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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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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코로나 이후 시대를 헤쳐나갈 우리의 탈렌트는 무엇인가?

145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6-16

코로나 이후 시대를 헤쳐나갈 우리의 탈렌트는 무엇인가?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를,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를,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겼다.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오래전 어느 일간지에서 읽은 신춘문예 당선작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제목도 당선자의 이름도 희미하지만 그 내용만은 독특해서 잘 잊히지 않습니다. 소설은 로봇이 우리 사회 전반에 상용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소설에서 안드로이드는 독거노인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인간을 닮은 로봇입니다. 이 로봇은 일상에 필요한 대부분의 일들 가령, 심부름이나 청소, 요리, 운전 등을 도맡아 해줄 뿐만 아니라 주인이 슬픈 표정을 지으면 노래를 불러주고 토닥이며 위로도 해줍니다. 이 로봇은 혼자 살아가는 노인 인구가 많아진 시대에 인기가 폭발하여 많은 노인들이 이 로봇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부로부터 이 로봇이 강제 리콜을 당합니다. 이유는 이 로봇을 소유하고 있는 노인들이 유독 자살을 많이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원인을 조사한 결과 그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인간과 너무나 흡사한 이 로봇이 지극 정성 보살피고 필요한 것을 다 도와주는데, 정작 노인은 로봇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 로봇은 그저 기계에 불과해서 노인이 사랑을 베풀어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받기만 할 뿐 사랑을 줄 수 없는 관계, 기계적 기능만 있을 뿐 생명이 없는 관계에서 노인은 더 외로워지고 우울해진 것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시대

 

오래전 지나치듯 읽었던 이 단편소설의 일부 내용을 다시 기억하게 된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이 된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 사회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가 지나가면 예전과 같은 일상생활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 불분명하지만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 성공하여 이번 사태가 잘 넘어간다 하더라도, 인간이 환경파괴로 자초한 기후 변화에 따른 각종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다양하게 출현할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거나 동거하며 살아가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따라서 코로나19 이후 가장 큰 사회적 변화는 사람들이 직접 만나는 ‘접촉문화’가 약해지고 비대면의 ‘접속문화’가 가속화될 것입니다. 회사나 공공기관의 경우 특정한 장소에 모여 업무를 보던 ‘공간 중심’에서, 자택이든 야외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온라인 중심’ 생활로 점차 변화될 것입니다. 온라인 쇼핑과 배송, 원격 수업, 원격 상담과 진료 등이 일반화되고, 이미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는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한 각종 비대면 소통이 더욱 활발해질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이 사회 전반에 크게 활용되면서 멀지 않은 미래에는 사이버 공간의 가상현실이 실제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체험되고, 인공지능과 로봇이 결합하여, 서두에 밝힌 소설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시대가 오면 상호의존적 관계성이라는 인간의 속성이 가상현실 속에서 해소됨으로써 공동체 삶이 붕괴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소통 역시 기계가 그 자리를 대신함으로써 인간과 인간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점차 ‘개별화(individualization)’된 삶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렇게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급격한 사회적 변화의 종착점은 생명 없는 기계들과 가상의 것들이 판치는 유령사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만일 우리 사회가 이렇게 극단으로 치달아 인간관계 대신 기계 장치들과 감정을 교류하는 사회가 된다면 아마도 인간에게 마지막 남을 감정은 외로움과 우울, 소외뿐일 것입니다.

 

 

탈렌트의 비유

 

예수님의 하늘나라 비유 중 ‘탈렌트의 비유’(마태 25,14-30)가 있습니다. ‘탈렌트(τάλαντον)’는 예수님 시대에 통용되던 그리스 화폐 단위였습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은 일꾼들의 하루 일당이었는데, ‘한 탈렌트’의 가치는 6천 데나리온에 해당되는, 일반 대중들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높은 가치의 화폐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TV에서 보는 탈렌트(talent)의 어원이 여기에 기원을 두는 것도, 바로 타고난 소질이나 재능이 뛰어난 사람에 대한 높은 가치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에서 탈렌트를 이렇게 재능이나 능력으로 이해하면 왠지 불공평한 말씀으로 들립니다. 어떤 사람이 종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맡기면서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맡기고 여행을 떠납니다. 우리 이야기로 풀어보면, 마치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많은 재능과 능력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변변찮게 주시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를 받은 사람이, 그들이 받은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여 탈렌트를 두 배로 늘려오자 그들을 칭찬하시는 데 반해, 한 탈렌트밖에 받지 못한 사람이 그것을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그냥 가져오자 그의 게으름을 꾸짖으며 오히려 가진 것마저 빼앗아버립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 말씀은 자신이 받은 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지더라도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최대한 발전시키고 극대화한다면 하느님께 칭찬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해석이 옳다면, 인간이 가진 온갖 능력과 재능이 발휘되어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룬 현대사회는 하느님께 엄청 칭찬받는 게 마땅해 보입니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의 눈부신 발전을 이룰 미래 사회는 인간 능력과 재능을 극대화시킨 사회로, 개인의 자유와 편리, 필요가 충족된, 더할 나위 없이 칭찬받아 마땅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사회의 종착점은 소설 속 이야기처럼 더 우울하고 외로운 죽음의 사회가 연상되어 그려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탈렌트의 본뜻은 무엇인지요?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주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뿐이시기에, 우리에게 주신 탈렌트는 바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온갖 지식을 다 깨치고 하루아침에 산을 바다로 옮겨놓을 믿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지요(1코린 13,1-3 참조). 재능과 능력으로 따지면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그것은 생명 없는 기계에 불과하듯,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탈렌트를 많이 받았다고 좋아할 일도, 적게 받았다고 슬퍼할 일도 아닙니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더 많이 희생해야 하고, 적게 받았다 해도 받은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된 사랑을 묻어두지 말고, 하늘나라 건설을 위해 자신의 삶과 사회 안에서 사랑의 능력을 키워나가라는 것이 이 비유의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성숙해가는 것은 지식도 재능도 아닌 사랑의 능력이 커지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사회도 과학기술이나 지식의 발전이 아니라 인간 상호간의 ‘사랑의 관계’가 커질 때 성숙한 사회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탈렌트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늘나라는 우리가 받은 탈렌트, 곧 ‘사랑의 능력’을 키워 기쁨이 충만한 사랑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코로나19 이후 교회의 소명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미사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일미사 참석 인원이 이전의 반으로 줄었습니다. 물론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들은 미사 참례를 자제하도록 권고했지만 교회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선교의 위기를 실감하게 됩니다. 코로나19 이후,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이 밀폐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밀집하여 모이는 곳이라고 했지요. 당연히 우리 교회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교회도 ‘새 일상(뉴 노멀:new normal)’ 시대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앞으로 더 심화될 비대면의 사회 문화에 맞추어 우리 교회도 원격으로 예비자 교리, 상담, 강의, 훈화 등이 가능하도록 온라인 시스템을 준비하고, 사회에서 폭넓게 활용되는 SNS 기능을 적극 도입하여 교회 구성원 모두가 원활하게 소통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감염병이 유행하여 미사가 중단되거나 감염에 취약한 노약자들이 미사 참석이 어려운 경우에는 본당마다 실시간으로 온라인 미사가 가능하도록 배려하여 신자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교회의 성체성사 안에서 일치를 이루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익명의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이는 집회는 점점 더 피하게 되고,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끼리의 소규모 만남은 더욱 빈번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교회, 구역 반 중심의 소공동체를 활성화하여 본당을 ‘작은 공동체들의 공동체’가 되도록 사목 조직을 보다 소공동체 중심으로 정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세상 변화에 대한 이 모든 적응 노력은, 시대와 호흡하되 무엇보다 ‘세상 속의 교회’로서 내적인 ‘사랑의 능력’을 키워 교회 본연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세상 사람들의 ‘탈렌트’는 기계와 인간이 친구 관계를 맺고, 가상공간 속에서 살도록 인류를 재촉해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신앙인에게 주신 ‘탈렌트’는 이를 예방할 ‘사랑의 백신’입니다. 이는 생명과 사랑이 없는 세상, 우울과 슬픔, 소외만이 남게 될 인류의 운명을 거슬러, 우리가 받은 탈렌트를 배가하여 세상을 치유하고 사랑과 생명을 불어넣어야 할 소명을 말합니다. 전염병으로 불안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탈렌트의 비유는, 세상의 탈렌트를 복음의 탈렌트로 이겨나가라는 ‘시대의 역설’인 것입니다.

 

* 전원 -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캐나나 토론토에서 영성을 공부하였으며 현재 도봉산성당 주임 신부로 사목하고 있다. 저서로 『말씀으로 아침을 열다 1·2』 『그래 사는 거다』가 있다.

 

[월간 생활성서, 2020년 6월호, 전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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