열망’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고 있지만, 이러한 정보들이 참으로 신뢰할 만하고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거의 상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현실을 ‘커뮤니케이션 세계’로 ‘대체’하고자 하는 듯하다. 커뮤니케이션 세계가 현실 인식에 조건이 될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이해를 조작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병적인 불안 증세를 띨 수 있고, 안타깝지만 교회 구조 자체도 세상 안에서 살아가고 이따금 세상의 기준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만큼 이러한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신자들 사이에서도, 분명히 교회의 신인적(神人的) 본성에 알맞지 않은 목적과 목표를 지닌 특정 여론의 감성에 맞춘 ‘뉴스들’을 검색하느라, 아니면 무성한 ‘추문들’만 좇느라, 귀한 힘을 다 허비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 모든 것이 모든 피조물에 대한 복음 선포와 선교 열의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때로는 가장 높은 교계 서열에 이르기까지 성직자 대열의 그 누구도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여론이 최종 법원인 것 마냥 여론의 판단에 호소하면서, 더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과 관련해서도 온갖 정보들이 난무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빈번하다. 이러한 정보들은 불가피하게 교회 생활을 침해하고, 경솔한 판단으로 이끌거나 적어도 이를 조장하며, 자기의 사생활을 수호할 각 사람의 권리뿐만 아니라 타인이 누리는 좋은 평판을 불법적으로 또 만회할 수 없을 만큼 훼손한다(교회법 제220조 참조). 이러한 맥락에서, 바오로 사도가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한 권고가 특별히 시의적절하게 울려 퍼진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 그러나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한다면, 서로가 파멸할 터이니 조심하십시오”(갈라 5,13-15).

 

이러한 상황에서, 가톨릭 교회에 대한 어떤 우려스러운 ‘부정적 편견’이 확인되고 있는 듯하다. 가톨릭 교회가 문화적 존재로 제시되고 있고, 가톨릭 교회의 삶은 사회적으로 재인식되고 있다. 곧, 한편으로는 교계 내부에서 확인될 수 있는 긴장에 비추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성직자가 저지른 끔찍한 학대에 관한 최근의 추문들에서 출발하여, 가톨릭 교회에 대한 사회적 재인식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편견은 교회의 참본성과 그 진정한 역사를 망각한 것이고, 교회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에 미치는 그 실질적이고 은혜로운 영향력을 간과한 것이다. 이러한 편견은 때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교회 자신이 교회의 고유한 법적 질서를, 교회가 살아가고 있는 그 나라 국가 질서에 일치시켜야 한다는 부당한 ‘주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청렴과 정직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상황에 직면하여, 내사원은 본 ‘공지’를 통하여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로써 오늘날 여론과 때로는 국법 질서 자체와 점점 더 동떨어져 보이는 교회의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고유 개념들이 지니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 개념들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들로는 ‘성사의 봉인’, ‘성사 밖의 내적 법정에 내재된 비밀 보장’, ‘직업상의 비밀’, ‘다른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저마다 지니는 고유한 기준들과 한계들’이 있다.

 


1. 성사의 봉인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화해의 성사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성사의 봉인의 불가결성과 처분불가성을 강조하고자 하셨다. “화해 자체는, 교회의 지혜가 언제나 그 고유한 도덕적 법적 힘을 다하여 성사의 봉인으로 수호하는 선입니다. 현대의 사고방식으로 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사의 봉인은 성사의 거룩함을 위하여 그리고 참회자의 양심의 자유를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것입니다. 참회자는 어떠한 순간에도, 하느님의 은총에 열려 있는 자신의 양심과 사제의 필수적인 중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성사적 대화가 고해의 비밀로 남으리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성사의 봉인은 필요불가결하고, 인간적인 어떠한 힘도 이에 대한 관할권을 지니지 않으며 이를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3)

 

그 무엇도 침해할 수 없는 고해성사 비밀은, 계시된 하느님 법에서 직접 나오고, 성사의 본질 자체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리하여 교회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국가 영역에서도, 그 어떠한 예외가 허용되지 않는다. 화해 성사의 거행 안에는, 실제로 그리스도교와 교회의 본질 자체가 오롯이 담겨 있다, 이 본질은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하여 사람이 되셨고, 또한 이 구원 사업에 교회가 그리고 교회 안에서 당신께서 선택하시고 부르시어 당신 교역자로 세우신 이들이 ‘필요한 도구’로 동참하게 정하셨다는 것이다.

 

이 진리를 표명하고자, 교회는 성사들의 거행 안에서 사제들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in persona Christi capitis) 행동한다고 언제나 가르쳐 왔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나’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나’로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 안으로 이끌어 들이시어’ 우리를 하나 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나’와 하나 됩니다. …… 그리스도의 ‘나’와 이루는 바로 이러한 일치는 축성의 말씀으로 실현됩니다. 또한 -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죄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 ‘나는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라는 말을 할 때에도,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로지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나’입니다.”4)

 

따라서 겸손하게 자기 죄를 고백하러 사제를 찾아가는 모든 참회자는 저마다 이처럼 위대한 강생의 신비, 교회와 직무 사제직의 초자연적 본질을 증언하는 것이다. 직무 사제직을 통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만나러 오시고 그들의 삶을 성사적으로 - 곧 실제로 - 어루만지시며 그들을 구원하신다. 이러한 까닭에 고해 사제가, 필요하다면 피를 흘리면서까지(usque ad sanguinis effusionem), 성사의 봉인을 지키는 것은, 참회자 앞에서 마땅히 지켜야 하는 ‘신의’의 행동인 것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곧,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구원의 보편성과 단일성에 대한 직접적인 꼭 필요한 증언 - 하나의 ‘순교’ - 인 것이다.5)

 

봉인이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현재 교회법 제983-984조, 제1388조 1항, 동방 교회법 제1456조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1467항에서도 명시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의미심장하게도, 교회가 고유한 권위에 힘입어 ‘규정한다.’라고 하지 않고, -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사의 바로 그 거룩함에서 비롯되는 그 무엇으로도 축소될 수 없는 사실로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 교회가 ‘천명한다.’라고 쓰여 있다. “교회는 고백을 듣는 모든 사제가 고백자에게서 들은 죄에 대해 절대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매우 준엄한 벌을 받는다고 천명한다.”

 

“고해 사제는 말로나 다른 어떠한 방식으로도 그리고 어떤 이유로도 참회자를 조금도 발설하여서는 안 된다”(교회법 제983조 1항). 또한 “교회 사제는 고백에서 얻은 지식을 참회자에게 해롭게 사용하는 것은 누설의 위험이 전혀 배제되더라도 절대로 금지된다”(교회법 제984조 1항). 이 교리는 이후 성사 봉인의 내용을 더 명확히 제시하는 데에 이바지하였다. 성사의 봉인에는 “죽을 죄든 가벼운 죄든, 공개적 죄든 은밀한 죄든, 사죄를 위하여 밝혀지고 따라서 성사에서 얻은 지식의 힘으로 고해 사제가 알게 된 참회자의 죄뿐만 아니라 참회자의 고해를 통해 알게 된 다른 이들의 죄도 모두”6) 포함된다. 따라서 성사의 봉인은 고해 사제가 사죄를 베풀지 말아야 할 경우라도 참회자가 표명한 모든 것에 해당된다. 고해가 유효하지 않았다거나 어떤 이유로 사죄가 베풀어지지 않았다 하여도, 봉인은 유지되어야 한다.

 

실제로 사제는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으로서”(non ut homo, sed ut Deus)7) 참회자의 죄를 알게 된다.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이름으로 들은 것이기에 그는 고해소에서 발설된 말들을 그저 ‘모르는 것’이다. 따라서 고해 사제는 자신의 양심을 조금도 거스르지 않으면서, 오로지 하느님의 교역자로서 알게 된 것을 ‘모른다고 맹세할’ 수도 있다. 성사의 봉인은 그 특별한 본질상 고해 사제를 ‘내적으로도’ 구속하여, 그가 고해를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않게 하고 이에 대한 모든 무의식적인 기억도 억누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고해의 죄를 알게 된 사람도 봉인에 따른 비밀을 지켜야 한다. “통역자가 있으면 그도, 또한 고백에서 죄의 정보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알려진 그 밖의 다른 모든 이들도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다”(교회법 제983조 2항).

 

성사의 봉인이 부과한 절대적 금지는, “참회자의 명백한 동의가 없는 한, 그리고 더욱이 참회자의 요구가 없는 한”8) 사제가 참회자 본인과 나눈 고해의 내용을 성사 밖에서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사의 봉인은 참회자의 의사와 무관하다. 일단 성사가 거행되면 참회자는 고해 사제를 비밀 유지의 의무에서 벗어나게 할 권한이 없다. 이 의무는 하느님에게서 직접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사의 봉인과 고해의 거룩함을 보호하는 것은, 결코 악에 공모하는 어떠한 형태가 될 수 없고, 반대로 인간과 온 세상을 위협하는 악에 대한 유일한 참해독제가 된다. 또한 하느님의 사랑에 자신을 내어 맡기고, 구체적으로 이에 따라 살아가는 법을 익히면서, 이 사랑으로 회개하고 변화되는 것이 참으로 가능하게 해 준다. 범죄 사실의 종류에 해당하는 죄가 있을 때, 참회자에게 사죄를 위한 조건으로 국법에서 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결코 허가되지 않는다. 이는 모든 법률이 받아들이는 자연 원칙에 힘입은 것이다. 이 자연 원칙에 따르면 “어느 누구도 진술할 의무는 없다.”(nemo tenetur se detegere). 그러나 동시에, 성사 유효성을 위한 조건인 진정한 참회는, 자기 자신을 바로잡고 자기가 범한 악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심과 함께, 화해의 성사의 ‘구조’ 자체에 속한다. 참회자가 다른 사람이 저지른 악의 피해자라고 밝힌다면, 고해 사제는 참회자에게 그의 권리와 함께, 국가나 교회 법원에 그 사실을 고발하고 재판을 청구하는 데에 필요한 구체적인 법적 수단에 관하여 가르쳐 주는 배려를 할 것이다.

성사의 봉인의 불가침성에 “강제력을 행사”하려는 모든 정치적 행위나 법적 시도는 교회의 자유(libertas Ecclesiae)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공격일 것이다. 교회는 개별 국가에게서가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그 적법성을 받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모든 행위나 시도는 참회자이든 고해 사제이든 각 시민의 양심의 자유를 비롯하여 모든 다른 자유의 법적인 토대가 되는 종교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성사의 봉인을 침해하는 것은 죄인 안에 있는 가난한 이를 짓밟는 것이 될 것이다.

 

 

2. 성사 밖의 내적 법정과 영성 지도

 

참회의 성사 밖에 있으며 언제나 내밀한 이른바 ‘성사 밖의 내적 법정’도 내적 법정의 법적 도덕적 영역에 속한다. 교회는 성사 밖의 내적 법정에서도 자신의 고유한 사명을 수행하고 구원의 힘을 발휘한다. 교회는 성사 밖의 내적 법정에서 죄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베풀고, (예를 들어, 교정벌과 같은) 법적 속박을 풀어 주며, 영혼들의 성화와 관련된 모든 것에, 그리고 이에 따라 각 신자의 내밀하고 개별적인 고유한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영성 지도는 특별한 방식으로 성사 밖의 내적 법정에 속한다. 영성 지도 안에서 각 신자는 자신의 회개와 성화의 여정을, 지정된 한 사제나 봉헌 생활자나 평신도에게 맡긴다.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자신의 사명에 힘입어 그러한 직무를 수행한다. 그는 성품성사로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명을 부여받고, 이른바 삼중 직무(tria munera), 곧 가르치고 거룩하게 하며 다스리는 임무를 통하여 교회의 교계적 친교 안에서 그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평신도는 세례를 통하여 받은 사제직과 성령의 선물에 힘입어 이러한 직무를 수행한다.

 

영성 지도를 통하여 신자는 자유롭게 자기 양심의 비밀을 영성 지도자 또는 동반자에게 열어 내보임으로써 하느님 뜻의 경청과 성취에서 지도와 도움을 받는다.

 

따라서 이 특별한 영역도 외적으로(ad extra) 확실한 비밀 유지를 요구한다. 이러한 외적 비밀 유지는 영적 대화의 내용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고 또한 모든 사람이 자기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교회법 제220조 참조). 고해성사 안에서 일어나는 것과 오직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한, 영성 지도자는 그리스도와 맺는 ‘특별한’ 관계에 힘입어 개별 신자의 양심을 살필 수 있다. 영성 지도자가 그리스도와 맺는 이 특별한 관계는 그의 삶의 성덕에서, 그리고 성직자라면 그가 받은 성품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제직 후보자에게 성품을 허가하거나 반대로 그를 신학교에서 제명하고자, 영성 지도에서 알게 된 특별한 비밀에 대한 증언을 위하여 고해 사제의 의견만이 아니라 영성 지도자의 의견을 요청하는 것도 법에서 인정한 금지로 간주된다(교회법 제240조 2항; 동방 교회법 제339조 2항 참조). 마찬가지로, 시성 안건에서 교구 심사를 수행하는 것에 관하여 2007년에 발표된 훈령 「성인들의 어머니」(Sanctorum Mater)는, 성사의 봉인의 보호를 위하여 하느님의 종의 고해 사제뿐만 아니라 영성 지도자가 고해성사 밖의 양심의 법정에서 알게 된 모든 것에 대해서도 증언을 허용하는 것을 금지한다.9)

 

영성 지도자가 신자의 자유의 신비 앞에서, 자신을 통하여 신자가 그리스도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동하는’ 법을 알면 알수록, 영성 지도자에게 이 필수적 비밀 보장은 더욱더 ‘마땅한’ 일이 될 것이다. 영성 지도자는 자기 사명과 삶이 하느님께로만 향하고, 하느님의 영광에 봉사하며, 개인과 교회의 선익 그리고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한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3. 비밀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 지니는 그 밖의 고유한 한계들

 

성사 안과 성사 밖의 내적 법정의 분야와 관련된 또 다른 특성으로는, 성사의 봉인 아래 알게 된 비밀들뿐만 아니라 이른바 ‘직업상의 비밀들’(segreti professionali)이 있다. 직업상의 비밀들은, 시민 사회 안에서든 교회 조직 안에서든 특별한 범주의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또는 공동으로 수행하는 특별 직무 때문에 간직하는 비밀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491항에서 밝히고 있는 대로, 이러한 비밀들은 자연법에 힘입어 언제나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비밀을 지키는 것이 그 비밀을 맡긴 사람이나 그것을 맡은 사람이나 또는 제삼자에게 매우 중대한 손해를 끼치게 되고, 진실을 누설함으로써만 손해를 피할 수 있는 경우에는 예외가 된다.”

 

비밀의 특별한 경우는 ‘교황 비밀’(segreto pontificio)의 경우로서, 이는 사도좌에 봉사하는 특정 직무들의 행사와 연관된 맹세로 구속력을 지닌다. 비밀의 맹세가 맹세한 이들을 언제나 하느님 앞에서(coram Deo) 구속한다면, ‘교황 비밀’과 연관된 맹세는 교회의 공익과 영혼의 구원(salus animarum)을 그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그 전제는, 주 그리스도께서 세우시어 온 교회의 신앙의 일치와 친교의 가시적인 근원과 토대가 되게 하신10) 교황을 대신하여 오직 사도좌만이 그러한 선익과 영혼의 구원의 요구 자체들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구원 자체가 제기하는 이러한 요구들에는 봉인에 해당되지 않는 정보들의 사용도 포함된다.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 분야들에 관해서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그 모든 형태와 표현에서, 교회의 지혜는 언제나,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황금률’을 으뜸 기준으로 제시해 왔다. 루카 복음서는 이 황금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한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루카 6,31). 이러한 방식으로, 진실을 전달할 때 진실을 알 권리가 없는 이가 이를 물을 경우 이에 관하여 침묵하듯, 각 사람은 타인의 선익과 안전, 사생활의 존중, 공동선을 염두에 두며 언제나 형제애의 계명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켜야 한다.11)

 

형제애에 따라 진실을 전달할 특별한 의무로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여러 단계에 걸쳐 이루어지는 ‘형제적 교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형제적 교정’은 필요하다면 그리고 구체적인 상황이 허락하고 요구하는 경우에 언제나 따라야 하는 기준이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마태 18,15-17).

 

대중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에는 모든 정보가 ‘뜨겁게 달구어지고’ 안타깝게도 이와 더불어 흔히 개인 삶의 일부까지도 불살라지고 만다. 이러한 대중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말의 힘에 관하여 다시금 일깨울 필요가 있다. 곧, 말이 지닌 건설적인 힘뿐만 아니라 파괴적인 힘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개개인의 온전한 선익과 진실을 단일한 전망으로 바라보면서, 그 누구도 성사의 봉인을 결코 침해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교회 직무 수행과 관련하여 필요한 비밀 보장이 늘 충실히 지켜지도록 경계해야 한다.

 

온 교회를 위하여 성령께서 삶의 모든 분야와 모든 상황에서 진리를 향한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해 주시도록 간구합시다. 저희가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 이 사랑을 오롯이 지킬 수 있도록 저희에게 힘을 주시고, 성사의 봉인의 불가침성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순교까지도 마다하지 않을 원의를 불어넣어 주소서. 또한 저희가 사생활을 비롯하여 사회와 교회 생활의 고유한 정보들을 그릇된 수단으로 이용함으로써 개인의 존엄을 해칠 뿐만 아니라 진리 그 자체이신 분, 곧 교회의 머리이시고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모욕을 드릴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삼가는 데에 필요한 예지와 지혜를 주소서.

 

‘성사의 봉인’을 열렬히 수호하고 ‘성사 밖의 내적 법정과 그 밖의 직무 수행에 반드시 필요한 신중함’을 지켜 나갈 때, 교회 안에 베드로와 마리아의 면모가 특별한 통합을 이루며 찬연히 빛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베드로와 함께 세상 끝 날까지, 맺고 푸는 ‘열쇠의 권한’의 제도적 직무를 수호해 나갈 것이다.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 교회도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루카 2,51) 간직한다. 교회는 모든 인간을 비추는 빛이 이러한 일들 안에 반영되고 있으며, 개인의 양심과 하느님 사이의 거룩한 자리에서도 이 빛을 보호하고 지키고 수호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교황 프란치스코 성하께서는 2019년 6월 21일에 이 공지를 승인하시고 그 발표를 명하셨다.

 

로마 교황청 내사원에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내사원장 마우로 피아첸차 추기경

크시슈토프 유제프 니키엘 몬시뇰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1965.12.7., 22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글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7(제3판).

 

2) 베네딕토 16세,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Spe Salvi), 2007.11.3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8(제1판), 22항.

3) 프란치스코, 교황청 내사원 주최 제15차 내적 법정에 관한 연수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2019.3.29.

4) 베네딕토 16세, 사제들과 나눈 대담, 2010.6.10.

5) 교황청 신앙교리성,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구원의 유일성과 보편성에 관한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Dominus Iesus), 2000.8.6.,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제17호(200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91-130면 참조.

6) V. De Paolis - D. Cito, Le sanzioni nella Chiesa. Commento al Codice di Diritto Canonico. Libro VI, Città del Vaticano, Urbaniana University Press, 2000, 345면.

7)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보충(Suppl.), 11, 1, ad2.

8)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청 내사원 위원들과 로마 대성전들의 참회 담당들과 내적 법정에 관한 강연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클레멘스 홀, 1994.3.12., 4항.

9) 교황청 시성성, 시성 안건에서 교구 예비 심사를 위한 훈령 「성인들의 어머니」(Sanctorum Mater), 2007.5.17., 제101조 2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40호(2009),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53면 참조.

10)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964.11.21., 18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참조.

11) 『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1997,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8(제2판), 2489항 참조.

<원문 : Nota della Penitenzieria Apostolica sull’Importanza del Foro Interno e l'Inviolabilità del Sigillo Sacramentale, 2019.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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