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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이콘이란

70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3-08

이콘이란

 

 

이콘(Icon/είκον/Икона)은 그리스어로 모상, 형상을 뜻하는 말로 신앙의 대상과 교리서, 성서의 내용을 가시적 형태로 표현한 것 즉 성화, 성화상을 말한다.

 

그리스도교는 다양한 우상숭배의 환경 속에서 출발했었다. 성서를 보면 이미 구약 특히 모세오경 등을 보면 우상 숭배를 배척하는 내용이 나오고 신약에서도 예수님과 사도들의 말씀 속에 우상 숭배를 피할 것을 강조하는 내용들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기도하는 공간인 시나고가 등에 어떠한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으로 된 장식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물론 사도들과 첫 신자들도 모두 유대인들이었기에 모세오경의 우상 숭배금지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여 어떤 형상을 묘사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 등 여러 사도들의 노력으로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고 방식과 언어의 차이를 가진 여러 민족의 사람들이 점차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직접 뵙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던 사도들도 점차 세상을 떠나 이제는 그분들에게서 전해 받은 내용이 구전으로 간접적인 형태로 전해지다 보니 성서와 교리의 내용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가 생기며 여러 오류들과 이단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글로 신약성서가 기록이 된 이후에도 문맹자들이 많아 교회에서는 조심스럽게 형상의 묘사를 통해 성서와 교리의 내용이 오류없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보고 사용하는 성화, 성화상의 시작이었다. 즉 말을 하기 시작하는 아기들에게 그림책을 통해 사물의 이름을 익히게 하고 점차 문장과 회화로 학습시켜 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즉 말과 글로만 전하는 방식에서 눈으로 보면서 교리와 성서의 내용을 생동감 있게 익히고 오류 없이 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특별한 기준이 없이 기존의 세속적인 회화의 형식을 사용하여 성서와 교리의 내용을 묘사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로마의 카타콤바의 벽화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725년에서 842년 사이에 벌어졌던 성화상 파괴논쟁을 겪고 나서 세속적인 미술과 성 미술을 구분 짓는 기준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그에 따른 기준들이 만들어지고 정리된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소위 말하는 이콘들인 것이다.

 

즉 불교 미술에서도 부처가 인간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삼십이상 팔십종호(三十二相八十種好)라는 기준에 따라 불화, 불상이 조성되듯이 성화에 있어서도 세속과 구분되는 기준이 생겨난 것이다.

 

즉 인간적인 喜,怒,哀,樂의 표정이 묘사되지 않으며 사실 있는 그대로보다는 도식적이며 상징적인 표현으로 묘사하며, 色에 따른 상징과 의미가 있으며, 작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림자가 생기는 완전한 입체의 조각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등의 규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한 초기교회미술의 전통은 11세기, 12세기까지는 동방과 서방에서는 큰 구분 없이 이 이콘의 형태는 함께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서방교회에서는 동방과 다른 민족구성과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었기에 교회미술에 대한 이해도 상이하게 되어 중세를 거치며 다시금 회화적인 성화나 입체적인 조각이 허용되게 되고, 특히 르네상스라는 큰 전환점을 통해서 보다 세속적인 표현이 허용되어 오늘에까지 이르며 동방교회와 더 큰 차이점을 보여오고 있다. 그러므로 쉽게 다가가고 이해할 수 있는 성화는 되었지만 초기교회 신자들이 성화를 통해 추구하던 영적인 깊이는 약해지고 말았다.

 

1962년 서방교회는 즉 가톨릭에서는 로마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면서 초기교회의 정신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창하며 성화에 있어서도 초기교회 신자들의 영성과 전통을 회복하고자 이콘이 다시금 부각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이콘에 대한 새로운 연구와 제작이 로마를 비롯한 각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로 인해 한국에도 언제부터인가 이콘이 서서히 소개되기 시작했고, 이콘을 모신 성당과 수도원들도 생겨 났으며 이콘을 보다 깊이 알고자 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똑같은 형태를 그대로 베끼는 것이 이콘이라 잘못 알고 있지만 이 세상에 똑같은 이콘은 단 한 개도 없다. 즉 교회가 정한 원칙에 따라 그려지고 비슷한 형태를 답습해 그리지만 먹지를 뒤에 대고 그대로 베끼면 그것은 이미 이콘이 아니다. 비록 부족한 솜씨라도 한 획 한 획 수를 놓듯이 정성을 다해 그릴 때 그것이 참 이콘이 된다. 즉 성서 필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각자 옮겨 쓰는 이의 필체가 다르지만 성서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이콘은 그 형태가 다 같아 보여도 그리는 이의 기도 등의 영적 상태와 미술적 기량에 따른 차이는 있기에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기에 러시아와 동방교회에서는 이콘을 그린다라고 하지 않고 쓴다라고 하며 이콘을 본다 하지 않고 읽는다라고 하고 있다.

 

이콘 즉 성화의 시작은 언제일까? 오늘날 그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전해지는 몇 가지 문헌과 전승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서방 가톨릭에서는 십자가의 길 제7처에 피땀에 젖은 예수님의 얼굴을 베로니카가 천으로 닦아드린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진위가 논란이 되고 있으나 이 천에 기적적으로 새겨진 초상은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친히 남겨주신 첫 성화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동방 교회에서는 에우세비오의 교회사 1권 13장에 나오는 아브가르 왕의 이야기를 성화 즉 이콘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시리아 북부에 있던 에데사라는 작은 왕국의 아브가르 왕이 중병에 걸려 고통 속에 지내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께 사절을 보내어 자신을 치유해주시기를 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은 지금은 네게 갈 때가 아니나 훗날 내 제자 중 하나를 네게 보내 너와 네 가문을 구원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그 증표로 천에 당신 얼굴을 찍어서 보내 주셨다고 한다. 이렇게 예수님에 의해 직접 만들어진 천위의 형상을 진실되며 참된 주님의 첫 성화라고 믿고 있다. 이 성화는 944년에 콘스탄티노플로 보내져 1204년까지 성 소피아 성당에 보관되다 4차 십자군 원정 때(1202-1204)에 사라졌다고 한다. 십자군 전쟁은 팔레스티나 지방의 예루살렘을 비롯한 성지들을 이슬람으로부터 탈환하기 위함이 그 목적이었으나 4차 십자군 전쟁은 콘스탄티노플의 엄청난 재화를 약탈하기 위한 것으로 변질되어 위에 언급한 주님의 거룩한 형상이 새겨진 천도 이때 약탈당하여 이후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이 첫 예수님의 이콘을 그리스어로 만딜리온(Μανδηλίου - 천 위에 새겨진 것) 또는 아케이로포이에토스(άχειροποίητος - 손으로 만들지 않은 것)라고 부르며 모든 성화의 시작으로 보고 있으며 이후 성화들의 기준으로 삼아 다양한 성화들을 제작하게 되었다. 이 성화의 모습은 위에 언급한 기적의 내용대로 예수님의 얼굴만 그려지며 몸은 묘사하지 않고 얼굴 주위에는 늘어진 천의 모습을 함께 그리기도 한다. 예수님의 머리 주위에는 후광이 그려져 있는데 그 안에는 십자가 모양이 함께 그려지고 그 십자가의 각 측면에는 희랍어로 ‘존재자’(ό ών)라는 글이 쓰여 진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느님을 뵈었을 때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질문을 던지자 하느님께서 하셨던 답변 ‘존재자’ 즉 시작도 마침도 없이 존재하는 바로 그분이 여기의 예수님이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후광 좌, 우에는 희랍어로 예수 그리스도(IHCOYC XPICTOC)의 약자 IC XC를 함께 적어 놓았다.

 

[평신도, 2020년 봄(계간 67호), 장긍선 예로니모 신부(서울대교구 이콘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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